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에세이 <생명의 정치> 출간
"수평적 네트워크로의 정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대"

대통령선거가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두 야권 후보는 후보등록 전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런 정국에서 언론에서 주목하는 이가 있다. 참여정부에서 첫 여성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다. 2008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치일선에서 한걸음 물러나긴 했지만 참여정부 시절 함께 일한 문재인 후보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민주당 인사 일 뿐더러 안철수 후보 캠프에는 강금실 변호사의 친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지난 10월 초, 그간의 고민을 녹여낸 책을 출간했다. 제목이 <생명의 정치>(2012, 로도스)다. 생명의 가치가 실종된 지난 몇 년을 반증하듯, ‘생명’이 민초들이 곳곳에서 외치는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를 생명과 연관시키는 작업은 그리 익숙지 않다. 생명이 정치의 중심으로 들어와 본 적이 없는 가치이기 때문이리라. 2008년부터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서 공부해 온 그가 구상한 ‘생명의 정치’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일터인 법무법인 원에서 강금실 변호사를 만났다.

▲ 강금실 변호사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생명과 권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생명, 여성을 중심에 둔 수평적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그는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정치는 ‘인간 중심’이다. 국민의 기본권, 인간의 존엄과 가치 등이 정치에서 다루는 가치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이것만으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사회적 이슈들이 많아졌다. 4대강이 대표적인 예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중심에 놓고 정치를 고민해야 할 때다.”

강 변호사는 그의 저서에서 ‘권력’과 ‘생명’의 문제에 집중한다. “권력이란 국민이라고 하는 총체적인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속하며 공동체 생명의 힘일 뿐이지, 그 누구도 권력을 가질 수 없다”(p.113)고 확인하며 “대통령이 되려는 의지는 권력 의지가 아니라 철저하게 공익을 추구하겠다는 ‘공동선에 대한 의지’여야 한다”(p.115)고 강조한다. 그는 또 촛불집회와 SNS 등을 통해 드러난 ‘생명체 각자의 다양한 창발성을 기반으로 한 유기적 공동체’를 통해 변화된 시대 흐름을 읽고 정치구조가 ‘수평적 네트워크’, ‘수평적 권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조직이 분권, 네트워크, 아래로부터의 조직으로 기본원칙과 방향을 설정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깃발아래 모이는 , 리더와 군중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지금의 자율적이고 다양한 움직임을 담아낼 수 없다.”

그는 한편 여성의 문제에도 천착했다. 여성이 가진 생명에의 감수성에 주목하고 여성성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모델로 ‘생협’을 언급하기도 했다. 강 변호사는 자신이 사회적으로 주류의 삶을 살았지만 비주류적 감성에 대한 균형을 지니게 된 것은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300명중 여성은 3명이었다. 1% 세대라고 말한다. 독재정권 시절 사법기관에서 일을 시작해 13년간 판사로 있었고 참여정부 시절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을 지낸 것도 컸다. 법무부 장관이 통일부, 외교부, 재경부와 함께 권력 4위의 요직인데 여성장관이 있었던 적이 없다. 이런 경험들이 나의 문제의식의 기반을 형성해왔다. 여성과 권력의 문제가 나의 화두일 수밖에 없다.”

여성성이 살아 숨 쉬는 민주주의를 꿈꾸는 그는 근래에 계속되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여성 대통령론’에 대해 적잖은 우려를 표현했다.

“<생명의 정치> 출판 기념회에 참석했던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선 후보는 이를 두고 ‘여성에 대한 모독이며 역사에 대한 반역’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표현이다. 여성은 생물학적 여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로, 공동체 속의 여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새누리당의 일사 분란한 지위명령체계를 보라. 소통이 부재하는 권위주의의 표상이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집권 40년간 벌여놓은 여성격차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2011년 세계경제포럼 발표에서 우리나라 여성 격차지수는 135개국 중 107위였다. 이는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계속된 군사문화와 남성적 권력이 약자를 배제하고 억압해온 역사의 결과다.”

