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한가위 미사: 루카 12,15-21

▲ ⓒ 박홍기

손님 접대나 제사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팔자 좋은 며느리라서 그런지, 나는 이제 곧 시작될 추석 휴가가 은근히 기다려진다. 이번 한가위 때는 시간이 되면 근교로 나가 황금빛 누런 벌판을 보고도 싶다. 평생 도시에서 살아왔지만 어린 시절 시골 외가에 자주 드나든 탓인지 나에게는 농촌에 대한 막연한 향수나 그리움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지금도 가끔 외가에 가서 소에게 짚단을 던져 주고, 텃밭에서 오이 따고 고추 따며 한나절씩 보내고 오곤 한다. 평생을 논과 밭에서 뼈가 굵으신 외삼촌과 이모들 눈에는 도시에 사는 조카의 손놀림이 한없이 어설퍼 보여 “아서라~ 괜히 힘 빼지 말고 저기 따 놓은 거 골라서 가져가라.” 하시지만, 보기만 해도 탐스러운 열매들을 내 손으로 직접 어루만져 수확하는 즐거움에 신이 나서 밭을 누비고 다닌다.

그렇게 가끔 시골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거워, 본격적으로 농사를 배워볼까 싶어 한동안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텃밭을 가꿔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았다. 거름이 충분하지 않아 제대로 크지도 않고, 말라죽거나 병들고 시들어 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주말에만 겨우 들러보니, 한여름에는 쑥쑥 자라는 잡초를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이게 밭인지 숲인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곤 했다. 그렇게 2~3년을 하다 포기하고, 요즘은 다시 외가를 가끔 오가며 어른들의 농사 지혜를 조금씩 엿본다.

팔순의 이모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저녁으로 논에 나가신다. 이모부께서는 곡식들이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고 말씀 하셨다. 매일 들여다보면서 가끔 피를 뽑아주는 것만으로도 기계로만 농사를 짓는 이웃의 논과는 비교도 안 된다고 자랑스러워하신다. 잠시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시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이는 이모의 손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주름과 굳은살로 뭉툭한 손에 손톱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몇 해 전부터 친환경 벼농사를 시작하신 사촌형부는 남들보다 몇 배나 고생을 하는데도 여전히 작황이 좋지 않아 고군분투 중이시다. 가을이 되어 그렇게 힘들게 땀 흘려 키우신 것들을 거두며 그나마 돈을 조금씩 만지시지만, 그 노력에 비해 값이 형편없다. 이틀 동안 고구마 순을 잘라 손질하여 시장에 내놓으신다고 담아놓은 봉투를 보며, 저렇게 해서 팔면 값이 얼마 정도인가 여쭤보니 2만 원 조금 넘을까 하신다. 그러니 은퇴 후 연금 받아가며 소일삼아 텃밭 가꿀게 아니라면,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드니 섣불리 귀농하지 말라 하신다.

그렇게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도, 외가 어르신들은 가끔 놀러 가는 시집간 조카에게 늘 이것저것 듬뿍 주신다. 쌀 같은 곡식은 값을 드리고 사오지만, 조카에게 그 돈 받는 것이 미안하다며 양을 더 많이 주시거나 과일과 채소를 따로 담아 주신다. 포도밭을 하시는 외삼촌은 지난번 태풍 볼라벤 때문에 포도가 다 떨어져서 제대로 팔지도 못하고, 형제와 조카들 먹으라고 한 상자씩 나눠주셨다. 이모는 고추 따느라 손이 부족해 내버려둔 밤동산에 가서 밤이나 주워가라 하셨다.

나는 겨우 이모와 외삼촌이 일하면서 드실 수 있는 빵이나 음료를 사서 놀러 가는데, 오랜만에 오는 조카를 손님처럼 맞이하며 일부러 읍내에서 장을 봐 와 이것저것 차려 따뜻하고 푸짐한 상도 내놓으신다. 죄송해서 자주 못 오겠다고 하니, 이제 몇 년 후엔 그러지도 못할 거라며 이렇게 이모와 외삼촌이 힘이 있어 농사지을 수 있을 때 많이 가져다 먹으라고 하신다.

결코, 가진 것이 많아서도 아니고 나에게 특별히 덕 보실 일도 없는데 그렇게 조건 없이 주신다. 땅에서 땀 흘려 수확한 것들인데도 아까워하지 않고 풍성하게 나눠주신다. 고단한 농촌의 삶이지만 그렇게 자신의 정직한 노동으로 얻은 열매를 조카에게 나눠주며 더 기뻐하고 보람을 느끼시는 외가 어른들을 보며, 도시에 사는 나로서는 이런 보람과 나눔의 기쁨을 감히 짐작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뿌린 만큼 거두고, 땀 흘린 만큼 수확하며, 아무리 공을 많이 들여도 비와 햇볕을 알맞게 내려주시는 하늘의 뜻이 아니면 좋은 열매를 맺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는 탐욕보다 감사의 마음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 생명이 오늘 밤 끝날지도 모르고, 재물을 쌓아두려는 부유한 사람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그는 자신을 위해 재화를 모았으나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하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재물을 자신을 위해서만 쌓고,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지 않으려 함을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 부자는 풍요롭게 수확하였으나 그 부를 오래도록 혼자서만 누리려고 탐욕을 부렸다. 그가 자신이 얻은 것을 이웃과 나누지 못한 이유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며칠간 이어지는 휴일동안 쉬고 싶은 마음에 명절이 기다려지기는 하지만,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한 해 동안 땀 흘려 지은 곡식과 열매를 추수하며 기쁨과 감사함을 나누는 추석의 의미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도 그러할 것이고, 더군다나 살림살이 더욱 팍팍해져서 명절이 부담스럽다는 요즘 현실 속에서는 더더욱 그 의미를 새기기 어려운 명절이 되는 것 같다.

이번 한가위에는 둥근 보름달을 보며 나의 탐욕을 부추기는 소원을 빌기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숙여 보고 싶다. 명절이어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젊은이들, 일터와 삶의 자리를 잃고 거리에서 명절을 맞이해야 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을 위해 달님에게 소원을 빌어야겠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보름달처럼 풍요롭기를 기원한다.

이미영 (발비나,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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