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 포럼에서 김진호 연구실장 발표
‘메시아’ 개념 중심으로 박정희 · 노무현 담론에 대한 신학적 해석 다뤄

고인이 된 두 전직 대통령 박정희와 노무현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애정’을 신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가 이뤄졌다. 10월 29일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가 주최한 월례 포럼에서 김진호 연구실장은 ‘메시아(Messiah)주의’라는 용어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박정희와 노무현이 어떤 의미인지 논했다. 김진호 실장은 “1997년 이후의 박정희 담론과 2009년 이후의 노무현 담론이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봤다.

▲ 김진호 연구실장 ⓒ강한 기자
또한 김진호 실장은 대중이 사랑하는 박정희와 노무현은 자연인이나 실체가 있는 존재가 아니라 ‘상상으로서의 대통령’이라며 구약성경의 ‘다윗’과 비교했다. 다윗은 고대 중동세계에서 별 존재감 없던 약소국 유다의 창건자였고 약한 왕권과 국력이라는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러나 다윗은 “훗날 메시아적 열망 속에 살아 있는 상상의 왕으로 기억되면서, 시공간적 제약을 초극하여 이스라엘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통치자로 군림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진호 실장은 대중이 박정희와 노무현을 다윗과 같은 메시아적 통치자로 상상하게 됐고, ‘구원’에 대한 열망이 두 사람에게 반영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정희와 노무현의 후계자들은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욕망을 자신들의 정치적 자원으로 삼고자 하고, 대중도 메시아적 꿈을 오늘날의 현실에서 끌어내고자 ‘매개자’를 선택한다고 했다. ‘매개자’들은 직업적 정치인 또는 언론인이나 문필가 같은 사람들로, 이들은 대중의 종교적 상상력을 결집시키고 그 상상력이 정치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도록 이끈다.

▲ '영웅' 박정희와 '바보' 노무현. 이번 월례 포럼에서 김진호 연구실장은 "1997년 이후의 박정희 담론과 2009년 이후의 노무현 담론이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희대통령 인터넷 기념관 www.parkch.com, 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세상 www.knowhow.or.kr 갈무리)

이인화나 조갑제 식의 ‘박정희론’은 부조리함과 폭력 감추고 미화하는 영웅주의
‘박정희론’ 유포에 주류 언론과 각계 엘리트가 기여하며 처음부터 권력화

김진호 실장은 ‘박정희’가 단순한 회고를 넘어 시대를 이끄는 담론으로 부상하게 된 때를 1997년이라고 전하며, 이때 박정희에 대한 연재물 등을 쏟아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 언론과 김정렴, 조갑제, 이인화 등의 인물을 거론했다. 1997년에는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18년 중 절반을 비서실장으로 지낸 김정렴이 회고록을 출판했고, 조갑제가 <조선일보>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김진호 실장의 개념에 따르면 전직 관료, 언론인, 문필가인 김정렴, 조갑제, 이인화는 죽은 박정희와 대중을 이어주는 ‘매개자’다.

이어서 김진호 실장은 이인화와 조갑제의 ‘박정희론’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영웅주의로서, 영웅이 이룩한 업적에 얽힌 부조리함이나 폭력을 감추고 미화한다고 비판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영웅주의, 메시아주의는 “영웅이 유일배타적 존재라는 믿음에 기초한다”면서, 이때 대중은 영웅을 수동적으로 추종하는 존재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영웅(메시아)과 대중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중간적 존재’가 필요하게 되고, 이 중간적 존재에게 특권적 권위가 주어지게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주의는 권위주의적 체제와 친화적이라는 것이다.

김진호 실장은 박정희 메시아론이 유포되는 데 주류 언론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지적하며, “여기에 정치계, 경제계, 학계의 지배엘리트 집단이 열렬히 반응했고 기여했다”고 강조했다. “대중의 루머(유언비어) 형식으로 유포되다가 몇 세기 지나서야 지배층의 언어로 둔갑한 예수 담론과는 달리 박정희 담론은 처음부터 권력화된 양상을 띠었다”는 게 김진호 실장의 의견이다.

