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당에 본당 신부가 새로 부임했다. 로마에서 영성신학을 공부한 박사 신부라고 했다. 본당 신자들은 영적으로 많이 굶주렸는데…. 영성적으로 잘 이끌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좋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강론은 길게 많은 말을 하는데 귀에 들어오는 말은 없다고 했다. 낯설고 추상적인 단어들이 많아 알아듣기 어려웠다. 너무 어렵다고 말하면 신자들의 듣는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는 말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했다고 했다. 그의 생활에서 영성적인 삶의 모습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신학이 사람들의 삶과 동떨어졌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그분의 가르침을 전해주지만 그 사람들 안에 이미 계시면서 일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깨닫게 해주지 못했다.

ⓒ한수진 기자

노동자 담당 사목을 할 때였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몇몇 젊은이들과 예비자 교리를 했는데, 하루는 교리시간에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사회교리에 있는 ‘노동은 신성하다’라는 말을 하였더니 노동자 한 사람이 즉시 반발하였다.

“그런 말은 책에만 있어요! 나는 아직까지 노동을 하며 힘들고 지겹다는 생각만 했는데…. 노동은 신성하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 지겹고 고통스러운 노동을 해 봐야 그런 말을 안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간에게 고통만 주는, 개선해야 할 노동이 너무 많다.

노동자들의 그룹 모임에서 ‘노동을 해 오면서 노동의 나쁜 점이 많겠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면에 대해 느낀 점’을 이야기하도록 하였다. 처음에는 잘 안 나왔지만 한 사람이 입을 연 다음부터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안 하고 놀아보니까 일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만든 제품의 옷을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것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는 말도 했다.

‘가난한 사람은 행복합니다’라는 성서의 중요한 가르침도 이론적으로 가르치기 어렵다. 청빈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거부감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이 성서 말씀에 대해서도 가난한 사람들과 몇 번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의외로 삶에서 느낀 좋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시며 일어나는 사건들을 통해 가르침을 주셨다. 그래서 못 배운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생활에서 깨우침을 얻게 되면 곧 실천하게 되고 삶에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체험을 통해 신앙이 깊어지고 자라게 된다. 옛날 동양의 스승들도 이런 방법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후에, 희랍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이론적이고 사변적인 학문으로 변했다고 한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신학이 필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신학은 하느님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들이 신학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20여 년 전부터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신학은 이론뿐 아니라 믿는 이들의 체험과 비판적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신학은 사람들의 참여와 공동체 안에게 바르게 형성되어야 한다. 즉, 신학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들의 기초공동체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던 때에 신자들이 공동체 안에서 성서를 읽고 묵상하고, 그것을 나누고 실천하는 운동이 활발했다. 기초공동체를 통해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생기를 얻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루어진 것이 그 유명한 해방신학이다. 신학이론이 학자들에 의해 먼저 생겨나고 그것이 민중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신앙적인 삶을 통해 신학이 만들어 졌다는 것이 놀랍고 새로운 일이다.

1980년대 중반에 개신교에서는 “신학이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는 주제로 국제 연수회가 멕시코에서 열렸다. 그 시대에 한국에서도 서남동 교수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민중신학’을 연구하였다. 인도의 시골에서도 필리핀, 아프리카의 신앙공동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신학의 싹은 이끌어주고 보살펴 주는 사람들이 없어 슬프게도 거의 사라졌다.

황상근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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