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아프가니스탄 첫 장편영화 ‘라비아 발키’의 한 장면.(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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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현재 진행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영화 특별기획전이 있다. 아프가니스탄 영화들은 탈레반 정권의 필름 소각 작전 속에서도 영웅적인 인물들에 의해 극적으로 살아남은 귀중한 필름들이므로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갔다.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장편 극영화인 ‘라비아 발키’를 보게 되었는데, 나처럼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많아서 객석을 거의 다 채우고 있었다. 1965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라비아 발키라는 공주가 노예를 사랑하는 실재했던 소재를 바탕으로, 공주가 여왕이 되어 계몽군주가 되려하고 그 노예는 재무대신으로 활약하는 등 과감하게 신분의 벽을 깨는 주제가 이슬람 사회에서는 획기적이다 못해 혁명적인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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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구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주교님들을 비롯한 다수의 신부들이 공동생활을 하므로 미사는 공동 집전하고 주례는 돌아가면서 맡는 방식으로 매일 아침마다 이루어진다. 올 여름 주교님의 차례가 되었을 때 미사를 마치고 아침식사를 하면서 주교님의 강론을 두고 논평을 하게 되었다. 거의 40분 넘게 이루어진 주교님 강론에 대한 논평은 성체에 맞추어져 있었다. 성체를 모시는 행위의 참뜻이 강론의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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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아 발키’를 연출한 감독 압둘라 샤아단과 라비아 발키역을 맡은 여배우 시마는 이 영화를 계기로 결혼을 하고 탈레반 정권의 억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여 현재 BBC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라비아 발키’의 혁명적인 주제와 내용 때문에 탈레반 정권이 소각하고자 한 대상 1호로 꼽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영화의 메시지를 영화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그대로 반영해서 살아가고 있었다. 위대한 역할을 연기하지만 영화를 찍은 후에는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 버려 연기는 연기일 뿐이라는 다른 연기자들과는 구분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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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내어놓음으로써 세상의 빛이 되고자 하신 그 성체, 상징이 아닌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고백하고 성체를 받아 모신 그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세상으로 파견되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성체를 모신 후에도 계속 남을 속이고 사기치고 또는 이기적인 계산으로 현세의 이익을 제공해주는 힘 있는 자들만 편들며 살고 있지는 않을까? 다시 성체를 모시러 나오는 그 사이 동안 진정 그들은 세상의 빛이 되었을까?

성체를 모시는 참뜻은 사라지고 훼손되어 성체를 모시는 것이 영험한 음식물로 또는 그저 의미 없이 반복되는 행위로 전락한 것이 지금 신앙의 현주소는 아닐까 하고 걱정하고 반성하였다. 이러한 우려가 이 시대에는 굳이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본질은 뒷전이 되고 대중적인 신심만 드러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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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은 가난하지만 용감한 백성들이 사는 나라이다.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침략한 소련을 9년 동안 버티며 이겨내었고, 미국과 그 협조국(우리나라도 포함한)들이 지금도 13년째 공격하고 있지만 버티고 있는 나라가 아프가니스탄이다. 내부에서의 자유와 해방은 완전하게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외압에 굴하지 않는 정신은 곧 자유와 해방을 향한 내면의 힘을 길러 끝내는 내부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성취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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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는 2천년 동안 한 가지 질문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스도 그분은 누구이신가? 즉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에 대한 질문만 해왔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다. 삼위일체이다. 그러므로 성모님은 원죄 없으시다. 이렇게 존재에 관한 질문만 2천년 동안 이어져 왔다.

드디어 해방신학이 새로운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분은 왜 오셨는가? 무엇 때문에 오셨으며 오시어 무엇을 하셨는가? 즉 그리스도의 사명에 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불의에 억압받는 울부짖는 백성이 드러나고 자유와 해방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 질문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져야만 했다.

대답은 너무나 당연하다.정의를 실현하여 가난하고 억압받는 백성들을 우선적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구원이고 해방이다. 존재와 사명, 이 두 가지는 수레바퀴와 같다. 수레는 두 개의 바퀴가 같은 크기로 조화를 이루어야 잘 굴러갈 수 있다. 그러나 존재에 비해서 사명의 역할은 아직도 미미하게 인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명을 더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적으로 가난한 이들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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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신학이 실종하였다고들 한다. 거대담론이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눈앞의 생활고에 빠져 아무 것도 보려하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더욱 이 시대에는 신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경제에 맞서 사람을 돕는 경제를 논해야 하고, 개별화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공동체의 마음으로 성장시켜야 하고, 정신적 가치보다 실용을 앞세우는 시대정신을 올바로 깨우쳐 인간다운 사회를 재건해야 하는 등등 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신학 하는 모든 이들은 다시 그리스도의 사명, 교회의 사명,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논해야 하고 이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

영화제에서 아프가니스탄 영화를 초대하여 상영하는 영화인들의 도전하는 용기와 아름다운 정신을 보면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더욱 부끄러워진다.

조욱종 신부 (부산교구 관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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