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편 읽기]

야훼여!
언제까지 나를 잊으시렵니까?
영영 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나를 외면하시렵니까?
밤낮없이 쓰라린 이 마음, 이 아픔을, 언제까지 견뎌야 합니까?

ⓒ임의진
언제까지 원수들이 우쭐대는 꼴을 봐야 합니까?

야훼, 나의 하느님,
굽어 살피시고 대답해 주소서.
죽음의 잠 자지 않도록 이 눈에 빛을 주소서.

원수들이 "이겼노라." 뽐낼 것입니다.
적들은 기뻐하며 날뛸 것입니다.
이 몸은 주의 사랑만을 믿사옵니다.
이 몸 건져주실 줄 믿고 기뻐합니다.
온갖 은혜 베푸셨으니 야훼께 찬미드리리이다.

(시편 13장)

섬에서는 바람이 불면 지붕들이 덩달아 춤을 춘다. 가파른 비탈길 위에 자리한 집은 바람과 정면으로 맞서며 파랗고 빨간 지붕을 덮고 웅크렸다. 꼿꼿이 맞서면 꺾일 줄 알기에 좌우로 휘청 허청 춤을 추면서 비바람을 견딘다. 지각조차도 흔들리는 판에 전혀 흔들리지 않고 또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존재란 어디에도 없다. 만화 속 마징가나 태권브이 말고는 무쇠팔 무쇠 주먹도 없고, 나름 고난을 겪으며 울면서 사는 것이지 마냥 헤헤거리고 웃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 말고는 없는 법이다.

누구 말마따나 아프니까 사람인 게다. 쓰러지고 넘어지고 항상 괴로워도 고개를 치켜들고 응시하며 나아가는 희망의 사람이여. 이 눈에 빛을 주소서! 기도하면서 걸어가는 가여운 여행자. 암만 퀴퀴하고 후미진 사연이라도 하느님은 귀를 닫거나 마음을 닫지 않으신다. 당신의 가난한 자녀들의 사연을 굽어 살피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귀를 심어주신 분께서 듣지 않으신단 말이냐.”(시편 94, 9) “가난한 자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선 들으신다.”(시편 34, 7) ‘듣다’라는 히브리말 ‘샤마’는 이해와 납득, 그리고 선처를 동시에 안고 있는 낱말이다. 주님은 이토록 위험한 세계에서 사랑으로 건져주시는 우리의 구원자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온다는 사도 바울의 말(로마 10, 17)이 문득 떠오른다. 믿음이 깊은 사람들을 보면 듣기를 역시 잘하는 것 같다. 하느님이 사람을 믿고, 사람의 몸을 입으신 까닭도 듣기를 잘하시는 때문이리라. 우리는 갸륵한 심정으로 서로의 말을 곱씹어 들으며, 마음을 다해 공명한다면 위로와 용기의 햇살이 어둠 세계를 다사롭게 비출 것이다.

본문에서 ‘잊고, 외면하는 주님’이란 시인이 종종 쓰는 역설의 표현일 뿐이다. 화려한 기교가 넘치는 시를 짓는 게 아니라 가슴의 울림을 전하는 시인의 표현이기에 진실하고 절절한 느낌이다. 서로의 눈동자에 눈부처를 새기며 사랑하는 사람이라 대번 눈치 챈다. 사랑이 그만큼의 미움일 때가 있고, 사랑한 만큼 또 섭섭하고 서운한 그 심정을….

하지만 지나친 앙탈과 투정은 금물이다. 잠시 잠깐 고통을 못 이겨 주님을 버리고, 주님께 등을 지진 말아야 한다. 이집트 사막의 교부 파스토르가 말했다. “연기는 꿀벌을 몰아내지만 마침내 달큼한 꿀까지 없애버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편안한 생활이란 인간의 마음에서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은 물론이고 모든 선행까지 닫게 만든다.” 주님 없는 물질세상, 돈이 주인 된 자본주의 산업문명이 제아무리 편안하대도 영혼까지 행복할 리가 없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인간은 주님과 동행해야 진정 다디단 꿀을 맛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순식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님이 정녕 없으며, 주님이 그대를 외면하고 버린 게 아니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기탄잘리>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살아생전에 님을 만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하여도, 님의 모습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지니며 살게 하소서.”

시린 별들을 감싸는 이 우주는 그 얼마나 깊은 허공이며 어두움인가. 살아서 만날 수 없는 존재들이 너무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가슴 저리는 그리움, 죽음 저 너머까지라도 찾아가 만나고픈 재회의 확신을, 그대 버리진 마시길.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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