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적이고 예언적인 생활양식을 재창조하기 위해 작아지고 낮아지고..”
한국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이하 장상연합회)는 지난 10월 23일부터 26일까지 경기도 의왕시 나자로마을 안에 있는 아론의 집에서 각 수도회 장상 62명을 포함해 수도자 16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45차 정기총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예수성심시녀회 이광옥 수녀를 회장으로, 살레시오수녀회 최정희 수녀를 부회장으로 제18대 회장단을 선출했다.
장상연합회는 총회 결과 국내 이주사목분과를 신설하고, 사회사목분과와 여성분과를 생명평화분과로 통합하고, 홍보분과는 매스컴분과로 명칭하고 성바오로딸수녀회에서 전담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장상연합회는 정기총회 결의문을 통해 “신비적이고 예언적인 생활양식을 재창조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맛 들이며, 작아지고 내려놓는 삶을 실천하고, 수도회의 카리스마에 따라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이어 ‘핵 발전’에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며, 탈핵운동을 위한 홍보활동과 더불어 에너지 절약의 생활화, 대체에너지에 대한 적극적인 정보교류를 하기로 결정했다.
특별히 이번 총회는 장상연합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해 수도회들의 비전을 공동으로 찾아가는데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었다. 강우일 주교가 집전한 개막미사를 시작으로 수도회 행정부를 위한 워크숍을 마련해 ‘오늘의 지도자로서 시대의 징표를 읽으며 어떻게 증거자의 삶을 살 것인가?’라는 주제로 중견 조직분석가인 부르스 어바인(Bruce Irvine) 런던 그럽협회 이사의 강의를 들었다. 박선용 신부(주교회의 한국가톨릭사목연구소 부소장)가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의 해’를 주제로 맺음 강의를 했고,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가 집전한 폐막미사를 끝으로 총회를 마쳤다.
장상연합회는 지난 2011년에 열린 제44차 정기총회에서 결의한 ‘수도생활의 미래는 수도생활이 지닌 신비와 예언의 힘 안에 있다’라는 주제를 연이어 계승하기로 했다. 이는 2010년 5월 7일 열린 세계여자수도회총장연합회(UISG)의 정신과 연대하여 수도생활이 지닌 신비와 예언의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당시 장상연합회는 ▲창조물과 다른 이들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안에서 말씀하시는 원천을 듣고 발견한다. ▲우리들의 첫 부르심의 역동성을 되찾기 위해 우리 카리스마의 샘에서 끊임없이 물을 길어 올린다. ▲하느님의 말씀과 빵을 함께 나누는 영적인 삶에 맛 들인다. ▲신비적이고 예언적인 생활양식을 창조하기,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환대 환영하는 개방성, 종교와 문화의 다양성이 지닌 풍요함을 재인식할 수 있는 능력과 서로 다름을 존중한다. ▲교회와 사회, 수도회와 개인의 어둠을 큰 용기를 가지고 하나씩 하나식 극복한다고 결의했다.
사회참여, 기도생활 방해하지 않고 깊이를 더해 준다
이들은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여성수도자로 살아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별도의 축제는 없었지만, “다만 두물머리에서, 강정에서, 수도자 연행에 따른 전 수도회 차원의 시국미사에서, 밀양에서, 4대강을 살리기 위한 미사와 행사에서, 탈핵을 위한 모임에서 하나로 연대하였다”고 전했다. 이러한 수도회 밖의 모임이 계속되면서 사회참여가 수도회 안에서 갈등의 소재가 되었으나, “분명한 것은 이 참여가 우리의 기도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를 더해 준다”는 점에서 수도생활이 지닌 신비와 예언의 사람에 대한 새로운 성찰의 계기가 되었다고 고백했다. 총회에서는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수도회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제안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탈핵에 대한 요구가 높아짐에 따라 사회사목분과 안에 ‘탈핵 자연에너지 팀’을 구성하고 지난 한 해 동안 탈핵강의와 밀양 방문, 신고리 원전 1호기 폐쇄 청원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또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연대에도 참여했다.
