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초기역사를 말하면서 우리는 천주교회가 기진맥진하던 조선 후기의 퇴행적 봉건사회에 활로를 열어주었다는 자랑을 빠뜨리지 않는다. 반상의 계급 질서의 과감한 철폐와 남녀평등 추구 등 천주교의 경이로운 행보는 당시 집권계층이 최강의 공권력을 행사하여 제압하려 들 만큼 지배 이데올로기에 엄청난 충격을 그리고 어둠 속에 신음하던 수많은 민초들에게는 밝은 빛을 주었다. 훗날 백 년 뒤 이 땅에 들어온 개신교 역시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으나 찬란한 순교역사가 대변하는 천주교회의 역사적 파장의 넓이와 깊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교회가 보여준 가치선택과 지배체제와 대조되는 사회적 실천 때문에 교회와 신앙인들은 사회적인 미움을 감수해야 했다. 당시 천주학쟁이라는 호명 그 자체가 멸문지화의 원인이 되었고 분단 독재시대의 빨갱이라는 딱지 이상으로 미움과 저주의 낙인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로서는 잘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세월이 흘렀다. 오늘 누가 천주교 신자라고 해서 어떤 제재나 차별을 받는 법은 없다. 오히려 정 반대다.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부문에서 영향력을 갖춘 사회적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한국 천주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통계청 조사와 신자 증가 추이를 보면 신자 6백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일 것 같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는 초기 천주학쟁이들이 동시대인들에게 보여주었던, 그것 때문에 목숨마저 바쳐야 했던 ‘그것’이 빠져있다. 신앙의 선조들을 성인과 복자로 추대하려고 열을 올리지만 정작 그들이 추구했던 복음 실천의 현대적 의미 변용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진정한 현양이란 선조들을 과거의 시점에서 기억하고 마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보여주신 복음해석에 따라 우리의 복음 해석과 실천 또한 우리 사회에 활력이 되고 새로운 가치선택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작년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조사 결과 개신교회의 부진과 달리 천주교회는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다. 타 종단에선 가톨릭교회의 아름다운 성장을 운운하기도 하며 그 비결을 궁금하게 여겼다. 그러나 교회 위기의 징후는 도처에 빈번하고 이를 논하는 담론 또한 쟁쟁하다. 젊은이들의 공백, 냉담자 증가, 교회의 중산층화, 급속한 신자 노령화 현상 등은 그야말로 심각한 문제지만 정말 좋지 않은 징후는 초기 한국교회사가 자랑하던 복음의 비전 제시 기능이 발휘되고 있지 않다는 바로 그 사실이다. 비전의 부재는 일차적으로 신자들의 그리스도인 신원의식의 부재를 낳는다. 오늘날 신자가 된다는 것은 흔한 친목 모임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하는 것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신자들의 세속화 경향을 나무랄 것도 못된다. 교회는 그 탄생부터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인데 우리 교회는 그런 면모를 잃어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목자들이 먼저 그리스도인의 자아를 잃어버렸으므로 양들 또한 그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하면 크게 잘못일까? 신자로서 갖추어야 할 정체성의 위기를 논할 때 흔히 지목되는 세속화 현상과 신영성 운동 따위는 오늘 우리 교회의 여러 병폐를 일으키는 주범이 아니다. 참으로 우리 교회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복음적 비전의 상실이야말로 정체성의 원인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교회에는 더 이상 우리 시대 우리 이웃들에게 해줄 말이 바닥난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천상을 지향하며 이 지상을 순례하는 말씀의 교회에 어찌 말씀이 궁하리오! 혹시 궁하게 되었다면 오늘의 교회가 천상을 ‘제대로’ 지향하지도 못하고, 이 지상을 ‘온전히’ 순례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리라. 천상을 구실로 지상의 삶을 모른 체 하거나, 지상의 현실과 논리를 들어 천상의 사고방식과 비전을 비웃는다면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여기서 천상과 지상은 하나를 구실로 다른 하나를 배척하거나 외면하기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교회는 천상과 지상의 양 날개로 움직이며 양자를 삼투시킴으로써 ‘지금 여기’를 천상의 논리에 따라 변화시켜 가야 하는 존재이다. 바로 이 삼투의 과정을 얼마나 치열하게 거치느냐에 따라 교회의 복음적 비전은 끊임없이 갱신될 수 있다. 진심을 다해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오늘날 우리 교회가 한국사회에 존재 이유는 무엇이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교회가 이 땅의 이웃들에게 내 놓아야 할 복음적인 삶의 방식과 가치 추구는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진교 2007-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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