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과 탈핵운동에 대한 주교들의 대응을 바라보며

늘 안타까운 눈으로 모니터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땅이 있다. 제주 강정. 천주교 제주교구장인 강우일 주교는 그 곳을 일컬어 “이 작은 고을에서 평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평화의 왕자라는 예수조차도 빵 굽는 동네 베들레헴에서, 그것도 그 초라한 마구간에서 태어났으며, 성경에서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던 나자렛이란 작은 시골마을에서 자라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강정에 가서 보면 몇몇 천주교 사제들이 공사장 입구를 지키면서 매일 같이 미사를 봉헌하긴 하지만, 정작 미사에 참석하는 이들은 양손가락으로 헤아려도 충분할 만큼 적은 숫자에 불과하다. 그러니, 경찰들이 제멋대로 밀어붙이고 무시하며 조롱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심지어 문정현 신부가 들고 가던 성체마저 경찰에 밀려 땅바닥에 뒹굴 정도니 말이다.

ⓒ 진달래산천

이렇게 ‘국가안보’를 들먹이며 강경일변도로만 나오는 정부와 경찰의 태도에서 애당초 공손함이란 눈을 씻고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냉담하기 그지없는 제주도민들의 반응이다. 때때로 뭍에서 강정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이들이 찾아가 시위도 해보고 천주교 주교까지 나서서 공사를 반대해 보지만, 제주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의 반응 역시도 뜨뜻미지근하긴 마찬가지다. 4.3의 기억을 지닌 사람들은 ‘산사람’들의 무참한 죽음을 경험하면서 경찰을 두려워하고, ‘반정부’ 활동처럼 보이는 일에는 지극히 몸을 사린다. 그러는 사이 구럼비 바위는 콘크리트에 갇히고, 연안을 돌며 살아가던 목숨들은 그 자리에서 질식사하고 있으며, 저들이 보기에 불과 한 줌 밖에 안 되는 강정 주민들의 목소리는 언론에서 사라진 채 매장되고 있다.

수염이 성성한 문정현 신부는 이를 지켜보다 못해 오는 이들마다 옷깃을 붙잡고 절절히 호소한다. “제발, 여기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다른 한 편에서는 예수회 수도자인 이영찬 신부가 공사장에 시멘트를 나르는 레미콘 위로 올라가려고 한사코 안간힘을 쓴다. 조금이라도 공사를 지연시키고 싶은 까닭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가리켜 언젠가부터 ‘레미콘신부’라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 전 경찰은 바로 그 이영찬 신부를 강제로 연행해 차디찬 감옥으로 밀어 넣었다. 아니, 비단 이영찬 신부뿐만 아니라 박도현 수사, 김정욱 신부, 김성환 신부 등 여러 성직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연행과 구속, 석방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제주 강정에서는 천주교 사제들이 ‘가장 상습적인 범죄자’로 내몰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하지만 혓바닥이 감겨들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 제주 강정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음에도 뭍에 사는 우리에겐 여전히 ‘바다 건너 일’이다.

헨리 나웬이란 영성가가 있다. 그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한 젊은 탈주병이 적의 눈을 피해 어느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 그 마을 사람들은 그를 친절하게 대했고, 은신처를 제공했다. 그러나 탈주병을 찾으러 온 병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탈주병의 행방을 묻자 사람들은 겁에 질렸다. 병사들은 동이 트기 전에 탈주병을 내놓지 않으면 마을에 불을 지르고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사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사제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탈주병을 적의 손에 넘겨줄 것인가, 아니면 마을사람들을 모두 죽게 할 것인가. 사제는 해결책을 얻기 위해 자기 방에 들어가 동이 트기 전까지 기도하며 성경을 읽었다. 드디어 새벽녘이 되어 사제는 성경을 넘기다가 우연히 이 구절을 발견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

