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진석 신부 ⓒ정현진 기자
내가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많은 것은 순전히 우리 아버지 탓이다. 아버지의 취미는 선거운동이었다. 아버지의 호사로운 취미 덕택에 선거철만 되면 어머니는 부녀회원이나 청년회원들을 모아 밥해 먹이기 바빴고 남동생과 나는 집집마다 선거 홍보물을 돌리러 다녔다. 그때도 그런 일은 불법이었지만 가장이 앞장 서는 일이라 우리 가족은 사명감을 가지고 독립운동이나 벌이듯 선거운동을 했다,

그렇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건만 얻은 소득은 거의 없었다. 국회의원이건 대통령이건 아버지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아버지가 청년 시절 집안 어른에게 뺨을 맞아가며 선거운동을 해서(우리 문중에서 후보가 나왔는데 아버지는 다른 후보를 밀었음)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일이 있었다. 물론 아버지야 우리 동네만 책임졌지만 말이다. 어린 우리들의 눈에도 누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한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노상 엉뚱한 후보를 대놓고 지지했다.

그런 아버지 피를 이어받았는지 나도 투표권을 얻은 후 무수히 많은 투표를 했지만 내가 찍은 후보가 당선된 일은 손에 꼽힌다. 그런데도 총선이나 대선이 다가오면 설렌다. 새로운 정당 혹은 참신한 인물들이 나와 지긋지긋한 기성 정치판에 새바람을 일으켜주었으면 하는 기대 때문이다. 지난 총선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말 기다리고 기다렸던 정당이 나타났다. 정권을 다투는 기존의 정치세력이 아니라 위기에 빠진 현대 문명의 문제점을 생명과 평화의 관점에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식 있는 시민들의 정치 연대가 결성된 것이다. 독일에서 같은 이름의 정당이 전당대회를 여는 광경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잔디밭 위에서 뛰놀고 엄마들은 벤치에 앉아 뜨개질하며 아빠들이 하는 연설을 듣는 소풍 같은 집회였다. 교회 묶인 몸이라 그 정당에는 가입할 수 없었고 대신에 수도형제들과 지인들을 열심히 설득했다. 전국 3%의 지지를 얻으면 비례대표를 한 석이나마 얻을 수 있으니 희망이 보였다. 그런데 막상 개표를 하고 나니 득표율이 고작 0.48%였다. 1,000명의 사람 중에 나와 정치적 의견을 같이 하는 사람이 고작 다섯 명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상위 1%란 말을 여기저기서 많이 들어봤지만 이런 수치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한 주 전에 들은 0.22%라는 수치보다는 나았다. 이 기막힌 수치는 우연한 기회를 얻어 출연하게 된 교회방송 프로그램의 주간 최고 시청률이었다. 전부터 친분이 있던 피디가 찾아와 복음말씀을 젊은이들과 함께 나누는 토크쇼 형태의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며 출연을 부탁했다. 메인 MC를 맡은 신부님의 뛰어난 역량을 알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보조만 맞추어 주면 될 것 같아 승낙했다. 그런데 촬영준비를 위한 회의와 복음 나누기 자리에서 만난 출연진과 제작진의 각오가 대단했다. 신앙에서 멀어지는 젊은이들을 교회로 불러들이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하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

새로 맡은 소임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기에 거의 매주 서울을 오가는 고단한 일정을 소화해 내며 촬영을 했다. 난생 처음 얼굴에 분도 발라보았다. 첫 방송이 나가고 피디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괜찮다며 약간 들떠있었다. 시청률을 물었더니 0.17%라나. 까무러칠 뻔 했다. 이건 공중파 방송의 애국가 시청률만도 못하지 않는가. 그 미미한 숫자의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이 고생을 하나 싶었다. 그래도 피디는 홈페이지의 다시보기를 통해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이 예상외로 많다며 프로그램의 장래를 낙관했다. 피디의 바람대로 시청률은 눈곱만큼씩 올라가고 있지만 프로그램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려면 어느 백년이 걸릴는지.

가치 있는 일을 할 때는 보람을 먼저 찾아야 하는데 자꾸만 숫자나 수치에 연연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과 주일미사를 드릴 때도 입당해서 제대에 서면 습관적으로 오늘은 몇 명이나 왔는지 머릿수를 헤아린다. 똑같은 미사를 드리는 데도 성당이 썰렁하면 내 마음도 썰렁해진다. 더듬거리는 영어 실력으로 강론을 준비하고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여 미사를 집전하건만 참석자가 별로 없으면 모든 노력이 헛수고로 돌아가 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고 만다. 숫자로 환산된 성적 하나로 생활과 인격 전체를 평가받던 학창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인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 습성이 되어버린 듯하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숫자로 된 결과가 기다려진다. 기대 반 걱정 반 하면서 말이다. <분도>지 지난 호에 대대적인 광고를 내고 시작한 <분도> 독자 후원회 접수 결과도 그런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니 기대를 많이 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평판도 좋았고 무가지로 배포되는 데도 이사를 가면서 계속 받아 보고 싶다며 변경된 주소를 알려오는 독자들이 많았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뚜껑을 열고 보니 겨우 62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일만 명 가까운 독자 가운데 접수된 건수이니 이건 정말 백분율로 잡을 수도 없는 수치였다. 지난 5년 동안 그렇게 공을 들었건만 독자들에게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후원금을 낼만한 공감도 얻어내지 못했단 말인가. 몰려드는 자괴감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한편 개인 사업으로 벌인 일이 아니니 괘념치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들어 유난히 나를 실망시켰던 숫자와 수치들.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바꾸는 일, 복음을 선포하는 일, 자선을 베푸는 일 모두가 내 일이 아니고 주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걸 살짝 잊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애면글면하는 내 모습을 어여삐 보아 주시겠지. 그런데 내 마음 속에서는 이런 말이 자꾸 들려오니 어쩐다. “애걔, 고작 이거야!”

고진석 이사악 신부 (<분도> 편집장, 구미가톨릭근로자문화센터 소장)

*이 기사는 성베네딕도 왜관수도원에서 발행하는 <분도>지 2012년 가을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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