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알짝 피어난 연분홍 벚꽃이 가벼운 바람에 날려 콘월 파크 연녹색 잔디위에 춤을 춘다. 사방에 봄 색깔의 물결이 잔잔한 파도로 밀려들고 있다. 바야흐로 봄볕 완연한 오클랜드의 계절 10월이다. 주말 저녁이 되니 그 춘흥을 못이긴 젊은이들이 바닷가 카페나 술집에서 왁자지껄 들썩이고 있다. 비록 세계적인 불황의 늪이라 어렵다지만 쌓인 스트레스를 화끈하게 털털 풀어 버리고 일어서는 젊은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토요일 저녁 타카푸나에서 젊은이 넷을 태우고 시내 바닷가 바이어덕트로 가는데 술기운 탓인지 흥에 겨운 모습들이었다. 라디오 음악 방송을 들려 달래서 틀어주었더니, 순간 흘러나온 노래에 이들의 마음이 그렇게 사로잡힐 줄이야!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다. 한국말로 나오는 노래인데도 흥에 맞춰 몸을 흔들다가 노래 중간 후렴구인 “강남 스타일”과 “섹시 레이디” 만은 똑똑하게 따라 했다. 노래가 다 끝나자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이때다 싶어 준비해둔 CD를 틀어주며 방송 디제이 역할을 하느라 볼륨까지 높여주니 정말 난리가 났다.

▲ 싸이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 (사진 출처-YG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갈무리)

택시 안에서 들썩들썩 말 춤 흉내를 내며 “갱냄 스타일”과 “섹시 레이디”를 큰 소리로 외쳐대는데 우리가 건너는 하버브리지가 출렁거리는 것만 같았다. 계속해서 반복으로 나오게 틀어 놓으니 그칠 줄 모르는 광란이었다. 시내 바닷가에 다다르자 밖에서 걷던 젊은이들 들으라고 유리 창문을 다 내려놓는 거였다. 그러자 바깥 젊은이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강남 스타일’에 맞춰 말 춤 흉내를 내며 후렴구를 따라 했다. 세상에!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도 사로잡는가.

7월에 유튜브에 올라온 싸이의 뮤직 비디오 ‘강남 스타일’이 큰일을 내고야 말았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미국 아이튠 음원차트에도 1위에 오르고, 뉴질랜드 싱글 차트에도 1위를 차지했다. 북남미, 유럽 및 아시아권 30여 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유튜브 최고 추천 동영상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것은 물론,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강남 스타일’을 유행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빌보드차트 1위를 향해 거침없이 기록을 세워 나가고 있다. 도대체 왜, 세상이 이 노래 ‘강남 스타일’에 빠져드는 것일까.

신난다, 단순하다, 재미있다, 특이하다, 중독성 강한 비트와 후렴구로 인기다, 비주류 문화(B급 문화)의 대변인으로 주류 문화와 소통한다, 등등…. 글쎄 이런 이유들로도 표현 할 수 있겠다. 수긍이 간다. 그래도 더한 그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세계가 열광적인가. 낮에 택시에 탄 점잖은 중년 여성분이 ‘강남 스타일’에 대해 나에게 물어 보았다. ‘강남’이 무엇이고, ‘강남 스타일’이 무엇이며, 왜 인기냐고 한다. 글쎄….

한국의 강남은 미국의 ‘비버리 힐스’같은 부촌이다. 강남은 한국 사회에서 부(富)의 상징이다. 돈 많고 힘 있는 사람들이 사는 특별한 곳이다. 가진 자가 강남에 산다. 그런데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자신이 가진 것도 없다. 그럼에도 자신을 강남 스타일이라고 우겨댄다. 내 의식이 부자면 강남 스타일이라고. 내가 떳떳하고 당당하면 강남 스타일인 것이다. 더 이상 뭘 비교할 건가. 백만불 짜리 집에 살면서도 의식이 궁핍하면 부자가 아니다. 저렴한 월세 집에 살면서도 의식이 부자면 부자다. 진정한 부자를 외친 것이다. 진정한 부자가 되라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함께 어울리며 사는 자가 부자라고.

“강남 스타일!” 곤충에 비유하면 윙윙윙!!! 꿀벌이다. Win Win Win!!! 소리를 내며 함께 기쁘게 일하고 어울리며 나눈다. 일반 사람들은 강남을 동경하면서도 때론 시기하고 질투도 한다. ‘강남 스타일’ 가사에는 그런 동경이나 시기 같은 감정이 없다. 무관할 정도다.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
가렸지만 노출보다 야한 여자
그런 감각적인 여자”

놀 땐 노는 여자가 강남 스타일은 아닌데도 강남 스타일이라고 외친다. 경제적으로 가진 것 적은 소외층들에게 무언의 동류의식, 소통을 외치고 있다. 이 세상 어찌 가진 것으로만 강남을 따지려 드는가. 세상이 비록 경제 불황으로 힘들어도 이렇게 함께 기쁘게 일하고 어울리며 나누며 사는 게 부자다.

우리 사는 오클랜드 스타일은 어떤 모습이면 좋을까. 오클랜드다우면 되는 것이다. 서울도 아니고 시드니도 아니다. 오클랜드다. 자신이 좋아하는 큰 일 하나를 하기 위해서, 마음에 선뜻 내키지 않은 작은 일 열 가지를 하는 게 인생이려니…. 큰 일 하나가 행복한 삶, 건강한 삶, 화목한 가정일 수도 있다. 그러기엔 으레 감수해야 할 불편한 일, 열 가지 작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오클랜드엔 보이지 않는 존재의 부자로 겸허히 사는 분들이 참 많다.

있는 것, 가진 것, 사는 곳을 내세우기 보다는 아는 것, 할 수 있는 것, 재능을 나누며 사는 잔잔한 면면들이 소통의 물결을 이루고 있다. 세계는 지금 경제 불황이다. 어려울 때 일수록 지켜가야 할 게 두 가지가 있다는데 함께 잘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하나는 ‘사람’이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이다. 또 하나는 ‘건강’이다. 신체적 건강, 정신적 건강, 사회적 건강, 경제적 건강, 지적 건강, 그리고 영성적 건강이다. 오클랜드에 살며 한가위 추석을 보내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행복한 가정’ 보름달을 올려다본다.

백동흠 (프란치스코)
뉴질랜드에서 택시 기사로 일하며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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