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읽지 않아도 '이규태 코너'는 꼭 읽어야 한다는 격언 아닌 격언이 떠돈 적이 있었다. 5, 6년 전에 작고한 이규태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고정칼럼이 그만큼 이념, 성향, 남녀 계층을 불문하고 두루두루 호응을 받으며 읽혀졌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고전, 동서양의 인문철학을 넘나드는 이규태 논설위원의 해박하고 날카로웠던 칼럼은 아직도 여전히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마 1980년대 초쯤으로 기억하는데, '이규태 코너'에서 밥을 먹는 것에 대한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마도 우리나라에 여름 수해가 심해서 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던 즈음에 그는 농부의 시름을 이야기하며 식탁위에 오르는 밥상 이야기를 던졌었다.

우리가 끼니마다 먹는 밥을 두고 그가 한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자면 이렇다.

1. 이 밥상을 받을 수 있는 생명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해야 한다.(아마도 이 하느님은 기독교적 하느님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고 그냥 우리 정서로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이고 전통적인 조물주를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2. 이 밥상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
3. 이 밥상에 음식이 오를 수 있도록 피땀 흘리며 한해를 보낸 농부들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4. 내가 풍요롭게 음식을 먹고 있는 이 순간에도 끼니를 굶주리고 있는 이웃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오늘 내가 과연 밥값을 하고 지금 밥을 먹고 있는 것인지 항상 성찰해야 한다.

이처럼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 식욕을 채우는 밥 먹는 행위에 대하여도 이렇듯 추상같은 자기성찰을 요구했다.

성경에 보면, 유난히 잔칫집과 음식을 먹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죄인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다고 예수님께 끊임없이 비난을 퍼부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아랑곳 하지 않고 거리낌 없이 죄인, 세리, 창녀들과 어울리며 한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마시며 그들과 함께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열린 밥상 공동체에 누구를 초대해야 할 것인지 명료하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말고,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한 이들, 다리를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 하셨다. 그들이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할 것(루카 14, 12~14)이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성당에서도 이러저러한 행사를 통해 끊임없이 회식과 잔치 자리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사제 영명 축하연, 단체회식, 행사 뒤풀이 등 회식 명분을 만들라 치면 일 년 열두 달 내내 먹고 마시며 잔치판을 벌일 수도 있는 것이 교회가 아닌가. 이 모든 행위들은 '친교'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행해진다. 그런데 이런 연회가 본당에서 빈번하게 일어날수록 솔직히 나는 괴롭기 짝이 없다. 올 여름에 수차례 벌어진 개고기 판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지경이다.

이를테면 본당 사제의 영명 축하연이 벌어지는 것을 보면 가히 요란한 잔치집이다. 어디서 불렀는지 자발적으로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전임 본당에서도 축하사절단이 대거 등장하고 헤드테이블엔 고문단, 회장단, 사목위원이 자리 잡기 마련이다. 헤드테이블에서 화려한 축하식이 벌어지는 동안 표 안나는 보잘것없는 신자들은 보이지 않는 귀퉁이 자리에 앉아 국수 한 그릇을 겨우 얻어먹고 일어설 뿐이다. 씁쓸한 풍경이다.

통상 사제 영명축일은 그 며칠 전부터 축하연과 영명 축하금, 각출 건으로 본당 사목협의회 회의를 진행한다. 어떤 경우엔 사목회의에서 본당 사제가 노골적으로 영명 축하금 이야기를 꺼내고, 축하금 걷어내는 방법까지 제시하니 입이 벌어질 지경이다.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말고 잔치를 베풀 때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초대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재연하지는 못하겠지만 그 정신은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완곡한 바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보잘 것 없는 신자들이 생판 모르는 사이에 본당에서는 끊임없는 회식자리가 연중미사처럼 가열차게 이어진다.

성당에서 사제와 신자가 밥을 먹을 때는 지켜야할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정말 이것만은 지켰으면 하는 생각이다.

1. 아주 특별하게 명분이 있는 최소한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당의 공금을 이용해서 회식을 하면 안 된다. 이 돈은 본당 신자들이 정성껏 모아준 돈이기에 가능한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되어야 한다.
2. 사제와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원들은 그 조직을 이용해 명분 없는 회식자리를 자주 열면 안 된다. 본당 단체는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한 모임이지, 저들만의 친목단체가 아니다.
3. 누가 돈을 지불하든지 그것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사치스러운 것이어서는 안 된다. 사정상 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든다면 신앙생활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


교회에서도 반드시 회식이 필요하고 잔치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 그러나 뭐든지 도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사제든 신자든 우리가 지금 성당 돈을 쓸데없이 축내고 있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대조사회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가난한 자, 억눌린 자, 힘없는 자, 소외 받는 자에게 기쁨을 주어야 하는 교회에서 끼리끼리 몇몇이 희희낙락하며 그들만의 즐거움으로 교회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가서는 안 된다.

'뭐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지' 하면서, 그저 어울려 먹고 마시고 즐거우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끓는다면 구태여 이 세상 속에서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무엇인가. 벌써 세상이 교회를 장악하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럴 때 성당 지붕 높다랗게 걸려있는 십자가가 오히려 부끄러울 따름이다.

황산 (서울대교구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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