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제주 중앙주교좌성당 시국미사

찬미 예수님!

일전에 제가 제주 시외의 동부경찰서 유치장에 이영찬 신부님을 면회 갔을 때, 생각보다 표정이 굉장히 밝고 환한 웃음으로 저를 맞아주어서 마음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비록 몸은 유치장 안에 갇혀 있지만, 영혼은 너무나 당당하고 아주 힘차고 기쁨에 넘치는 모습이어서, 제가 오히려 주눅이 들었습니다.

자신이 옥고를 치름으로써 바깥에 있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강정 문제에 관심을 갖고 반대운동에 동참해준다면 자신으로서는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이영찬 신부님 말고도 강정 해군기지 건설 중단을 위해서 온몸을 던져서 항의하고,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싸우는 많은 형제들이 공권력에 의해서 때로는 폭력적으로 연행되고, 수감되고, 고초를 겪어 왔습니다.

2010년 이후에만 450명이 연행되고, 40명이 벌금형을 받았고, 8명이 구속됐습니다. 아직도 154일째 복역 중인 김복철 님을 비롯해서, 박석진 님이 68일, 정연길 목사님이 또 68일, 박승호 님이 59일, 그리고 이영찬 신부님이 구속 상태에 있는지 벌써 19일째에 이르고 있습니다.

ⓒ강한 기자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국민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공권력이 6년이라는 세월을 두고 줄기차게 반대하고 저항하는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이렇게 짓밟고 감옥에 집어넣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우리 모두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제가 들으니까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2013년도 해군기지 예산을 전액 삭감하는 쪽으로 내정을 했는데 여당 측에서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오늘 아침 중앙 일간지 사설을 보니까 국가 전체의 안보를 위한 사업인데, 왜 제주도의 지역이기주의에 의해서 예산을 삭감하느냐, 부당하다, 이렇게 반발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런 의견에 동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하게 국가 안보를 위한 사업인데 왜 반대하는가 하고 문제제기를 합니다. 우리 신자 분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6·25 사변 이후에 오늘날까지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가안보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최고의 가치로 부각이 되어 왔었고, 아무도 거기에 토를 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정의 경우, 38선에서 제일 먼 곳에,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해군기지를 짓는다는 것이 과연 국가 안보를 위해서 그렇게 꼭 필요한 일인가? 그렇게 위급하게 해야 할 사업인가?

정부 측에서는 무역선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라는 그런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그런데 동남아 해역에서는 최근에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는 해적선 몇 척을 상대로 하기 위해서, 최첨단 미사일을 장착하는 이지스함을 비롯해 항공모함까지 정박하는 그런 거대한 군사기지가 해적들 몇을 상대하기 위해서 과연 필요한가? 정말 앞뒤가 전혀 안 맞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실제로 우리 해군의 병력과, 우리 해군의, 국방부의 예산 규모로는 항공모함은 운영할 수도 없고 운영할 꿈도 안 꾸고 있을 것입니다. 필요하지도 않고요. 그런데 우리 국회의원 한분이조사해 밝힌 바에 의하면 국방부에서 주문한 설계는 분명히 항공모함을 정박시키기 위한 군항을 전제로 설계가 위촉됐습니다. 결국 강정의 기지는 중국을 상대로 동북아의 전략적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서 미군과 합동 운영하는 새로운 전략적 기지를 만들려는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강한 기자

한국 교회는 오늘날까지 국가 안보를 위해서라면 국민에게 국가가 어떤 희생을 요구해도 아무 문제제기를 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베트남에 우리 군대를 파견했어도 교회는 아무런 논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38선에서 제일 먼 이 제주도에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촉발하게 될 대규모 군사기지를 새롭게 건설하겠다고 하는 이 문제는 우리가 오늘 교회가 가르치는, 가톨릭교회 교리가 가르치는 원칙에 따라 근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십계명 중의 다섯 번째 계명인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우리가 개인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만으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 2304항에 보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인간 생명의 존중과 증진에는 평화가 필요하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데 그치는 것도 아니다.”

2307항에서 교리서는 또 이렇게 말합니다. “다섯 째 계명은 인간의 생명을 일부러 파괴하는 것을 금지한다. 모든 전쟁이 초래하는 불행과 불의 때문에 교회는 선하신 하느님께서 오랜 전쟁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도록 모든 이가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간곡히 촉구한다. 모든 시민과 모든 위정자들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진력할 의무가 있다.”

2315항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역설적 방법이라 생각한다. 사람들은 전쟁을 국가들 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가장 유효한 것으로 여겼다. 그렇지만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언제나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데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과잉 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

옛날에는 가톨릭교회에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전쟁은 정당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시대, 옛날에는 기껏 해서 칼을 차고 창을 들고 말 타고 전장에 쫓아나가서 상대방 군인들과 이쪽 군인들끼리만 싸우는 그런 전쟁이었기 때문에, 그런 규모의, 그런 차원의 전쟁에는 어느 정도 정당한 자기 방어가 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교회는 정당한 전쟁도 가능하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전쟁의 양상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수천 킬로 떨어진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면서 아프간이나 이라크 기지에 있는 무인 폭격기를 원격조정해서 반군을 폭격하는데, 그들이 민간인들 사이에 끼어 있기 때문에 어린이와 노약자도 전혀 구분할 수가 없이 무차별 몰살당하게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요새는 폭탄 하나도 엄청 고성능이어서 수많은 사람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살상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윤리신학자들도 현대에 와서는 더 이상 이런 상황에서 정당한 전쟁은 가능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살상하는 전쟁은 근원적으로 비인도적이고 비윤리적입니다.

ⓒ강한 기자

베트남 전쟁에 참가했던 우리 한국 군인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한 부대가 베트콩이 잠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을을 포위했습니다. 그 부대의 상관은 마을 주민들을 다 집합시킨 다음에 베트콩이 있는 장소를 대라고 윽박질렀습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모르지만 답변을 안 했습니다. 답변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상관은 그중의 신참인 한 사병에게 민간인을 사살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사병은 “마을의 순박한 농사짓는 농민인데, 민간인인데 이들을 어떻게 쏩니까” 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그 군인은 명령불복종으로 영창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결국 부대원들이 그곳 민간인들을 다 죽였습니다. 그런 며칠 후에 베트콩의 대대적인 반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투가 벌어지는데, 그 전투에서 영창에 갇혔던 사병도 나와 싸웠죠. 옆에 자기와 아주 가까웠던 동료 전우가 베트콩 총에 맞아서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총 쏘기를 거부하던 그 군인은 그 순간 180도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후에 베트콩 군인들이 숨어 있던 마을을 쳐들어가서는 어른, 아이, 노인, 여성 할 것 없이 아주 무자비하게 학살하는데 이 군인 스스로가 앞장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고, 여러 군데인데 그런 마을에 베트남 주민들은 그 학살이 일어난 곳에 비석을 세워놨는데 그 비석의 이름이 ‘증오의 비’입니다.

정당한 전쟁은 없습니다. 전쟁은 이렇게 사람이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그 빈자리를 폭력과 증오로 가득 채우는 최악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을 믿고, 그 계명을 지키려고 한다면, 전쟁을 위한 그 준비 공간인 기지 건설을 중단하도록 있는 힘을 다해서 호소하고, 외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강정의 이 기지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평화를 위해서 대단히 소극적으로 임해 온 우리 한국 교회에 하느님께서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새롭게 성찰하라고 주신 하나의 숙제요,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평화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도록 초대하고 계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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