노무현, ‘대화와 수평적 리더십’이라는 면에서 박정희와 달라
“노무현은 불의한 체제 때문에 죽었다”는 해석이 그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2009년 5월 23일 숨진 노무현은 ‘대항 메시아’로서 탄생했다고 주장했다. 김진호 실장은 박정희, 김대중과 달리 안정된 지지 기반을 갖고 있지 못했던 노무현의 권위는 수평적이고 소통적이며 감성적 호소력이 강한 속성을 띠었다고 지적했다.

김진호 실장은 “권위주의적인 리더십은 대중을 수동화하지만, 수평적인 대화의 리더십은 대중의 자발적 활동을 동반한다”고 말했다. 또한 ‘바보 노무현’이나 ‘인간 노무현’과 같은 이미지는 노무현의 대화와 감성을 중심에 둔 리더십과 매우 잘 맞물린다면서 “노무현과 지지대중 사이의 격차감이 해체되어 있고 그들 사이의 ‘감정적 일체감’이 함축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김진호 실장은 “그런 점에서 대중의 심상에서 박정희가 초월적 영도자로서 표상되어 있다면, 노무현은 내재적 영도자”라고 표현했다.

노무현의 ‘개혁’이 어려움을 겪었고 대개 실패했다는 평가도 빠지지 않았다. 김진호 실장은 “노무현은 대중의 적극적인 지지를 설득해냄으로써 개혁을 수행할 수 있었지만, 지지대중의 욕망은 그가 극복하고자 했던 구체제의 질서에 깊게 포획되어 있었다”고 개혁 실패의 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김진호 실장은 자연사가 아니라 자살이었던 노무현의 죽음은 “노무현 현상의 신학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했다. 이어서 “대중은 그 죽음이 불의한 체제로 인한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그 죽임의 체제가 전복되는 꿈을 꾸게 되었으며, 그 꿈이 노무현을 키워드로 하는 메시아주의적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면서, 노무현이 죽음 이후에 역사의 무대 위로 화려하게 복귀했다고 말했다.

▲ 10월 29일 안병무홀에서 열린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월례 포럼에서 김진호 연구실장이 발표하고 있다. ⓒ강한 기자

선거나 ‘광장의 정치’ 이후 금세 사그라지는 메시아주의 정치
대중의 열정만 불태울 뿐 변화와 개혁 이끌지 못해.. 비판과 성찰 필요

끝으로 김진호 실장은 정치인, 언론인 등 ‘매개자’의 역할을 거듭 강조하며,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열망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는 일은 선거 국면 등 예외적인 상황에서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선거 국면은 충동적이고 과도한 정치적 언술이 남발되는 때로, 대중의 메시아적 기대에 힘입어 이 시기에 넘쳐나는 정치담론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김진호 실장은 대항 담론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며 광우병 소고기 시위 때를 예로 들었다. 이때도 ‘매개자’들은 대중의 메시아주의적 감성을 고조시켰고, 비판과 논리적 설득보다는 ‘분노’와 ‘심판’의 감성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나 ‘광장의 정치’ 이후에는 빠르게 메시아주의적 분위기가 사라지는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김진호 실장은 대중과 매개자들의 ‘공모’ 속에 사회는 금세 메시아주의 담론의 폭발력을 잊어버린다고 전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주의 정치는 대중의 열정만 불태울 뿐, 변화와 개혁을 위해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 김진호 실장의 결론이다.

김진호 실장은 “이것이 비판과 성찰의 요소가 결핍된 메시아주의 정치의 한계”라면서 “메시아주의 정치는 비판과 성찰의 정치신학적 논의들을 통해 반박되고 보충됨으로써 그 한계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월례 포럼에서 김진호 실장이 발표한 글은 지난 10월 11일 출간된 책 <당신들의 대통령―선출된 왕과 민주주의, 그 이후>(김상봉, 김진호 외 공저, 문주)에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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