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0,39)라는 예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모든 것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루카 9,25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증언하기 위해 목숨을 스스럼없이 내어 놓은 수많은 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바로 순교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시 '순교자 성월'의 끝자락에 서 있다.

매일 전례력을 꼼꼼히 챙겨보는, 또는 매일 미사에 빠짐없이 참례하는 신자라면 몰라도, ‘순교’라는 말은 우리에게 점점 더 낯선 용어가 되어가고 있다. 가톨릭 신학계에서도 ‘순교’는 신학의 주제로써 외면 당한지 이미 오래다. 아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그동안 들어왔던 ‘순교’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성인공경의 뿌리는 순교자 공경에 있다 

‘순교’라는 말은 본디 그리스어 ‘마르티리온’(μάρτυριον)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 이 말은 라틴어 ‘마르티리움’ (Martyrium)으로 번역되어 교회에 유입된 단어다. 본래 이 말은 ‘증언’ ‘증거’를 의미했지만, 교회 안에서 사용되면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행위'를 뜻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 생명을 바치며, 그분이 가르치신 바를 증언하거나 실천하고 죽은 사람을 우리는 ‘순교자’라 부르며 공경한다.

사실 가톨릭교회에서 성인공경의 뿌리는 순교자 공경에 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로 말미암은 “신앙의 자유”를 얻기 이전, 박해시대에 순교는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었으며, 신앙의 최정점으로 여겼졌다. 목숨을 바친 순교자뿐만 아니라 영성이 뛰어난 이들 이름 앞에 '성(聖)'자를 붙여 성인의 이름을 부르게 했던 5세기 이전, 순교자들은 이미 당시 신자들로부터 공경의 대상이었다. 이러한 순교에 대한 이상(理想)은 교부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2세기 교부인 테르툴리아누스 (Tertulianus, 160-220)는 <호교론>(Apologeticus) 제50장에서 “순교자의 피는 그리스도교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 나치에 저항하다 체포된 본 회퍼 목사는 1945년 나치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4월 8일 이른 아침 저항에 참여했던 그의 가족 3명을 포함한 5천명의 사람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다. 3주 후 히틀러가 자살하고, 5월 8일에 독일이 항복하게 된다. 그리고 사후 50년만에 베를린의 한 법정에서 독일의 양심 본회퍼 목사를 복권시켰다.
그렇다면 더 이상 박해가 없어진 오늘날, ‘순교’에 대한 교회의 태도는 어떠할까? 지난 2000년 5월 7일,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로마 콜로세움에서 1만 2,692명의 그리스도인을 ‘신앙의 증인’으로 선포하였다. 이는 제3천년기를 맞이하여 선포한 대희년의 주요행사 가운데 하나였다. 이 선포는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 등 교파를 초월한 모든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을 망라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나치에 의해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희생된 에디트 슈타인 수녀와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 그리고 독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처형된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를 비롯하여, 1980년 산 살바도르(San Salvador)에서 살해된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등이 포함되었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순교’의 대표적 이미지는 여전히 “적색순교” 즉 “피의 순교”가 차지하고 있다.

유럽과 다르게 가톨릭교회의 역사가 불과 500여년 밖에 되지 않은 아시아에서 배출된 성인들은 모두 순교성인들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중국의 예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비록 아시아에서 통계상 그리스도교인의 숫자가 미미하다고는 하나, 순교자들의 피가 아시아 교회의 씨앗이 되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순교성인을 보유하고 있다. 1984년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천주교회 설립 200주년과 때를 같이하여 한국 순교자 103위를 성인품에 올렸다. 그 영향으로 한국천주교회 안에서는 각종 순교자 현양 행사가 줄을 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즈음해 새로이 세례 받은 이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한국 순교성인을 자신의 주보성인으로 삼기도 했다. 또한 각 교구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본당에서 순교성지 개발과 조성에 열심이었고,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하지만 이러한 교회의 바람과 열망과는 달리 일반 신자들에게 ‘순교성인’에 대한 공경은 점차 시들해져 가는 듯하다. “성인의 모범을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자신의 생물학적인 목숨을 내어놓는 “적색순교” “피의 순교”가 이제는 멀고도 먼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박해가 없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순교성인’만을 신앙의 모범으로 첫 자리에 세우는 것이 문제가 있어 보이는 이유다.

