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국내외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사형폐지국가 선포식’을 개최하였다. 오는 12월 30일이 되면 국제사회의 분류에 따라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된다는 것을 시민사회의 이름으로 선포한 것이다. 국내외 언론은 일제히 한국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된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했고, 법무부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는 59.71%의 응답자가 사형폐지에 찬성표를 던졌다.

그러나 15대, 16대를 거쳐 17대 국회에서도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가 넘는 175명이 공동 발의한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안’은 사형존폐에 대한 국민의 여론이 팽팽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무려 10년 넘게 국회에서 논의 한번 되지 못한 게 현실이다. 1981년 프랑스 국민의 66%가 사형폐지를 반대하자,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의원들이 올바른 입법을 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법칙에 부합하는 것”이라는 말과 함께 사형폐지를 주도하여 마침내 사형을 폐지하였고 프랑스 국민들은 결국 미테랑 대통령의 결단에 환호를 보냈다. 여론 뒤에 숨은 175명의 침묵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다.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이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가이다. 국제사회에서 그 위상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유엔은 이미 ‘전 세계 국가의 사형제도 폐지’를 천명했고 이를 위한 결의안과 선택의정서도 채택된 지 벌써 오래다. 특히 지난 2007년 11월 15일 62차 유엔총회에서는 “사형집행유예” 결의안이 통과되는 역사적인 결정이 있었다. 수정안을 포함하여 총 19번 진행된 표결에서 한국정부는 19번 모두 기권표를 던졌다. 정부차원에서 사형제도에 대해 아직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도대체 그 검토와 기권은 언제 끝나는 것인지, 노무현 정부의 비겁한 기권이다.

사형제도는 인간의 기본권인 생명권을 국가가 직접 침해하는 반인권적인 형벌이며, 국제사회의 인권규범이 금지하고 있는 잔인하고 폭력적인 제도이다. 또 ‘인혁당 사건’처럼 독재정권이 반대파들을 제거하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사형 제도를 악용한 사례는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밝혀져도 억울하게 사형집행을 당한 이들이 살아 돌아 올 수는 없다. 오판과 악용의 가능성, 근거 없는 범죄억지력 등은 이미 사형이 왜 없어져야하는지를 다 말해주고 있다.

가해자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집행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지거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 피해를 이겨내고 다시 안정된 가정과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사회가 제도적으로 돕는 것이지, 국가가 대신 ‘보복’을 해주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형폐지 운동에 앞장서온 종교인들이 ‘피해자 사목’에 적극적 나서고 있는 것은 이런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지난 2005년 어머니와 부인, 3대독자 외아들 등 일가족 3명을 연쇄살인범 유모씨에게 잃은 고정원 선생은 “힘들고 괴로운 시간을 지나 유씨를 용서하고 법원에 사형만은 시키지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나서야 마음에 평온을 얻었으며 저주하고 미워하던 때보다 훨씬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지난 주 가톨릭계의 한 신문사가 대선유력후보 6인에게 사형에 관한 의견을 물었는데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만 유일하게 사형을 유지해야한다고 대답했다. 지지율 1위를 1년 넘게 고수하고 있는 유력후보가 사형을 찬성한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이 시큰거린다. 지난 10년간 사형집행이 없었던 것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우리의 사회 양심과 인권의 역사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 역사의 흐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17대 국회 마지막 회기인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라도 ‘사형폐지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되고, 새로 부임할 대통령이 ‘사형 없는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이 되면 어떨까? 열흘 후인 12월 30일이면, 우리나라는 만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없는 사실상 사형폐지국이 된다. 당일 오후 2시부터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대한민국, 사형폐지국가 기념식”이 열리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사형폐지국이다. 



김덕진 / 2007-12-18

* 이 글은 내일신문 2007년 12월 18일자에 실릴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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