사제는 성경을 덮고 이내 병사들을 불러 탈주병의 은신처를 알려주었다. 탈주병이 끌려가 살해당한 뒤, 마을에서는 사제가 마을사람들을 구했다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사제는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슬픔에 잠긴 채 자기 방에 남아 있었다. 그날 밤 천사가 사제에게 나타나 “당신은 무엇을 하였소?” 물었다. 그가 “탈주병을 적의 손에 넘겨주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천사는 “당신은 메시아를 넘겨준 것을 모르는가?”라고 되물었다. 그 탈주병이 메시아인줄 어찌 알겠느냐는 사제의 변명에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성경을 읽는 대신에 단 한 번이라도 그 소년을 찾아가 그의 눈을 응시했더라면 당신은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상념에 빠지는 일보다, 묵상에 잠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고통의 현장’을 직접 제 눈으로 보는 일이다. 시몬 베유 같은 이는 중국에서 군벌들 사이의 내전으로 죽어가는 인민들의 참상을 다룬 신문기사만 보고도 눈물이 쏟아졌다고 한다. 이처럼 타고난 공감능력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직접 가서 보고 만지고 느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참한 처지에 놓인 목숨들을 소문이나 기사로만 접하고 단지 사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생명’으로 느끼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끌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제주 강정에서 왜 사제들이 그토록 애달파 하는지 공감하게 될 것이다. 내 안에 이미 고여 있는 사랑을 길어 올릴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사랑하라, 그리고 뭐든지 하라”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격언을 모든 논쟁을 거슬러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 진달래산천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 연루자들을 숨겨주었다는 이유로 구속된 천주교 원주교구 최기식 신부도 아마 김현장과 문부식과 김은숙 씨를 직접 만나보지 않았다면 그처럼 엄청난 결정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착한 눈매를 보지 않았다면 ‘빨갱이’로 지목된 이 젊은이들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그저 평온한 사제의 일상을 살았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건 ‘보는 것’이다. 메시아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하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가 한 말도 똑같았다. “와서 보라”는 것이었다.

제주 강정 해군기지 문제뿐 아니라, 탈핵운동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지난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천주교중앙협의회에서 열린 2012년 춘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1주기를 맞이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탈핵문제와 관련해 요청한 성명서가 올라왔다. 그러나 총회는 그 탈핵성명서의 발표를 보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오는 11월 13일부터 대구대교구 경주에서 열릴 한일주교교류모임의 주제가 탈핵에너지 문제임을 감안해, 그때에 가서 주교회의 차원의 성명서 채택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한 주교회의는 강정 해군기지 문제와 관련된 주교회의의 지침을 요청한 일부 사제들의 제안에도 응답하지 않았으며, 예수회 김정욱 신부 구속과 사제 수도자들에 대한 경찰의 연행 등에 대해서도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았다. 덧붙여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안한 총선과 관련된 성명서 역시 주교회의에서는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지난 10월 15일부터 18일까지 열린 추계 주교회의 정기총회에서도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탈원전, 탈핵’에 관한 주교회의의 가르침을 요청한 데 대한 성명서 초안을 검토한 바 있다. 그러나 결론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성명서 발표가 정치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성명서를 발표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11월 13일에 열릴 한일주교교류모임에서도 역시 대선을 이유로 성명서 발표가 불발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

날마다 공사장 앞에서 힘든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천주교 사제들, 그리고 원전의 잦은 고장으로 인한 위험성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밀양, 삼척 등에서 탈핵을 요구하고 있는 여자수도자들의 간절한 외침이 주교회의에서는 한가로운 공방에 그치고 만 셈이다. 이는 주교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교회의에서는 의미 없는 탁상공론만이 난무할 뿐이다. ‘신앙의 해’를 맞이한 가톨릭교회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사회교리’를 강조하면서도, 실상은 끊임없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당장의 필요에 전혀 응답하지 못하는 태도는 결국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 속에서 세상과 다르게 존재해야 하는 교회”의 장상들이 세상의 눈치를 보며 피조물들의 간절한 소망과 사제 수도자들의 공동식별 능력을 마치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이번 ‘신앙의 해’를 맞이해 교황 베네딕토 16세 뿐 아니라 서울대교구 염수정 대주교 등 숱한 주교들이 담화를 통해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는 ‘신앙과 삶의 분리’ 현상은 주교회의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두는 궁극적으로 주교들이 현장에 가보지 않기 때문이다.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원래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으나, 형제 사제들의 죽음과 빈민의 참상을 목격하고는 종전의 태도를 바꾸어 마지막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하느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택했다. 윤공희 대주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1980년 광주학살을 직접 목격하고 난 뒤 비로소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왜 “교회는 세상 가운데” 존재해야 하며 그들과 더불어 기쁨과 희망과 고통과 슬픔을 나누어야 한다고 전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니 탈주병을 적의 손에 넘겨준 사제에게 천사가 전한 이야기를 다시 진지하게 새길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대신에 단 한 번이라도 그 현장을 찾아가 그 사람들의 눈을 응시했더라면 그곳에서 그리스도가 아파하고 계심을 충분히 알았을 것이다.” 정치적 계산보다 소중한 것은 복음이 지금여기에서 무엇이라고 명령하는지 경청하는 일이다. 그리스도에게 '다음'이란 없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매 순간, 이미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고 계신다.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이 기사는 지난 11월 3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글을 교회 현실에 맞게 수정 보완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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