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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교회임을 표현하는 방식


오랜만에 국내 언론들이 가톨릭교회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물음들에 대한 답변>이라는 긴 제목의 짧은 문서 하나가 주요 일간지들의 1면을 도배하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관심이야 일단 반가운 일이지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 등 한국 천주교회의 최근 활동들에 대해서는 그리 인색하던 언론들이 지극히 신학적인 교황청 문서에 어떻게 이리도 신속하고 장황하게 반응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이런 보도 하나만 봐도 우리 언론사들이 갖고 있는 사대주의 같은 게 느껴져서 기분이 찜찜하다.

서방의 메이저 통신사들이 전 세계에 타전한 대로 이번 문서는 동방교회나 개신교와의 교회 일치 운동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예견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와의 문제 이전에 이것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논쟁’을 새로운 차원에 올려놓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로 지속되어 온 이른바 ‘subsistit in' 논쟁에서 사도좌가 분명하게 보수파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이 현대 가톨릭 교회 안에서 진보-보수 논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출발한다. 교회 내 진보 세력들은 공의회 이전과 이후의 단절론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개혁’과 ‘쇄신’을 부르짖는다. 반면에 보수 세력들은 이번 문서의 첫 번째 물음과 답변에서 드러나듯이 공의회 이전과 이후가 결코 단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모든 선언은 그 이전의 것과 차이가 없으며 그 어떤 새로운 것을 주장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보수파의 논리를 밀고 나가다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무용론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번 문서는 철저하게 후자의 시각에서 공의회 문서를 재해석하고 있다. 오직 가톨릭 교회만이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개신교는 ‘교회’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그러나 이런 선언은 이 다원화된 세속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종교적 감수성에서 볼 때 지극히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들린다. 과연 이것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취할 수 있는 표현 방식일까? 어느 조직이나 단체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추구와 타자에 대한 개방성 사이에는 일정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타자에 대한 개방성 안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 추구에는 타인에 대한 배타성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렇지만 내 정체성을 추구하자고 타인의 정체성을 훼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유일한 그리스도의 교회임을 자임하면서 이런다는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누가 더 그리스도의 교회인가는 이런 일방통행식의 자기주장이 아니라 그분의 교회되기를 갈망하는 공동체로서 그분의 가르침에 더욱 더 충실해지려는 노력 안에 드러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는 것은 한갓 교의적 ‘선언’이 아니라 복음적 ‘실천’에 있다. 이 세상 어느 단체나 조직보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더욱 구체적으로 체험되는 공동체, 제도의 이름으로 고착화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몸소 보여주신 사랑의 역동적 움직임으로 존재하는 공동체의 현실이 이 선언보다 앞서야 하지 않겠는가?

이진교 / 200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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