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백동흠]

비즈니스맨들이 바삐 움직이는 시간, 오후 3시 무렵. 시내에서 택시 콜이 울렸다. “Paul. 15:20. 57 Beaumont Street, City. Airport” 반가운 마음으로 택시 모뎀에 뜬 주소로 가서 몇 번을 확인해도 그런 번지가 없다. 손님과 통화해 알아보니 웬걸, “57 Vermont Street, Ponsonby”란다.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너-무 잘못 짚었다. 택시 전화 받는 교환 여직원이 ‘Vermont Street’ 를 ‘Beaumont Street’로 잘못 알려준 해프닝이었다.

‘Vermont Street(브어몬 스트리트)’와 ‘Beaumont Street(브오먼 스트리트)’? 우리가 듣기에도 구분이 쉽지 않다. 종종 이런 저런 해프닝이 있다 보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확인하거나 경험에 비추어 해법을 찾기도 한다. 이전에 손님을 태울 주소 ‘18 Kingdale Road, Henderson’ 으로 찾아 갔을 때도 아무도 없었다. 문을 두드리니 택시 부른 일이 없단다. ‘80 Kingdale Road’를 지나다 보니 그곳에서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18번과 80번. Eighteen 과 Eighty? 키위들도 어쩌다 이런 실수를 한다. (키위: 뉴질랜드 백인을 지칭하는 말. 뉴질랜드 국가를 상징하는 새 ‘키위’를 뜻한다 –편집자 주)

‘100 Gladstone Road, Northcote’에서 오클랜드 병원에 간다기에 서둘러 갔을 때도 이런 번지가 없었다. 확인해보니 ‘100 Gladstone Road, Parnell’이다. 지역을 잘못 입력시켜 알려준 것이다. 현지인 직원들도 영어 발음과 정보에 이렇듯 간혹 실수를 하니 나 같은 이민자들은 이런 실수를 해석(?) 하느라 홍역을 치르기도 한다.

택시 손님들 발음이 특이해 순간 황당한 경우도 있다. 특히 다른 나라 이민자들의 암호 같은 발음에 난감할 때가 많다.

“어디로 갈까요?”
“맨틀부트!”
“맨틀부트? 다시 한 번, 또 다시 한 번…아-하! Mount Albert!?”

“어디로 가세요?”
“샘플!”
“샘플? 스펠링이 S 그 다음… 오-라! Saint Paul!?”

“어디 가시지요?”
“오쭈!”
“오쭈? 거기가 어떤 지역이지요? 애니멀… 하-하! Auckland Zoo!?”

초보 택시 운전 때는 적잖이 당황도 했지만 여러 해 하다 보니 이런 암호 풀이에도 제법 여러 접근 방식으로 다가가니 해석이 가능해 졌다. 소통 커뮤니케이션은 말 그대로 상대방과 통하는 것이다.

내 스타일에 맞지 않아 통하지 않는 것은 불통이다. 모르는 사람끼리 어찌 처음부터 통하겠는가.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다르니 그만큼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이 나이 들어 서울 올라와 산다고 그 본래 고향 말투와 억양 발음이 서울식으로 되던가? 이민자도 마찬가지다. 수십 년을 조국에 살다 외국에 나와 산다고 그리 쉽게 외국식으로 언어가 나오는가? 이민1세대 이민자들의 영어는 굳어져도 너-무 굳어져서 발음 억양 고치기가 만만치 않다. 1.5 세대나 2세대야 술술술 나오니 거의 문제가 없다. 그렇담 온몸으로 고생 많이 하는 1 세대들에겐 그들만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이어 가는 게 필요하다.

한 교민이 운영하는 자동차 정비소에 들렀더니 사장이자 종업원으로 일하는 주인이 참 당차고 씩씩하다(?). 찾아온 키위에게 하는 영어가 무척 간단 간단한 문장이다. 소신 있으면서도 투박한 어투다. 짧은 문장을 계속 이어간다. 키위가 모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손짓으로 모양새를 그려 보이며 열심히 설명을 한다. 키위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은 편 사람은 못 보게 단어를 써놓고 이쪽에서 열심히 설명하면 저쪽 상대가 알아맞히는 게임을 하는 것 같다. 오로지 그 단어를 상대가 알아채게 하려고 자기 의사 표현에 집중을 한다. 표정과 손짓을 동원하여 그 단어를 설명하고 묘사하는 것에 몰입한다. 실수나 실망 체면은 안중에도 없다. 자기 발음이나 문법에 신경 덜 쓰고 자기가 전달하고자 하는 말에 집중하니 짧은 문장으로도 소통이 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충고랍시고 면박 비슷한 퉁을 주기도 한단다. “김 사장님, 영어 발음이 좀 거시기하네요. 혀 좀 굴려 봐요. ‘오다(Order)’가 뭐요? 오-ㄹ-드-어! ‘콩글래춸레이션(Congratulation)’이라니요? 크옹그래추어ㄹ리에이션!” 김 사장은 자기 스타일이 딱 이라며 키위들은 다 알아듣는다는데 웬 참견이냔다. 그렇게 따지기 잘하는 사람치고 실전에 강한 사람 못 봤단다. 영어 소통 실전에 강한 사람은 오히려 자기를 격려해 주더라고.

김 사장,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더 하겠단다. 언어 소통 문제는 현지인 키위가 더 문제라며 자기 소신을 밝힌다.

“키위들이 뭘 더 잘 알아? 영어 하나 밖에 모르잖아? 우리는 한국어에 부족하나마 영어에 일본어까지도 해가며 의사소통하는데. 우리는 상대가 모르면 온갖 방법으로 설명하고 알아들으려고 하다 보니 다른 나라 이민자들이 쓰는 서툰 영어도 알아듣지. 키위들은 자기 나라 사람들 영어만 제대로 알아듣지, 딴 나라 이민자들 얘기 알아듣는 능력이 부족하잖아. 그러면 누가 더 소통능력, 유식한 말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높은 거야? 기죽을 것 없어.

우린 우리 스타일로 하면 돼. 왜 강남 스타일이 뜨겠어? 내 스타일을 자신 있게 가지면 상대도 따라 온다고. 키위들도 자신 없어 하는 모습보다 자신에 찬 당당한 모습을 좋아한단다. 설령 영어 스킬이 부족하다 싶으면 다른 서비스로 보충해주면 된다고. 우러나오는 친절이나 지극 정성 혹은 실력 있는 기술 서비스로 키위들 보다 한 몫 더 얹어주라고. 그러면 통한다고.”

그 정비업소, 요즘 같은 경기불황에도 손님들이 작년보다 30퍼센트쯤 더 늘었단다. 그만의 탁월한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통한 것이다. 영어를 완벽히 하려는 강박 의식에서 벗어나 내 말하려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의사소통도 되고 비즈니스도 잘 되더라는 이야기가 온 교민에게도 공감이 될 듯하다. 발음이 조금 서툴러도 소통이 되는 게 필요하지 않은가? 기죽을 일 아니다. 영어가 뭐 길래?

백동흠 (프란치스코)
뉴질랜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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