또한 장상연합회는 점차 노령화되고 있는 수도회 상황을 고려해 김효성 수녀(성심수녀회)를 캐나다 몬트리올에 있는 ‘통합양성교육원’에 교육받게 하였고, 준비가 되는 대로 장상연합회 양성장 교육원에서 노년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강우일 주교 “하느님은 우리 눈높이에서 우리 아픔 안에서 사랑하신다”
한편 개회미사에서 강우일 주교(제주교구장)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포한 ‘신앙의 해’와 관련해 우리 신앙의 ‘내용’을 다시 돌아볼 것을 제안했다. 강 주교는 예수께서 나자렛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읽으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것은 “예수님이 이사야서의 메시지를 당신의 사명으로 수락하고 선택하셨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예수는 당시 로마 제국의 압제 하에 온갖 불의와 고통에 시달리면서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말씀하셨는데,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이 너희들 가운데 계신다”는 것과 “하느님의 왕국, 하느님의 다스림이 바로 코앞에 다가 왔다”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나라. 그것은 즉, 하느님께서 우리 한심한 세상에 들어오셔서 바로 우리 곁에 계신다, 우리의 고통스런 처지를 알고 계신다, 하느님은 우리 눈높이에 계시면서 우리의 아픔을 함께 짊어지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것이 예수님이 전하신 기쁜 소식의 알맹이였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만 선포한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당신의 존재 자체가, 당신의 삶 전체가 바로 이 기쁜 소식의 구현임을 현실적으로 증명했다. “예수는 제일 먼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셔서 ‘하느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느님께서 손수 다스리실 때가 임박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아!’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믿음이란 “그저 막연하게, 초월자이신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우리 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를 알리시기 위해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셔서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아파하시고 어루만지시고 위로하시며, 그곳에서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일을 하셨다. 또 그 일을 위하여 당신의 목숨을 바치셨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을 증명하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의 큰 뼈대라는 것이다.
이어서 강우일 주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믿음의 귀결을 사랑에 두었는데, 이 사랑이 유행가에 나오는 가까운 사람들끼리의 사랑에 머무르는 것은 예수님께서 펼치신 사랑과는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강 주교는 쌍용 해고자, 강정, 용산 유가족들을 떠올리며 “오늘 예수님이 오신다면 제일 먼저 누구를 찾아가실 것인지, 누구와 함께 어울리시고, 누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누구와 식사를 하실 것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고 우리 삶의 표지판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선용 신부 “전례 쇄신 없으면 교회는 ‘박물관’, 신자는 ‘관람객’일 뿐”
총회의 맺음 강의에서 박선용 신부는 한국교회의 사목적 위기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가장 먼저 한국교회 신자들의 영성에 대한 목마름을 지적하며 “신자들이 하느님 체험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노력이 없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며 수도자들에게 관심을 당부했다. 더불어 세속주의의 영향으로 하느님이 요구되지 않는 문화, 하느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문화를 지적하며 “한국교회는 6개월, 1년의 예비신자 교리기간으로 2000년 신앙고백의 역사와 내용 증언에 대한 학습을 대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한국교회에서 미사전례가 형식화되어 “기능만 남고 활력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했다. 성찬례는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신앙의 내용을 삶으로 봉헌해야 하는데, “단지 의무방어로 참례하는 전례”로 전락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신부는 성찬례가 신앙체험과 복음적 실천을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살아있는 전례를 만들어가지 못하면, 교회는 ‘박물관’이 되고, 신자들은 ‘관람객’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덧붙여 “삶과 따로 노는 신앙”을 지적하며, 우리 신앙이 개인적 애덕실천과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 “그동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왔던 사회교리를 교회의 기본교육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는 폐회 미사 강론을 통해 장상연합회 50주년을 축하하며,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을 강조하고,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가치를 진보적으로 일깨우며, 그리스도의 진리가 이해되고 분명히 표현되며 옹호될 뿐만 아니라 진정한 인간실현과 사회의 복지를 위한 열쇠로서 기쁘고 확신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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