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 스님, 김민웅 목사, 김인국 신부가 세상에 보내는 <잡설> 출간

“한국의 종교현실에 대해서는 ‘친절한 금자씨’가 이미 결론을 내렸어요. ‘너나 잘 하세요’라고. 누가 누구를 대속하고 구원한다는 말이냐 그런 것이지요.”(김인국 신부)

스님과 목사와 신부가 모여서 ‘잡설’을 늘어놓았다. 주인공은 1990년 개혁 승가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만들어 청정불교운동을 이끌고 생명평화결사를 진행했던 도법스님, 성공회대 교수이면서 성서와 현실을 접목시켜왔던 김민웅 목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김인국 신부다. 이들이 모여 다섯 차례에 걸쳐 우리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경계 없는 대화를 나누고 책을 펴냈다. <잡설>(꽃자리, 2012)이란 책이다. 이 자리에서 종교에 대한 거침없는 발언이 튀어나왔다.

▲ (왼쪽부터) 김민웅 목사, 도법 스님, 김인국 신부 ⓒ한상봉 기자

‘발달장애’를 겪고 있는 한국의 표층종교

종교문제에 관한 잡설에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와 오강남 교수도 참여했다. 오강남 교수는 종교를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려 하는 ‘표층종교’와 욕망을 초월해 진정한 나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심층종교’로 나누고, 심층종교로 깊어지지 않는 종교를 빗대어 ‘발달장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충돌 역시 표층종교 끼리의 다툼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심층종교는 옛날에도 ‘소수’였다며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진짜 예수의 기본정신을 알아챈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예수의 죽음 목전에서도 그들은 ‘누가 더 크냐’며 싸웠다. 그야말로 ‘표층종교심’이다.

그래서 김민웅 목사는 “역사적으로 제도적으로 존재해 왔다는 기독교와 예수운동은 다른 것”이라며 종교의 가르침과 실천이 현실과 긴장감을 일으키면서 현실을 해체하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되어야 하는데, “요즘 종교는 거꾸로 현실의 욕망과 권력을 가지고 종교를 동원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김인국 신부는 가톨릭교회 안의 표층종교적 요소를 비판하며 “천주교 신부들의 8할은 <한겨레>나 <경향>을 본다. ‘조중동’ 보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런데도 교회를 쥐락펴락하는 사람들은 다 조중동을 본다. 참 희한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교회에서는 태아도 어엿한 인간으로 볼 정도로 생명존중 사상이 고도로 발달해있음에도 “‘인간이 될 자는 이미 인간’이라고 보는 인권의식은 있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에는 무관심하다”고 전했다.

거룩한 사회가 세속화된 종교를 염려하다


▲ <잡설>, 꽃자리, 2012
이들은 제도종교를 ‘가장 세속화된 집단’으로 평가했다. 도법 스님은 “부처님은 상놈이나 양반으로 태어나는 종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따라서 도둑놈도 되고 선인도 된다고 말했다”면서, 상놈과 양반이 정해져 있다고 가르치는 게 ‘속’이라면, “오늘날의 종교집단이야 말로 가장 속되다”고 말했다. 만민평등과 남녀평등이 상식화된 사회에서 불교계는 철저히 계급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강남 교수는 종교란 기본 가치를 뒤집어엎는 ‘전복성’을 지녀야 한다면서 “수운 최제우는 ‘우리가 다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 우리가 하늘님이다. 다른 사람을 하늘님으로 대하라’고 했는데, 이게 복음이다. 그게 사회보다 앞서 나가던 종교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역시 ‘우리가 모두 같은 하느님의 아들딸’이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종교가 사회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그러다 보니 종교가 사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염려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을 받아서 김기석 목사는 “도둑질하는 부처가 부처일 수 없는 것처럼, 결론은 예수의 행위를 하는 자가 예수이고, 부처의 행위를 하는 자가 부처이지 부처와 예수가 따로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방책이 나왔다. 김민웅 목사는 ‘해석학적 투쟁’을 전하며, 다산연구의 최고봉이던 이을호 선생이 공자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번역문을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라고 순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제시했다. “교회용어를 철저하게 깨고, 낮아져서 일상의 언어로 예수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나, 돈 벌려고 교회 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정직하다

이들의 대화는 “종교는 없고 ‘이름’만 있다”는 이야기로 옮겨갔다. 김인국 신부는 “사회는 엉망이고 강과 바다는 만신창이가 됐는데 종교는 아무 고민도 하지 않는다”며 “종교가 회사만도 못할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도법 스님은 “회사는 정직하게 돈을 벌기 위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돈 벌기 위해서 교회나 절집을 운영한다고 말하지 않는다”며 종교가 좀 더 솔직해질 것을 요구했다. “나, 돈 벌려고 교회 해!”라고 말하는 게 차라리 정직하다는 것이다. 종교는 온통 거룩한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돈벌이 할 때가 많다는 지적이다. 결국 김기석 목사의 말대로 “사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예수와 관계없이 살고 있다”고 한탄이 나올만하다.

