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문양효숙]

1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나는 단식을 한다. 가을이 깊어지는 이 맘 때쯤 혹은 연초에. 처음 단식을 시작한 계기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단식을 했던 주변인들이 전하는 효능에 귀가 팔랑거려 ‘다이어트도 할 겸, 나도 한번 해볼까?’하는 정도였던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단식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은 첫 번째 단식 때 경험했던 ‘신비한 효능’ 덕분이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식의 방법은 대부분 비슷하다. 나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 본단식을 5일에서 7일 정도 한다. 단식을 하기 위해서는 본단식 일수와 비슷한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몸이 놀라지 않도록 서서히 먹는 양을 줄여가는 기간이다. 사실 나는 준비 기간 없이 바로 본단식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정신차려보면 이미 본단식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날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본단식 바로 전날 과음으로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린 탓에 의도하지 않게 본단식이 시작된 적도 있었다.  본단식을 시작하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가게 되어 있으니 일단 시작하고 본다는 주의다.

ⓒ한수진 기자

본단식을 하는 동안에는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들이 많다. 물과 죽염만 먹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산야채효소를 함께 먹는다. 또, 숙변제거를 위해 마그밀을 먹는다. (관장을 권하는데 내게는 관장이 히말라야 등반보다도 어렵다.) TV와 인터넷을 멀리하고 매일 붕어운동, 모관운동 등으로 몸을 푼다. 풍욕, 냉온욕 등을 병행해 주면 더 좋다. 산행을 할 때 처음 시작 30분이 힘든 것처럼 단식도 시작 3일이 어렵다. 하지만 4일째부터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본단식이 끝나면 회복식에 들어간다. 본단식 두 배 정도의 기간 동안 미음부터 시작해 죽으로 그리고 밥으로 넘어간다. 개인적으로 본단식보다 회복식을 할 때가 더 어렵다. 미음 한 숟가락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온 몸의 세포가 ‘꺄악~!’소리를 지르며 더 달라고 아우성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보식 삼 일째 되는 날 얇게 자른 사과 한 조각을 삼켰다가 목이 타는 듯한 쓰라림을 느낀 적이 있다. 과일의 산도 때문이었다. 산성은 물론이거니와 설탕, 카페인, 알코올, 조미료 등은 보식 기간에 몸에서 거부한다. 물의 맛이나 공기의 향기를 확연히 분간할 만큼 몸의 감각이 섬세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식을 하면 365일간 잠시도 쉬지 못했던 소화 기간들이 쉴 수 있다. 뿐 만 아니라 그간 무분별한 식생활로 몸에 쌓인 독소와 노폐물이 배출되고 숙변도 제거된다. 에너지원이 공급되지 않으니 세포들이 튼튼해진다. 말하자면 세포들은 “아무것도 안 들어온다. 우리 살 길 찾아야해! 힘을 내야 한다구!”라면서 자기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단식 5일차가 되면 얼굴빛이 환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단식은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새삼 각인시켜주기도 한다. 단식 기간에는 정신이 맑아져 책이 쑥쑥 읽히고 기도나 명상도 깊어진다. 단식은 단순히 굶는 것이 아니라 온 몸과 영혼에 쉼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인들은 “먹고 싶어서 어떻게 참냐?”고도 하는데 단식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참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괴로워하며 식욕을 참는 고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식욕에 얽매이지 않는,  말하자면 ‘꼭 먹어야 해’가 아니라 ‘먹어도 좋지만 안 먹어도 좋아’ 이런 상태다. 예수께서 광야의 40일 단식으로 얻으신 것도 혹시 이런 것은 아니었을까? 몸을 입은 인간이 지닌 어쩔 수 없는 욕망을 통제하고 경시하며 없애야하는 무엇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하고 그러나 거기에 사로잡히지는 않는 그런 자유로움 말이다. 단식은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의 근원적 욕망가운데 하나로부터 편안해지는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이런 까닭에 정신없는 일상에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싶을 때, 재충전이 필요하다는 영혼의 신호를 받을 때 나는 가끔 단식을 한다. 그리고 지인들에게도 단식을 매우 권한다.

그런데 요즘 나는 이 좋은 단식을 주변에 얘기할 수 가 없다. 쌍용자동차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청문회가 자본과 권력의 말잔치로 끝나고 국정조사가 열리리라는 기대가 희미해지는 와중에 해고자들은 23번째 상을 치러야 했다. 단식에 들어가며 김정우 지부장은 ‘지부장으로서 동지를 지켜내지 못한 죄스러움’을 고백하며 “곡기를 끊어 생명을 살리겠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는 살고 싶다”고 호소했다.

▲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천막농성장에서 김정우 지부장이 단식 농성 7일을 맞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나의 단식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 나를 위한 선택이니  힘들면 언제든 그만 둘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벼랑 끝에서 단식을 선택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그의 단식은 음식이 넘어가지 못하도록 한 '금식'에 가깝다. 그는 자기 생명을 걸고 정치권을 향해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라 외친다. 더 이상 죽을 수 없다고 절규한다. 그런 그의 단식이 나의 단식처럼 즐겁고 가벼운 것으로 여겨질까봐, 차마 단식을 입에 올릴 수가 없다.

취재차 단식 7일을 맞은 그의 천막농성장을 찾았을 때 아직은 괜찮은 그의 낯빛에 안심이 됐다. 농성장 옆에는 그를 지지하며 하루 단식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직은 괜찮았다. 하지만 언제까지 괜찮을 수 있을까.

한 인간이 목숨을 걸고 호소하는 것들에 대해, 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잘 먹는 사회는 참 무덤덤하다. 단식을 권하는 사회, 그 단식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무뎌진 사회가 두렵다. 이토록 절박한 외침이 동네 한 귀퉁이 야채 장사의 목소리처럼 흔한 일상으로 여겨지는 세상이, 나는 두렵다.

날이 추워졌다. 곡기를 끊은 그의 안위가 걱정된다.

▲ 단식 중인 쌍용자동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왼쪽)과 동조단식 중인 시민들(오른쪽)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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