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14]

그동안 나는 무릉도원에 다녀왔던 걸까? 2주 만에 집에 돌아와서 마을 분들을 만나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불과 2주 사이에, 어떻게 저렇게 서리 맞은 호박잎처럼 파싹 늙으실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가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이들 크는 것도 무섭지만 어르신들 늙는 것도 순간이구나 싶어서 마음 한구석이 애잔했다.

그리고 열흘 뒤, 거울 앞에 선 내 얼굴을 보고는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불과 열흘 사이에 나 또한 몰라보게 쪼그라든 것이다. 눈은 퀭하고 살결은 거칠거칠, 며칠 앓았던 감기 때문에 코밑까지 다 헗어버린 터라 누가 보면 난민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할 만 했다. 가을걷이라고 하는 무서운 파도는 나 또한 예외 없이 삼켜버린 것이다.

▲ 해 넘어갈까 무서워 부지런히 호롱게로 나락을 털고 있는 아빠와 다울이. ⓒ정청라

그렇다. 순식간에 세월이 간 건 가을걷이 탓이다. 바쁘다, 바쁘다 해도 이맘 때 농사꾼만큼 바쁜 이가 있을까. 나락 거둬들여야지, 콩이며 들깨며 말리고 털어야지, 수시로 호박 썰고 나물거리 데치고 해서 말려야지, 고구마나 땅콩도 캐야 한다. 그뿐인가. 가을걷이 사이사이에 보리나 밀, 마늘, 양파 같은 겨울 작물도 심어야 한다. 정말이지 일이 순식간에 와구와구 덤벼드니 오늘은 뭘 하지 숨 고를 틈도 없다. 누가 마감 날짜를 정해준 것은 아니지만 해가 넘어가기 전에,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들인 수고가 말짱 꽝이 되고 마니까. 계절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정말 숨 가쁜 추격전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올해는 나락 농사가 두 배 넘게 늘었기 때문에 일이 더 바쁘다. 내가 도울 수도 없는 형편이라 나락을 베고, 호롱게로 털고, 검불을 날리기까지 모든 과정을 신랑 혼자 다 하고 있다. 그것도 발이 푹푹 빠지는 수렁논에서, 멧돼지가 자빠뜨려 진흙투성이가 되어버린 나락을 일으켜 세워가면서 말이다.

하루는 나랑 다울이도 도시락 배달을 하러 갔다가 몇 시간 신랑이 하는 일을 도왔는데, 그러고 나니 신랑 앞에서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얼굴에까지 진흙이 튀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벼를 베는 모습하며, 호롱게로 타작을 할 때 한 알도 빠뜨리지 않으려고 꼼꼼하게 벼 이삭을 훑는 모습까지,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나니 먹고 사는 일이 그만큼 엄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리로 쌀을 일 때 한 톨도 허투루 흘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에 다짐을 하게 됐다. 나를 살리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 가운데 오는지를 생각한다면 어찌 함부로 먹고 함부로 버릴 수 있겠는가.

▲ 호롱게 바퀴가 무섭게 휘리릭릭 굴러가지요? 굴러가는 소리에 맞추어 낟알이 우수수수 쏟아집니다. ⓒ정청라

그러고 보면 농사를 짓는 행위는 그 어떤 종교 의례보다 성스럽고 아름다운 것 같다. (단, 편법을 쓰지 않고 모든 과정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나는 다울이를 뱃속에 가졌을 때부터 아이에게 어떻게 종교를 가르치고 신앙심을 물려줄 수 있을까 고민을 해왔는데, 신랑이 벼 수확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눈이 확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농사를 짓는 행위 그 자체보다 더 종교적인 행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어쩌면 ‘밥’이라는 낱말 하나만 깊이 새기고 곱씹어도 그게 바로 진리를 찾는 길이 될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그날도 무지무지 바빠서 다울이 고사리 손까지 빌려 함께 땅콩을 따고 있었는데, 별안간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바로 여호와의 증인이라 자처하는 아저씨들이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 바지를 갖춰 입고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서신 것이다. “애기 아빠는 어디 갔나요?”하고 물으시면서, 우리 가족 때문에 일부러 이 골짝까지 찾아오는 거라 생색을 내시면서.

다른 때 같으면 나이 지긋한 분들 앞에서 억지로 예의를 차렸을 테지만, 그날은 정말이지 예의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내가 먼저 다다다닥 하고 싶은 말들을 다 쏟아 부었다.

“저는요, 신의 이름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성경책만 진리라고 여기지도 않고요. 저도 오랫동안 종교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서요, 아저씨들 이야기는 안 들어도 줄줄 외거든요. 그냥 좀 내버려두시면 제가 알아서 제 길을 갈게요.”(솔직히 이 바쁜 철에 깔끔한 옷차림으로 마을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는 것 자체가 꼴불견이라는 말도 꼭 하고 싶었으나, 그 말만은 꾹 참았다.)

아저씨들은 이런 솔직한 반응이 좋다며 더욱 반가워하며 성경책을 들이밀었지만, 나는 끝내 고개를 돌리고 묵묵히 내 할 일을 했다. 땅콩을 따고 고구마를 캐는 게, 내게는 신의 이름을 아는 일보다 더 중요하니까. 이제 나는 신을 알기보다 신과 함께 살고 싶다. 가을걷이 하느라 쇠약해진 농사꾼 이웃들과 거친 손을 포개어 잡고서 말이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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