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다"고 윽박지르는 방사능 안전 기준치의 허와 실

"방사능 안전 기준치란 아무 근거도 없고 결코 안전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의학적으로 안전한 기준치란 '0'(불검출)입니다."

김익중 교수(반핵의사회 공동집행위원장, 동국대 의대)는 목소리를 높였다.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반대 운동을 시작으로 현재 '탈핵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무엇보다 의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의 생명권이 침해 받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인접국인 우리나라에서도 방사능 검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안전 기준치로 삼은 370베크렐(Bq/kg, 세슘137 기준)을 내세우며, 그 이하는 모두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방사능 안전 기준치인가?
후쿠시마산 고등어 방사능 수치 25베크렐, 한국 기준치 370베크렐

도대체 이 방사능 안전 기준치의 의미는 무엇이며, 정말 '국민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의미일까?

김익중 교수는 "방사능 안전 기준치는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다르며, 심지어 한 나라에 두 개의 기준치를 갖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방사능 안전 기준치는 370베크렐이다. 그러나 해당 수치가 산출된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생명 안전과 관련 없는 '관리 기준'이라는 정황만 명확할 뿐이다.

한국과 일본은 똑같이 방사능 안전 기준치를 370베크렐로 삼았다. 그러나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500베크렐로 상향 조정했다가 최근 다시 100베크렐로 내렸다.

한국은 일본 기준에 따라 일본 수입산에 한해서만 100베크렐로 하고, 국내산은 여전히 370베크렐을 적용한다. 두 개의 기준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후쿠시마 사고 후 인근 해역에서 잡힌 고등어, 명태, 방어 등에서 검출된 최고 방사능 수치가 25베크렐이라는 점이다. 기준치를 낮춰도 이미 실제 오염 수준을 훨씬 웃도는 안전 기준치가 되는 것이다.

김익중 교수는 "기준치로 보자면 가장 많이 오염된 것도 안전하다고 팔리는 꼴"이라며 "이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기준치가 아님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철저히 국가 예산과 정부 요인들의 생각만을 감안한 수치다. 의학적 안전 기준치는 불검출 또는 1에 그쳐야 한다"고 말한다.

안전 기준치와 관련된 또 다른 모순은 일반인과 핵발전 관련 노동자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에 있다. 일반인의 연간 피폭한도와 핵발전 관련 노동자의 피폭한도는 50배 차이를 보인다. 일반인과 핵산업 노동자의 신체 구조가 다르지 않은 이상, 이 기준은 핵산업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방사능이란 무엇인가?

방사능은 어떤 물질이 '방사선을 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물질은 방사성 물질이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우라늄이 있다. 방사선이란 물질을 투과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광선인데, 자연 방사선과 인공 방사선으로 나뉜다. 광선은 x선, α(알파)선, β(베타)선, γ(감마)선과, 핵실험으로 생기는 중성자선, 양자선, 그리고 지구대기 밖에서 오는 우주선 등이 있는데, 이 중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방사선은 α선, β선, γ선이다. 이 중 투과력이 가장 강한 것이 감마선으로 의료용 x선과 비슷한 성질을 지녔으며, 두꺼운 콘크리트나 납으로만 막을 수 있다.

방사능과 관련된 단위는 보통 두 가지가 쓰인다. 베크렐(Bq)은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내는 능력(방사능)을 나타내는 단위다. 1베크렐은 1초 동안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하면서 방출하는 방사능의 양이다. 물질이 갖는 방사능과 별개로 방사선에 의해 사람이 받는 영향을 나타내는 단위는 시버트(Sv) 또는 밀리시버트(mSv, 1천분의 1시버트)로, 사람이 받은 영향을 신체 부위별, 방사선 종류별 가중치를 고려한 피폭량 단위다.

외부 피폭보다 훨씬 위험한 내부 피폭
수많은 피폭의 원인들, 모르는 사이 발생하는 의료 피폭

피폭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부 피폭은 방사선을 쬔 후 영향이 남지만, 식품 섭취 등으로 인한 내부 피폭은 방사선의 영향과 함께 방사능 물질도 몸속에 남는다. 내부 피폭이 훨씬 위험하다는 뜻이다.

피폭 위험은 핵발전 사고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방사능 물질을 사용하는 분야는 농업, 의료, 연구, 공업에 이르기까지 폭넓고, 우리는 수시로 방사능과 접하며 살고 있다.

