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우의 그림 에세이]

날씨가 너무 좋다
요즘같이 좋은 계절에는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도 싶고...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한다
가을을 타나?

오르한 파묵의'순수박물관'이라는 소설이 있다
1975년 터키의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30년에 걸친 처절하고 지독한 사랑을 그린 소설인데...
케말과 퓌순의 절절하고도 모진 사랑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지만... 케말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지다

결국 틈틈이 모아두었던 그녀가 쓰던 물건들(그릇, 포크, 귀고리, 헤어핀, 심지어 그녀가 피우던 담배꽁초까지...)
을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기까지 한다
사랑을 추억하기 위해...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을까?

여기까지는 소설의 내용인데... 오르한 파묵은 소설 속의 박물관을 이스탄불에 실제로 지어 얼마 전 개관했다고 한다
이름 역시 '순수박물관'이다 혹시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건가?

아마 케말에게 퓌순은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 아니었을까?
일생을 퓌순을 쫒고도 결국 이루지 못한 사랑이었지만...그 열정 속에서 행복했노라고 고백하며 소설은 끝난다

첫사랑....

청춘의 빛나던 시절,
어느날 나타난 신선하고 풋풋한 여자...
마치 광고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각인되고 그 이미지에 꽂힌 젊은 청년은 비로소 사랑을 시작한다
그 순정은 세상을 다 태워버릴 듯 뜨겁기만 하다
여자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느닷없는 사랑이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자꾸 앙탈을 부리고 피하지만
바보처럼 청년의 뜨거운 순정은 계속되고...
그러던 어느날 여자는 청년을 매몰차게 차버린다
그리고 그게 순정이고 사랑이었음을 여자가 깨닫는 순간 ...청년은 이미 떠나버리고 없다

청춘의 빛나던 시절은 그렇게 막을 내리고...

더 이상 그렇게 순수한 열정은 일생을 통해 남자도 여자도 경험하지 못하리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절....

질풍노도와 같은 청춘에는 누구도 자기 자신을 신뢰할 수 없어 방황한다
남자는 자신에 대한 확신을 여자를 통해 얻으려 미친 듯 사랑하고...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여자가 남자를 결국 차버리는 이유는 혹시 이런 게 아닐까?
"나같이 못난 인간을 좋아하는 너는 얼마나 별볼일 없는 인간이겠니?"

모든 첫사랑은 슬프다

윤병우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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