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소식이 없던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부동산으로 재미를 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의외로 하소연이 길다. 들어보니 ‘하우스 푸어’ 신세가 되었다. 집, 그것도 강남의 비싼 아파트에 사는 중산층인데 집을 가져서 가난하다니!

2006년 중반 33평 아파트가 6억 원을 넘어 7억 원을 향하던 시기에 더 오를 것이라는 대박꿈 속에 후배는 8억 원 넘는 빚을 내 분당 신도시에 아파트를 샀다. 반년 만에 아파트 호가가 1억 원 이상 올라 가슴 설레게 하더니, 2008년 9월 이후 떨어지기 시작해 5억 원대로 내려앉았고 그나마 매수세도 딱 끊어졌다.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은행이자와 거래비용으로 5억 원 이상을 날렸다. 기회비용과 심신의 고통을 고려하면 손실은 계측불능, 남편의 봉급6백여만 원 중 매달 5백만 원 정도를 빚 원리금으로 내야하는 실정이다. 팔려고 내놔도 보러오는 사람도 없다.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담보로 은행 빚을 내고 돌려막기로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이 악몽이 빨리 지났으면 빌고 있다. 한마디로 은행의 월세 세입자이자 집의 노예로 전락했다. 소유한 아파트는 빛 좋은 개살구요 정신 차려보니 이미 아파트 신화라는 막차를 올라탄 불행한 투기꾼이 되었다.

ⓒ박홍기

지난겨울 첫눈을 몰고 온 추위에 아침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12월, 공부방 아이 지은이가 아프다고 해서 집을 찾았다.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자 구불구불 좁다란 골목길에는 하얗게 타버린 연탄재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인적이 없는 골목들 사이로 검은색 비닐로 덮인 지붕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다. “똑똑똑” 몇 번을 두드리자 내복차림의 지은이가 고개를 내민다. 녀석은 눈병 때문에 벌써 일주일째 학교에 못 갔다.

지은이는 할머니와 사는 초등학교 2학년이다. 할머니가 구청에서 받는 기초노령연금 40여만 원과 교회의 구제비 5만 원으로 한 달을 산다. 방 월세 5만 원과 쌀값, 부식비, 난방비를 빼면 500원짜리 연탄 한 장도 아까워 방바닥은 냉돌이다. 전기장판의 가느다란 온기에 의지해 두 사람이 겨울을 난다. 할머니는 지은이의 학용품비라도 벌어보자고 폐지를 줍지만 관절염 때문에 벌이도 안 된다. 방안을 둘러보니 벽은 곰팡이가 심하게 피었고 조금씩 무너져 내려 방바닥엔 모래가 수북하다. 비닐과 테이프로 방문과 창문틀을 온통 도배했다.

“바깥에 얼굴을 내놓고 자는 것 같아.” 할머니의 하얀 입김이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지난여름 태풍에 지붕이 날아가 버려 비닐로 덮어서 그런지 외풍이 더 심해졌다. 눈이라도 많이 오면 집이 내려않을까 걱정이다. “집주인은 집이 위험하니 나가라고 하지만 보증금 없이 어디 갈 데가 없어 막막하다”며 할머니는 한숨을 내쉰다. 덧신을 두 개나 겹쳐 입은 채 추위를 견디면서도 할머니는 점심을 먹고 가라고 붙잡는다. 방 안에 놓아둔 꽁꽁 언 김치를 녹이느라 애쓰면서…. 들고 간 귤 봉지를 두고 도망치듯 나왔다.

비탈길을 내려오는데 할머니 세 분이 폐지를 정리한다. 한 분께 고물상에 가져가면 얼마를 받는지 물었다. “1kg에 140원이야. 이게 한 10kg은 나갈까? 그러면 1400원 받겠네.” 편의점에서 파는 호빵 하나씩도 사 먹을 수 없는 액수다. 동네 어귀의 담장 외벽에는 “경축 주택 재개발구역 건축설계 당선작 확정”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다.

요즘 서울역 앞 다방과 만화방, 피시방은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3천원에 하룻밤 잠자리를 판다고 한다. 밤 9시가 넘으면 다방과 만화방은 해진 소파에 눈치껏 낡은 담요를 까는 사람들의 잠자리로 둔갑한다고 들었다. “집 나간 지은이 애비가 더 걱정이야.” 할머니가 걱정하는 지은이 아버지도 이 도심 어딘가에서 3천 원짜리 방 아닌 방을 찾아 몸을 누이고 있는지 모른다.

부동산투기의 달인인 후배도 달동네 지은이도 지금 집 때문에 고통스럽다. 누구의 고통이 더 잔인할까?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갖가지 잔인한 형벌이 등장한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거나 눈앞에서 가족을 살해하는 등…. 그러나 제일 지독한 건 보물창고에 가둬놓고 굶겨 죽이는 형벌이다. 황금이 있지만 굶어야 하고 물이 있지만 마시지 못하고 과일이 있지만 먹지 못하는 얄궂은 처지다. 우리식으로는 ‘그림의 떡’이요 라틴 격언으로는 ‘탄탈로스가 받는 벌’이다.

산동네를 내려오면서 집을 팔수 없어 받는 후배의 고통도 집 살 돈이 없는 지은이 네의 고통도 그리스 신화속의 탄탈로스가 받는 모진 벌이 되지 않길 바랐다. 온갖 좋은 것이 있지만 정작 그것을 누리지 못하는 풍요 속의 빈곤한 개인 탄탈로스의 불행이 되지 않길 빌었다. 후배도 지은이도 우리 모두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는 좋은 날이 오길 겨울이 오는 길목에서 그날을 재촉한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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