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의 리얼몽상]

흔히들 생각하곤 한다. 나만 이렇게 별 볼 일 없이 사는 것 같다고, 내 인생만 지루하고 사소한 것 같다고. 그런데 만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산다면, 아침에 해가 떠서 저녁에 해가 질 때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움직이는 방식의 큰 그림이 그러하다면, 이것은 보편적 삶의 이야기가 된다.

연극 <아워 타운>(Our Town)은 그런 이야기다. ‘우리 읍내’라는 우리말 제목으로 더 유명한 미국 작가 손톤 와일더(Thornton Wilder) 원작의 이 “현대 희곡의 성서”라는 작품을 10월 1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1938년 발표 이래 세계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날마다 공연되고 있다는 이 연극을 직접 보고 나면, 말이 필요 없는 명작의 힘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연극이다’는 점과 동시에 ‘이것은 또한 우리의 삶’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작에는 한 가지 딜레마가 있다. 너무나 유명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쉴 새 없이 인용되고 회자되지만, 학생들의 연습 공연이나 아마추어들의 무대는 재미있으나 오히려 프로들의 공연은 재미없다고 ‘오해’받는 작품이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정작 기성극단의 제대로 된 공연을 보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고의 베테랑들이 모여 만든 이번 무대가 참 반갑다.

 
수천 번의 태양이 지고 뜨는 동안 사람들은 날마다 만나고 헤어지며 어울려 산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에도 다니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도 한다. 우리들의 마을에 결혼식이라도 있으면 다함께 기뻐하고 축복하고 기억한다. 그러는 동안 이 땅에서의 수명이 다하면 언덕 위 공동묘지로 하나둘 ‘자리’를 옮겨 앉기도 한다.

특별할 것이라곤 없는 마을이다. 그래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날이 그날 같고, 그이가 저이 같다. 서로서로 사는 모양새도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게 닮았다. 이 사람의 대사를 저 사람이 대신 읊는다 해도 별로 무리가 없을 정도다. 아니, 실은 우리가 사는 일상의 순간들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등장인물 각자는 스스로를 유일무이하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며 무대 위의 ‘시간’을 잠시 점유한다. 하지만 관객은 곧 알게 된다. 저 행복한 젊은이는 곧 울면서 아내의 무덤 위에 엎드리게 될 것이며, 저 아름다운 결혼식의 순간은 짧으며 인생은 번잡한 것 같지만 긴 이별의 슬픔을 달래는 것이 실상 시간의 본질임을 말이다.

인류는 그렇게 살아왔다. “뉴햄프셔 밖으로 채 50마일도 나가 보지 못한 젊은이들이 합중국의 이름으로 조국을 위해 나가 죽는” 전쟁의 나날들과, “영원히 사랑해”라는 맹세가 얼마나 헛되고 그럼에도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주며 흘러왔다. “영원한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렇게 인류가 살아온 기쁘고 슬프고 애절한 이야기가 한 사람의 짧은 인생 속에 깃들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짜 아름다움은 사소한 순간들에 있다. 은은한 빗소리와 둘러앉아 먹는 아침, 달빛 가득한 정원, 마주보며 이야기 나눌 사람, 그렇게 별 것 아닌 순간들이 무대에서 별처럼 반짝인다.

갑자기 죽어 “인생의 하루만 더” 느끼게 해 달라고 극중 무대감독에게 비는 에밀리. ‘전생’을 잊을 수 없어 그나마 행복한 날도 기쁜 날도 아닌 ‘평범한 날’을 고른 그녀는 열두 살 생일 날 아침으로 돌아간다. 햄을 굽고 아이들 등교 준비에 정신없는 젊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철부지 남매, 그들은 너무 바빠 아무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는다. “너무 빨라” 서로 쳐다볼 시간이 없다. 열두 살의 어린 자신을 보고 있는 흰 소복의 에밀리만이 울면서 애원한다. “엄마, 제가 왔어요. 어른이 돼서요. 잠깐 저 좀 보세요.”

“살면서 자기 삶을 깨닫는 사람이 있을까요? 매 순간마다요?” (에밀리)
“없죠. 글쎄요, 성인들이나 시인들이라면 아마.” (무대감독)

산 자와 죽은 자의 ‘자리’를 깨달은 에밀리는 조용히 “산마루 제 무덤으로” 데려다 달라고 한다. 가슴이 아파 ‘전생’을 차마 더는 볼 수 없기도 했을 것이다. 저토록 모르고 살았다는 게 뒤늦게 가슴을 치기도 했을 것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에 안녕을 고하고 떠나는 에밀리의 모습은 눈물겹다. 관객은 저 작별의식의 목격자로 앉아 있기가 마음 아파 견딜 수가 없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다. 이게 삶이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다 떠났고 내가 가고 난 이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나마 내가 ‘아워 타운’의 한 작은 징검다리이기는 했을 거라는, 적어도 그런 믿음이 자신의 ‘자리’를 받아들일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아워 타운’이라는 이 좁고도 넓은 세상에서.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문학과 연극을 공부했고 여러 매체에 문화 칼럼을 썼거나 쓰고 있다. 어쩌다 문화평론가가 되어 극예술에 대한 글을 쓰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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