▲ 강금실 변호사. 그림과 문학을 좋아하는 그의 책장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자리 잡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권력에 대한 깊은 회의 속에서 권력으로부터 죽임당한 예수를 가슴으로 만나다

자신에게 요구되었던 사회적 역할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면서도 ‘인간 강금실’을 잃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주고 힘이 되어준 것은 신앙이다. 강 변호사는 2004년 법무부장관 시절 세례를 받고 이한택 주교(의정부교구)로부터 ‘에스더’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는 세례를 받기 전에도 종교에 대해, 예수의 삶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많았다. 성경공부 모임에도 참석하고 신학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지만 전통적으로 불교집안이었던 까닭에 ‘그리스도교를 갖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그랬던 그가 법무부에 간 이후 마음이 힘들어졌다. 일상에서 오는 힘든 문제들도 많았지만 생명을 억압하고 인간을 괴롭히는 국가 권력의 정체, 한 인간이 권력 지향적이 되며 돌변하는 모습들 등에서 권력에 대한 극심한 회의에 빠졌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가슴으로 들어왔다. 세속 권력으로부터 죽임을 받은 예수, 그러면서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했던 예수, 거기서부터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는 갈망이 있었고, 하느님의 이끄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2009년 생명대학원 재학시절 로마 이탈리아 성지순례를 다녀온 후, <오래된 영혼>(2011, 웅진지식하우스)이라는 제목의 기행문을 세상에 내 놓기도 했다. 기행문을 쓸 당시 그는 “바오로의 회심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였던 권력자에서 하루아침에 복음의 사도로 돌아선 그의 회심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워 오랜 시간을 뒤척였다. 결국 해답을 찾지 못했고 책에도 쓸 수 없었다. 해답을 찾기 위해 그는 작년부터 혜화동 가톨릭대학교에서 백운철 신부로부터 신약입문과 공관복음 수업을 듣고 있다.

“바오로 사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그 분의 확고한 믿음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어려움이 올 때 이 어려움의 원인이 무엇인가, 정체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과정이 아니라 밀고 나가는, 그냥 믿는 굳건한 믿음 말이다. <생명의 정치>를 쓰면서 그런 믿음이 나에게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합적 성찰을 통해 상처를 넘어 생명공동체로 향해야

그는 책에서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와 함께 권력을 부정적으로 보는 개인들에 대해서도 ‘성찰’을 요구했다. 성찰은 “생명가진 존재의 본분”이며 “자기 성찰에 의해서만이 생명 공동체의 축제를 향해 나갈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에게 성찰은 ‘우주와의 관계’속에서 나오는 총체적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어디로부터 왔는가’를 물으면 과학적으로는 40억년 된 생명계로, 역사적으로는 부모의 부모를 거슬러 올라가는 삶의 궤적으로 올라간다. 성찰이란 것은 이렇게 과학적이고 역사적이며 또 종교적인, 복합적인 측면을 갖는다.”

그는 많은 이들이 어린 시절 상처로부터 영향을 받고 그것을 극복하며 살아가게 되는데 그 치유의 과정 또한 ‘성찰’이라고 말한다. 가족, 사회, 역사에 대한 통합적 성찰을 통해 자기 삶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찰은 ‘자아의 확장’으로 연결된다. 내 인생이 나만의 인생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와 지구와 나아가 온 우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나’라는 고립되고 개별적인 존재가 아니라 확장된 우주적 자아로 내 개인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그랬을 때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능력은 연관된 삶에 대한 각성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존재의 근원을 물으면 닿게 되는 것이 종교이며 공동체 속에서 구체적인 삶의 근원을 물으면 닿게 되는 것이 정치일지도 모르겠다. 종교인이며 정치에 대한 고민이 깊은 그에게 근원은 파편화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니 근원으로 물어나가면 이 둘이 하나로 만나는 것이 아니겠냐고 물었다. 강 변호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은 모두 합쳐져야 한다”고 답한다.

“파편화되고 층층이 나눠진 차원이 아니다. 모두 통합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정치가 자꾸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은 분리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에 삶과 생명이 담겨야 정상적인 정치가 될 것이다. 일상 속 정치가 종교성을 포괄할 정도로 회복이 되어야 한다.”

그는 이런 고민을 담아 ‘생명의 정치’를 넘어서 ‘영성의 정치’를 말하고 싶다 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언제 만나도 마음 한 구석이 건드려지는 성경구절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마태오 복음서 6장의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 보아라, 들에 핀 나리꽃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지켜보아라’로 시작하는 말씀을 좋아한다고 했다.

“예전부터 좋았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 정치라는 게 온통 먹고 사는 문제 아닌가.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말씀, 늘 마음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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