피흘릴 기회를 잃어버린 세대, 백색순교에서 녹색순교로

▲ 로메로 대주교
과연 “적색순교”를 제외하고 다른 의미에서의 ‘순교’는 없는 것일까? 지금으로부터 약 1500여 년 전에 이미 ‘목숨을 바치는’ “적색순교”와는 다른 형태의 순교에 대한 정의가 등장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재위 590-604)는 <복음 강론> (Homilia in Evangelia)에서 <마태 16,24-25>을 설명하며 순교의 종류를 세 가지로 나누어 언급한다. “적색순교” “백색순교” 그리고 “녹색순교”가 바로 그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신앙의 자유’ 칙령으로 인해 “피의 순교”가 사라지다시피 한 상황에서 그 당시 교회가 ‘순교’의 의미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순교’ 개념은 새로운 차원의 ‘순교’에 대한 우리시대의 고민에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의 ‘순교’에 대한 새로운 개념은 전례신학자 마이클 드리스콜 (Michael S. Driscoll) 신부를 통해 다시 정립되었다. 그는 전례 음악가인 마이클 존카스 (J. Machael Joncas)신부와 공동 집필한 <가톨릭 미사 경본 연구> (The Order of Mass: A Roman Missal Study)에서 히에로니무스 교부(Hieronymus, 347-420)의 말을 빌어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철저한 금욕주의를 지켜나가는 사막의 은수자들처럼 순교의 영성으로 살아가는 것”을 “백색순교”로, 그리고 “전 생애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신앙을 증거하고 자기 자신을 투신하는 것”을 “녹색순교”라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 따르면, “백색순교”는 순교성인을 제외한 모든 성인들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개념이다. 또한 오늘날 “백색순교”에 대한 이상(理想)은 남녀 수도자들의 수도서원을 통해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비록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철저한 금욕주의를 지켜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살아내고자 하는 수도자들의 열망은 복음적 권고인 “청빈” “정결” “순명”의 수도서원에 녹아있다. 다시 말해서, 세상을 향해 피로써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지는 않지만, “세상 한 가운데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삶” 그리고 “숨은 삶”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세상’을 사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1,500여 년 전에 등장한 개념이라고는 하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녹색순교”는 참으로 생소하고 낯선 개념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녹색순교”는 어떤 의미일까?

순교자성월, 고인과의 대화에 머물러서야

▲ 스티븐 페터슨 (Stephen J. Patterson)은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재고> (Rethinking the Death and Life of Jesus)에서 예수의 죽음을 “순교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예수 세미나' 회원인 스티븐 페터슨 (Stephen J. Patterson)은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재고> (Rethinking the Death and Life of Jesus)에서 예수의 죽음을 “순교의 원형”으로 제시한다. 그의 설명대로 예수의 죽음이 “순교의 원형”이라면, 이는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간 그의 삶 전체가 바로 “순교의 예형”이라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순교성인들의 삶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순교자들의 삶이 이미 순교를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교자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신앙은 예수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리고 “순교의 원형”으로서 그들에게 전해준 메시지 안에 있다. 이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똑같이 전해졌다. 바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삶’이다. 이 구원을 방해하는 현실, 즉 예수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의 피조물’이 파괴되는 현실에 맞서라는 것이다. 이 ‘파괴’의 현실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의 삶 전반에 걸쳐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 맞서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 놓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참 의미다. 우리의 삶 전반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반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신앙을 증거하고 자기 자신을 투신하는 것”, 즉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는 것’이 바로 “녹색순교”다. 그런 의미에서 ‘순교’의 기회는 얼마든지 열려있다.

더 이상 박해로 인한 “적색순교”가 없는 이 시대에, 교회는 “적색순교”에 갖는 애정만큼 “녹색순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순교성지’개발에 들이는 노력과 열정만큼 ‘세상 안에서 하느님을 사는’ 그리스도인, “녹색순교자”들을 찾아 나서고, 격려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사명이다. 몇 백 년 전에 순교한 분들의 영성만을 계속 우려내는 것으로만 그친다면, 순교성인들의 ‘피의 대가’를 이용만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순교성인’을 공경하는 것은 그들의 목숨 값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순교성인들의 영성을 오늘날 우리의 삶과 신앙 안에서 구체화, 현재화시키지 못한다면, 순교영성은 그야말로 “고인(故人)과의 대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피의 순교”가 사라진 오늘날 “순교자 성월”을 보내면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순교’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다.


 
김홍락 신부 (가난한 그리스도의 종 공동체)
교부학과 전례학을 전공했고, 현재 필리핀 나보타스(Navotas)시 빈민촌에서 도시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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