미국의 대표적 교회언론 중 하나인 NCR(National Catholic Reporter)은 지난 11월 13일 볼티모어에서 개최된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오롯이 바친 도로시 데이(Dorothy Day)의 성인품 추대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고 전했다.

▲ 도로시 데이
도로시 데이는 1932년 피터 모린(Peter Maurin)과 더불어 ‘가톨릭일꾼운동’을 설립하고 1980년 선종할 때까지 미국 반전운동을 이끌며 그리스도교평화주의를 주장해 왔다. 그는 성경과 교부들의 사상에 기초한 복음을 세상에 선포하는 신문 <가톨릭일꾼>을 발행하고, ‘환대의 집’을 열어 노숙인과 실업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자활을 도왔다. 한편 농경공동체를 이루어 장애인을 비롯해 도시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이들이 비장애인들과 살 수 있는 농장을 운영했다. 또한 토마스 머튼 등과 교류하며 가톨릭의 진보적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이날 뉴욕출신 테오도르 맥커릭(Theodore E. McCarrick) 추기경은 약 230여명이 모인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 “우리가 다가가야 할 필요가 있는 모든 사람들, 무언가를 얻기 어려운 모든 사람들,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 마약에 취해 있는 사람들, 낙태를 경험했던 사람들…. 도로시 데이는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접촉해야 할 이 모든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밝혔다.

도로시 데이에 대한 시성청원은 2000년에 발의되었으나 지난 12년 동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미국 주교들은 이번 주교회의에서 투표를 통해 도로시 데이의 시성을 교황청에 직접 요구하고 나섰다.

뉴욕 락빌 센터(Rockville Centre)의 윌리암 머피(William F. Murphy)주교는 “내가 젊은 사제였을 때, 도로시 데이는 개인적으로 나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여기 이 자리에 내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시성을 촉구하는 이 투표에서 ‘예’라고 대답한 것은 나에게 굉장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그러나 도로시 데이가 성인으로 선포되기에는 여전히 많은 논란거리가 남아 있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에 입문하기 전까지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거슬러 반전운동에 참여했고, 평생에 걸쳐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그녀가 평생에 걸쳐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이 많지만, 보수적인 인사들은 그녀의 급진적인 사회참여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또한 도로시 데이가 딸 타마를 출산하기 전 한 번의 낙태를 경험한 것 역시 논란이 되어 왔다. 그러나 시카고 교구 프란시스 조지(Francis George)추기경은 주교회의 석상에서 “사적 권리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자유를 어떻게 잃어가고 있는지 밝히려고 우리 스스로 노력하듯, 도로시 데이 역시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매우 훌륭한 여성”이라고 언급하며 도로시 데이의 시성을 촉구했다.

프란시스 추기경의 발언을 이어받은 보스턴교구의 션 오말리(Sean O'Malley)추기경은 “가톨릭교회의 사회복음화에 투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 도로시 데이의 삶을 강조하면서 “그녀의 삶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만하다”고 말했다.


▲유튜브 동영상:Creative Quotations from Dorothy Day for Nov 8

한편 도로시 데이 시성을 가로막는 더 큰 걸림돌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 앞서, 도로시 데이 자신이 “저를 성인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저는 너무 쉽게 잊히기를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도로시 데이의 열렬한 지지자 가운데 몇 사람은 “도로시 데이는 스스로 시성되기를 원치 않았을 것”이라며 “이렇듯 기나 긴 시성절차에 소요되는 돈이 있다면, 도로시 데이는 아마 그 돈을 자신의 시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오르비스(Orbis) 출판사의 발행인이자 도로시 데이의 일기와 편지들을 편집, 출판한 로버트 엘스버그(Robert Ellsberg)는 도로시 데이가 성인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증언했다. 엘스버그는 또한 <아메리카 매거진>(America Magazine)과의 인터뷰에서 “도로시 데이가 확실하게 반대했던 것, 그리고 성인이 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도로시 데이의 인간성을 벗겨내고 성스러움이라는 어떠한 급조된 형태에 짜 맞추거나 그녀를 시험대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복음의 근본적 도전을 묵살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도로시 데이는 자신을 향한 그러한 찬사들을 늘 불편해 했다고 한다. 한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행위들이 자칫 도로시 데이와 같이 진보적인 삶을 사는 어려움을 흐리기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엘스버그는 “모든 성인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면이지만, 도로시 데이 역시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였다”고 평가했다.


▲유튜브 동영상: Dorothy Day and the Catholic Worker Movement

기사 참고 : National Catholic Reporter (www.ncronline.org) <St. Dorothy Day? Controversial, yes, but bishops push for canonization> (2012년 11월 15일, 번역: 김홍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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