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로 시작한 하루였다. “죄송합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못 나갈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고 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를 걱정하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나는 ‘아니야, 요즘 너무 바쁘고 힘들었어. 나는 충분히 지쳤어. 좀 쉬어야 해’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다시 침대로 돌아가 이불을 덮었지만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외면해버린 오늘 하루의 일정이 괜히 신경이 쓰였다. 결국 한 시간 정도 뒹굴 거리다 집을 나섰다. 제법 쌀쌀해진 공기에 투덜거리면서 어째서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 그곳에 있는 누군가에게 찾아가 불평과 어리광을 늘어놓을 심산이었는지도.

ⓒ여경
계단을 올라 들어간 성전은 하필이면 그날 바닥공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하고 중얼거리며 별다른 의도도 의지도 없이 긴 의자에 걸터앉았다. 마침 바닥재를 교체하는 사람은 제대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지도, 십자가를 올려다보지도 않고, 그저 그 한 명의 노동자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문득 찾아간 성당에서 만난 노동자

그는 작업에 가장 최적화된 복장으로, 그러니까 무릎을 얼마든지 굽혔다 펼 수 있는 헐렁한 바지를 입고, 줄자와 칼 등을 꽂을 수 있는 복대를 허리에 차고 쉼 없이 움직였다. 아무 말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더러운 바닥을 뜯어내고, 새 바닥재를 그 자리에 대어보고, 오리고, 다시 맞춰보고, 붙이고…. 그렇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며 이쪽에서 저쪽으로 조금씩 옮겨갔다. 느리지만 꼼꼼한 과정이었다. 점점 새 카펫으로 바뀌어가는 제대를 보면서, 그리고 그 눈에 잘 띄지도 않은 사소한 작업을 진지하게 몰입하여 해나가는 그의 손동작을 보면서, 나는 조금씩 내 마음의 바닥들도 바뀌어 가는 느낌을 받았다. 덕지덕지 붙어있던 불만의 딱지들이 뜯겨지고, 여기저기 흘렸던 슬픔의 얼룩이 닦아지고, 새로운 빛이 돋아나는 것 같았다.

미묘한 자리에 난 작은 상처들이 손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듯이, 나를 거슬리게 하던 감정들은 사실 아주 작고 낡은 고집 같은 것이었다. 혹은 엄살을 피우고 싶던 외로운 핑계였거나. 이런 어린 마음을 부끄럽게 하는 것은 언제나 소박한 진실들이고, 성실한 진심들이다. 아무런 불평도, 욕심도 없는 손, 오랜 세월 낮은 자리에 있느라 굽은 허리, 말 없는 등, 닳은 소매끝자락들, 이런 것들이 나에게는 스스로를 참회하게 하는 신의 현시이다.

내일은 더 가벼워지길, 조금 더 진실해지길

그렇게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동안, 괜히 걸리적대던 마음 한 구석의 짐이 놀랍게도 덜어지고 나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성전을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문 앞에서 돌아서서, 나에게 너무나 투명한 진실을 보여준 그 정직한 등을 향해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파랬다. 한 걸음, 한 걸음, 계단을 내려왔다. 한 계단을 내려올 때마다 빛의 밝기와 온기가 달랐다.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도 매 순간 그 각도와 결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매 순간이 이렇게나 경이로운 세계인 것인데,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작게 숨 쉬고 있는 존재일 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무엇이 그리도 못마땅하고 버겁고 짜증이 났는지. 초록에서 노랑으로, 또 빨강으로 바뀌어가는 담쟁이들을 올려다보면서 내일은 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조금은 더 진실해지리라 다짐해본다.

 

 
 

여경 (서강대 국어국문학과)
삶, 사람, 꽃, 벗, 별, 꿈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울림이 예쁜 말들에 이끌려 국어국문학과에 가게 되었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이를 위해 문학과 예술의 힘을 빌리려 한다. 시와 음악과 그림, 나무, 물이 흐르는 공간,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고향 바다를 닮아 평온하고도 깊고 강인한 사람이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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