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13]

나만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임신을 하니 ‘맛’에 민감해지게 되고, 자꾸만 옛날 맛이 생각난다. 둥지가 들어서고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은 순대볶음인데, 그것도 그냥 순대볶음이 아니고 서울 봉천동 중앙시장 엄마손 순대볶음이 먹고 싶었다. 오죽하면 택배로 순대볶음을 보내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을까. 결국 아쉬운 대로 화순에 나가서 먹고 오긴 했는데, 먹고 난 뒤에 심한 배탈이 나서 아직까지도 순대볶음은 쳐다보기도 싫다.

순대볶음뿐만이 아니다. 친정 엄마가 끓여 주셨던 김칫국, 어렸을 때부터 단골로 드나들었던 중국집의 자장면, 초등학교 앞 떡볶이, 식구들과 자주 먹으러 갔던 시장 뒷골목 허름한 가게의 아귀찜까지, 비슷한 다른 맛은 싫고 꼭 똑같은 옛날 맛을 느끼고 싶었다. 맛도 맛이지만 그 시절 그때의 추억이 그리웠던 걸까?

남대문 시장, 2010 ⓒ박홍기

맛을 향한 그리움은 결국 나를 서울 친정까지 이끌었다.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했지만 그게 가장 큰 몫을 차지한 건 분명하다. 사실 그동안도 서울 친정에 와야 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어떻게든 서울에 오는 걸 피해왔으니까. 왜냐고? 20년 넘게 뿌리를 내리고 살아 사실상 고향이나 다름없는 서울이 한 해가 다르게 휙휙 바뀌는 걸 보면 왜 그런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특히 1년 반쯤 전에 마지막으로 서울에 왔을 때 정이 확 떨어졌는데, 그건 내가 오랫동안 마음의 안식처로 삼았던 뒷산이 마구 파헤쳐지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서울에 있을 때 집 가까이 뒷산에 가서 힘을 충전하곤 했다. 땅바닥에 드러누워 나뭇가지 사이로 드리운 하늘을 보고, 나무를 꼭 껴안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새 힘이 솟고 살맛도 났다. 또한 뒷산을 넘어 가면 도서관이 하나 있는데, 산에 갔다 도서관까지 들렀다 오면 마음이 그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 귀농을 하고 나서도 서울 친정에 올 때마다 뒷산과 도서관이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그곳마저 공원처럼 예쁘게 가꾼다고, 도시 고속도로를 낸다고, 포클레인으로 파헤치고 발파 작업까지 하는 것을 보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서울이란 곳에 붙잡고 있던 마지막 애정의 끈마저 끊어졌다. 가족과 친구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머리를 돌리려야 돌릴 수는 없었지만, 서울에 올라가기가 점점 싫어졌다. 그런데 옛날 맛을 향한 그리움이 다시 나를 서울로 불러들일 줄이야.

▲ 촌놈 다울이, 이모네 식구랑 동물원에 갔어요. ⓒ정청라
서울에 오니 다울이는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 이모, 이모부, 형아, 동생, 이모할머니, 삼촌…, 식구들이 가까이에 바글바글 모여 있으니 그게 가장 좋은가 보다. 또한 사촌형 집에는 장난감도 많지, 과자랑 아이스크림 같은 군것질거리도 넘치지, 이모랑 이모부가 서울 구경 시켜준다고 동물원도 데려가주지, 선물도 잔뜩 안겨주지, 촌놈 다울이는 도시의 화려한 맛에 푹 빠져 날마다 춤추고 뛰고 난리다.

하지만 나는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이 축축 쳐지는 것을 느낀다. 서울 와서 오랜만에 친구들도 만나고, 친정 엄마와 동생이 해주는 밥을 얻어먹으며 배부르고 등 따신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왜 이렇게 힘이 든 건지…. 먹을거리가 넘쳐나니까 오히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막상 먹고 싶은 것을 먹어도 옛날 그 맛이 아니다. 괜히 속은 것만 같아서 집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 자식 집에 올라와서 하루도 못 견디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시골 할머니처럼 말이다. 정말 그새 시골 사람이 되었는가 보다.

시골 사람의 눈으로 서울을 바라보면 걱정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스마트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이 스마트폰을 손에 붙이고 사는 듯하다. 우리 친정엄마만 해도 애니팡에 빠져서 틈만 나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계신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도 모두 스마트폰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심지어 다섯 살 조카아이도 스마트폰 조작에 능숙하다. 나는 그 모습이 꽤나 심각하게 느껴진다. 기술이 삶을 송두리째 집어 삼킨 세상이 되었구나 싶어 등골까지 오싹하다. 더 나은 삶, 특별한 재미가 있는 삶, 화려하고 있어 보이는 삶에 대한 갈망이 도리어 우리를 나락으로 빠뜨리는 건 아닌지….

이제 내일이면 집에 돌아간다. 딱 2주 만이다. 안 보고 살면 그나마 내 마음은 편하지만 서울 이곳은 어떻게 또 달라질까. 얼마나 더 눈부시게 얼마나 더 화려하게 변해갈까? 아마 한동안은 서울을 안 보고 싶을 것 같다. 서울의 맛이 다시 나를 부른다 해도 이제는 안속아 넘어갈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부디 안녕하기를!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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