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찬 신부(예수회) ⓒ정현진 기자
어찌하다 보니 제주도 경찰서 유치장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옥중의 글들을 여러 번 읽어 보았지만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하였습니다.
일 년 전 제주도 여행을 왔다가
강정을 보고 ‘시대의 아픔’으로 여겨서 투신한 것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9-11)

“여러분이 한뜻으로 굳건히 서서
한마음으로 복음에 대한 믿음을 위하여 함께 싸우고,
어떠한 경우에도 적대자들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표이며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표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하는 특권을,
곧 그리스도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습니다.”(필리 1,27-29)

조금이나마 이러한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를 드리며
위의 말씀에서 전한 행복과 특권을 누리게 되어 감사롭습니다.
물리적으로 옥에 갇혀있지만 마음의 옥이 더 문제입니다.
‘나’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찰은 해군기지의 불법적 공사를 지탱해 주는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활동가들의 주장과 활동에 대해 공정한 대처를 할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 해군의 항공모함 기준으로 설계가 되었고
군항 위주의 설계임이 드러났습니다.
국무총리실의 크루즈 선박 입출항 기술 검증 위원회에서도
민항이 아님이 드러났습니다.
그럼에도 해군은 공사 진행을 24시간 체제로 강행을 하고 있습니다.
민군복합항 약속이 깨졌음에도 제주도지사와 도민들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당장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리고 약속을 지키도록 궐기해야 합니다.

ⓒ진달래산천

활동가들은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공사장 정문 앞에서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정당한 항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찰과 법원은 활동가들을 연행하고 구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를 구속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며 인권탄압이며
공권력의 폭행인 것입니다.
항의과정에서 한 여성 활동가가 여경의 옷을 잡고
현장지휘자에게 과잉진압에 대해 항의한다고
체포 연행하는 것에 흥분한 3~4명의 활동가들이
항의하는 와중에 나도 체포되고 구속된 것입니다.
그 내용들을 보면 구속 기소될만한 중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인권탄압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구속됨으로서 해군기지 문제가 더욱 공론화 되고
많은 사람들이 더욱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과 상관없는 강 건너 불로 생각하지 말고
발등의 불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핵발전소, 4대강,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와
대선 후보자들의 도덕성 문제등과 함께
해군기지는 민주주의와 생명평화와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제주 해군기지는 평화논리와 힘의 논리의 각축장입니다.
‘해군기지가 없는 것이 안보와 경제에 좋다’와 ‘있는 것이 좋다’는 논쟁입니다.
이에 대해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나라 안보용이 아니며
단지 미국이 중국을 제압하기 위한
미해군 미사일 기질서의 무기경쟁을 가속화 시키는 단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동북아는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에게 탓을 돌리며
동북아시아 지역을 화약고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들의 패권주의, 국가이기주의에 눈이 멀어
무력으로 서로를 제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과 여타 모든 나라들이 연대하여
전쟁고조가 아니라 전쟁 완화, 무기 감축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평화와 상생 공존의 길을 찾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합니다
왜 한국이 고래싸움을 말리려 하기보다 끼어들어 새우등 터지려 한단 말입니까?

여타종교들과 뜻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천주교도 나서야 합니다.
전쟁이 아니라 평화와 상생과 공존의 길을 찾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천주교 사회교리는 무기증강이 아니라 무기감축, 상생공존을
행할 교리로 명확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자라면 이 내용을 당연히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몇몇 성직자들이 믿지 않고 따르지 않고 있으니 개탄스럽습니다.

ⓒ진달래산천

동아시아 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이 합심 연대하여
미국과 중국의 패권싸움을 멈추도록 해야 합니다.
이러한 발상은 10월 29일 제주도에서 제기된 바 있습니다.
제주 4·3국제평화심포지엄에서 고창훈 제주대학교 교수는
‘제주 4·3 해결과 관용성 이론’ 제목의 발제를 통해
“4·3의 진정한 해결은 6자 회담국에 의한 세계 평화의 섬 협약”이라고 제안했습니다.
2003년 한국정부가 제주도민에게 사과 했듯이,
그리고 하와이가 미국정부로부터 인권침해에 따른 희생에 대한 사과를 받았듯이
제주도 역시 미국으로부터 사과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6자 회담국이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해,
동북아 주요국가간의 갈등과 대결을 완충시키는 평화의 섬으로 설정했고
이를 다루어 나갈 국제기구 설립으로 이어지는 비전을 제시한 것입니다.
같은 세미나에서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세계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기 위한 노력을 한다면
그 자체가 중요한 평화운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제주도가 비무장지대로서 총칼 없는
아름다운 태고의 신비를 잘 간직한 섬으로 남아
온 세상 사람들이 적이 아닌 친구로서 만날 수 있고
생명평화를 배우고 상생공존의 사도가 되게 하는 섬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참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면서
안타까이 우시는 모습을 마음으로 느낍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2-44)

부디 제주도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 아니라
고래싸움을 말리고 제주도가 생명평화가 충만하여
전 세계인들의 하느님의 평화를 온 누리에 펼치는 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뜯고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넣는 평화의 섬이 되기를 기원합니다.(이사 1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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