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부탁받고 글재주도 없고, 신학적인 지식도 없기에 성지를 다니면서 느꼈던 생각과 하고 싶은 이야기를 뱉어보고 싶어졌다. 물론 대책도 없고, 개선하기에도 너무 한계가 많다는 것을 알기에 무식하게 던져보고 싶다.

성지 순례를 하면서 들었던 질문들이 있다. 가장 근본적으로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성지들을 어떻게 하면 연계할 수 있을까?’, ‘성지 개발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성당이나 성지는 마음을 편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할까?’, '우리에게는 순교 문화가 피 밖에 없을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순교는 무엇일까?’까지 이어졌다.

▲ ⓒ 박홍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것 또한 어렵고 아직도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다. 내가 살고 싶은 것은 자유로움이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까? 그래서 수도생활을 택하기는 했지만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자유로움에 매여 있다는 것을 느낀다. 지금까지 자유롭다는 최면을 걸면서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을 보면 발버둥치고 있는 내 자신을 보게 된다.

나름 수도생활이 20년을 넘으면서 발견한 것이 있다면 진정한 자유는 순교자들이 순교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신앙 선조들은 박해를 피해 세상과 격리된 곳에서 신앙을 지키려했고, 세상에 발각되어 모진 고초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키고,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 그 원천은 무엇일까? 그 원천이 지금 여기에는 없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천은 "하느님의 나라" 밖에 없는 것 같다. 과거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시대의 문화에서는 그것이 더욱 간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 간절함이 오늘의 문화에서는 너무나 쇠약해진 나머지 이제는 보이지 조차 않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명과 문화의 발전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제공하고,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이익 창출을 우선으로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들이 뒤엉켜 흘러가는 사회 안에서 우리는 우리자신이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렇게 본다면 순교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고, 그 체험은 목숨을 걸 정도로 강렬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과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있는 가치. 그 가치가 신분이 높은 사람과 백정이 한 식탁에서 밥 먹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그 식탁에서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체험들은 옷 벗김을 당하는 치욕과 육모방망이의 세례, 육신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굽히지 않는 굳셈과 희망이었다. 십자가를 밟고 지나가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지만, 별것 아닌 나무토막의 십자가를 밟을 수 없어 죽음을 선택한 처절하리만큼 체험된 하느님의 나라, 곧 천국인 것이다.

물론 오늘을 사는 우리도 알고 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경제, 정치, 환경, 가깝게는 지금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과 현상 안에서 정의로움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아주 단순한 논리고 도덕적이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것으로부터 멀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구조악 속에 너무 깊이 들어와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어리석음 또한 보게 된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순교 할 수 없을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인줄 모르고 지나왔을 뿐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아주 사소한 우리의 일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임을 깨닫고 느끼지 못하는 우리의 무뎌진 양심과 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했다면 오늘날의 박해자들로 부터 굴하지 않고, 굳센 신앙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여지는 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지켜갈 힘의 원천이다. 이를 실천해나감이 오늘의 순교이고,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 내고 있는 것이며, 그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글을 마감하면서 부끄러운 건 왜일까! 살지 못하는 것을 내뱉었기 때문 일거다.

김선규 수사 (프란치스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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