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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증인, 평화의 증인


최근 몇몇 교구와 수도원에서 한국전쟁 당시에 신앙을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분들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오늘날 이 풍요와 안락의 시절에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과 죽음을 넘어서 자신의 신앙을 실천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알려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다. 또한, 우리 현대사 안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인 한국전쟁과 참된 신앙실천의 연관성에 대해 한국교회가 늦게나마 본격적으로 조명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복시성 운동에 대한 우려 또한 있다. 그것은 먼저 한국전쟁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서 온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해는 오늘까지도 남과 북의 이해가 극단적으로 상이하고(그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을 남과 북이 각기 국립묘지와 혁명열사릉으로 추모하는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남한 사회 안에서도 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와 관련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국내외 관련 학계에서도 한국전쟁의 성격 연구는 여전히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슬쩍 건너뛰고 바로 호교론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여 개별적인 순교 사례의 문제들에만 집중한다면 이것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들에만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두고두고 큰 부담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한국전쟁에 대한 시복시성 작업은 지난 오십 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남과 북의 이념적 차이, 증오와 분리의 사회적 습속을 초월하는 어떤 보편적 기준에 입각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고 지난 세월 한국교회가 보여 준 이데올로기적 편협성에 갇혀서 추진한다면 자칫 우리의 순교자들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김일성 정권의 출현과 한국전쟁으로 북의 교회를 잃고 남으로 내려왔던 개신교 인사들이 극우적 반공주의자가 되었듯이, 개신교 다음으로 큰 피해를 입은 천주교회도 지난 시절에 그 못지 않은 입장을 취해왔던 것은 사실이다. 반공이 이른바 '국시'(國是)가 된 나라에서 교회의 일부 도층 인사들은 마치 반공을 신앙적 선택인 것처럼 오도하기도 했다. 따라서 이번 시복시성 작업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이런 이념적 관성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지극히 '공식적인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가톨릭 교회 내에서 시복시성이란 대단히 정치적인 행위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란 어떤 세속적 의미의 정치 공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대 교회가 우리 시대의 교회적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런 교회의 과제 해결에 신앙적 영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하여 교회의 전 구성원들 앞에 세움을 말한다. 이것은 교회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재구성하는 행위, 곧 교회의 구성원들의 기억을 재조직하는 행위이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시복시성 작업은 단순히 가톨릭 신앙의 증언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 '가톨릭'이라는 말의 어원적 의미에 맞갖도록 좀 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비전으로 수렴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의 '신앙의 증인'들에게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지평은 바로 '평화'이다. 전쟁과 테러, 일상적 폭력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 우리가 참으로 갈망하는 것은 진정한 평화, 바로 주님의 평화이다. 우리의 신앙의 증인들이야말로 저 극단적 폭력 앞에서 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철저하게 주님의 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지 보여준 귀중한 모범이다. 오늘 우리가 이 분들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마땅히 주님의 평화를 선포하고 실천해야 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의 교회들은 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감각마저 상실한 듯한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인과 군인이라는 두 개의 신원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심연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 모순을 온몸으로 돌파하려 했던 형제 그리스도인들을 '이단'이라 부름으로써 사회와 종교 양쪽 모두에서 왕따를 시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그들에게 그저 군대는 선교의 황금어장이며, 그 어장에서 낚시질을 계속할 특혜를 얻기 위해 서슴없이 신앙을 무기화하는 데 협조하였다.

이제 우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폭력의 공포 앞에서도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사랑과 신앙의 이름으로 당당히 맞서 싸웠던 분들을 '평화의 증인'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분들이야말로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명 아래 전쟁과 군대를 후원하고, 피의 복수를 찬양했던 체제의 이념을 안에서부터 근본적으로 무너트리고 참된 평화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다. 이분들의 죽음을 방패 삼아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생산하고, 또 그 두려움으로 지탱하는 폭력산업을 후원하는 모든 세력에게 주님의 평화가 참으로 어떤 것인지 새삼 되묻게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이진교 /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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