또한 종교란 자고로 ‘아파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게 <잡설>의 공론이다. 김민웅 목사는 최근 영화 <남영동1985>를 만든 정지영 감독을 만났는데, 그는 “아파하라고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종교도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법 스님은 쌍용자동차 문제나 노동자 자살 문제를 두고 아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에만 아파하다보면 “병든 종교 문제는 피해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종교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서기 어렵고, 너무 부담스러워 저쪽으로 가게 된다”는 것이다. 병든 사회도 아픔이지만 병든 종교도 아픔이다.

▲ 김인국 신부는 한국 천주교회가 사제단의 사회참여로 교세성장을 누렸으면서도, 그들의 수고를 무시하고 열매만 차지했다고 쓴소리를 했다. ⓒ한상봉 기자

속무름병에 걸린 한국 종교, 내적으로는 곪아터져
쓰러져 가는 낡은 교회, 우리가 위태롭게 지탱할 필요 있나?

한편 김인국 신부는 “가톨릭의 교계제도를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상명하복의 상하구조도 얼마든지 복음적 실천을 위한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가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사목자들이 교회의 공식문헌들이 가르치는 대로 평신도들에게 정의와 공정을 위한 투신의 필요성을 각성시켜야 하는데, “문제는 교회부터 자신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2007년 10월 삼성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맞붙었을 때 이를 몹시 불편하게 여긴 주교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사회 최강의 자본집단을 거슬러 싸움을 벌였으니 (주교들도) 두려웠을 것”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김인국 신부는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현세질서를 바로 잡는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높은 자리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에 서고 보면 슬그머니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개인이고 교회고 돈에 대한 미련만 버리면 얼마든지 떳떳하고 용감해질 수 있다”는 거다.

김기석 목사는 개신교의 타락은 “하느님 없이 자본 앞에 절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김 목사는 ‘속무름병’이라 했다. 속무름병은 수박에 드는 병으로, 겉은 멀쩡한데 속은 다 헐어서 먹을 수 없게 된다. 그는 이처럼 한국교회가 속무름병에 걸려 외형적으로는 성장한 것 같은데 내적으로는 곪아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웅 목사는 예수가 당시 종교를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한 것을 지금도 절감한다며, “개신교의 거대한 교회를 보며, 거기서 쏟아내는 말들이 강도의 논리를 피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개신교에 반감을 넘어서 ‘암적인 존재’라고 여기게 만든다고 말했다. “개신교가 그런 암적인 존재들을 길러내는 양성소 같다”는 것이다.

<잡설> 참석자들은 이런 지경이라면, ‘종교가 무너져 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인국 신부는 ‘교회가 과연 변화를 이룰 수 있는가?’ 물었을 때 대답은 ‘비관적’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각 종교마다 쇄신을 위해 헌신하는 집단들이 있지만 그런 노력들이 오히려 쓰러져가는 ‘낡은 집’을 위태롭게 떠받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면서 “낡아버린 교회라는 부대에는 복음이라는 새 술을 담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대안학교들이 기존의 거대학교에게 자극을 주듯, 나가서 새로운 길을 찾고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야 기성종교도 겨우 눈을 뜰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민웅 목사는 이를 두고 “안에서 뭔가를 한 것이 아니라 나오는 것으로 파라오 체제를 무너뜨린 출애굽 사건이 필요하다”며,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불복종운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는 대한문 앞에서 이태석 신부를 찾아야

김인국 신부는 이제는 “대한문 앞에 서 있는 이태석 신부를 찾아야 할 때”라고 말한다. 대한문 앞에서 시국미사를 드리는 사제들을 보고, 같은 아픔의 현장에 있었던 이태석 신부를 떠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천주교회의 성장 이면에는 민주화에 참여했던 사제들이 있었고, 그 선두에 정의구현사제단이 있었음이 자명한데 “주교들은 그 점을 외면하고 사제단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며 “열매는 가져가면서 농부의 수고는 무시하는 것”이라고 서운해 했다.

한편 김 신부의 고민은 ‘사제단 때문에 세상이 한국 천주교회를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톨릭을 ‘개념 있는 교회’라고 하지만, “정의구현사제단을 빼놓고 생각하면 다른 종교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주교들은 교세가 성장한 것만 보고, “엉뚱한 자신감이 생겨 자정과 쇄신보다 성장에 박차를 가하며 보수적인 입장으로 흐른다”고 비판했다. 기존 교회에서 탈출하긴 해야 할 텐데 뾰족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야말로 사제들에게는 여전히 엄청난 둥지이며 안전망이기 때문일까.

결국 <잡설>은 ‘일상의 거룩함’을 찾아가면서 종교안팎에서 공론을 만들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말한다. 도법 스님은 화엄경을 빌어 “부처 세상이 따로 있고 중생 세상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별나게 거룩함을 찾지 말고 일상에서 거룩함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웅 목사는 “하느님 나라는 너희 안에, 너희들 사이에 있다”는 성경 말씀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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