자연상태의 방사능 외에 식품 건조, 보존, 품종 개발, 의료기구의 멸균과 진단, 치료 과정, 공업 분야의 정밀 측정과 비파괴검사, 고고학 연구, 공해 조사와 유해물질 분해 등에 방사선이 쓰인다. 지난 3월 말린 표고버섯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이유도 건조 과정에서 인공 방사능이 쓰였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서는 실제 기준을 90배 낮춘 자체 방사성 물질 기준치를 마련했다.

▲ 김익중 교수 제공 자료

이 중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할 위험이 가장 높은 것은 의료 피폭이다.

김익중 교수는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는 CT, 스펙트(핵의학 영상법으로 방사성 추적자를 투여, 생화학적 변화나 기능상 문제를 진단) 등이 너무 남발되고 있다면서 "이들은 엑스레이보다 방사능 양이 많아서, 의학적으로 꼭 필요하고, 방사능으로 인한 위험보다 이익이 클 때만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전남대학교 병원에서 방사선과 근처 복도에 방사능이 유출됐던 예를 들면서 의료기관에 있는 방사선과, CT · 스펙트 촬영실, 방사선 치료실 등 공간에 대한 통제와 시설 보완도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방사능의 위험, 얼마까지 감수해야 할까?
방사능의 축적된 영향, 개별적 편차, 방사능 유형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계산법

방사능이 위험한 까닭은 맛, 소리, 냄새, 형상이 없고 독성이 오래가며, 외부 피폭의 경우에는 유전자에 영향을 미치고, 내부 피폭의 경우에는 유전자 영향과 함께 방사능 물질이 몸에 축적된다는 데 있다.

소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사능은 오랜 반감기가 지나면 강도가 줄어들 뿐 없앨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방사능으로 피폭된 경우, 유전자 돌연변이와 파괴로 인해 암, 기형아 출산, 유전병 등을 앓게 된다. 방사능 영향에는 한계도 안전치도 없으며, 받은 만큼 신체에 영향을 준다.

대량의 방사선을 일시에 쪼인 경우 피부염, 불임, 구토, 전신마비 등 급성장애를 일으키고 사망에까지 이르며, 소량의 방사능을 쪼였다고 해도 잠복기를 거쳐 피부염, 암, 백내장, 불임증, 빈혈, 기형유발, 수명 단축 등을 초래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인규명을 할 수도 없다. 방사능으로 사망한 시신은 화장을 하더라도 방사능이 남는다. 체르노빌 사고로 사망한 피폭자들의 시신이 콘크리트로 봉쇄된 이유다.

9월 20일 서울 노원구 월계동 주민 1백 여명이 아스팔트 도로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관리기준 이상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연구 총책임자 단국대 하미나 교수)가 보도됐다. 지난 6개월간 정밀조사한 바에 따르면 방사능 검출 도로 주변 주민 백여 명이 연간 4.7밀리시버트 이상의 방사능에 노출,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는 결과다.

이는 지난해 11월 월계동 도로 한 맨홀 부근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3000밀리시버트로 측정된 것에 대한 조사 내용이다. 당시 해당 지역 고등학교 정문 앞 도로에서는 일반 허용치의 20배 이상이 되는 방사선이 검출됐으며, 도로 아스팔트에는 방사선 기준치 2~3배에 이르는 방사성 폐기물(세슘 137)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는 "지역 주민들이 받을 수 있는 연간 방사선량이 0.51~0.69밀리시버트(mSV)이므로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일상적 방사능 피폭과 함께 고려해야 할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건강 문제

세계보건기구는 연간 피폭량 1밀리시버트가 인구 1만 명 당 1명의 암환자가 증가할 정도의 위험이라고 밝혔다.

월계동 도로에서 방사능이 검출된 당시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안전하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평상시의 자연방사능, 개별적인 외부피폭, 내부피폭, 의료피폭 등을 고려하지 않은 무지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우리 국민은 자연 상태에서도 자연방사선과 환경오염 등의 영향으로 연간 2밀리시버트의 피폭을 당하고 있으며, 다른 원인이 발생하면 그만큼 더 방사선에 노출됨을 의미한다. 최소한 이번에 밝혀진 월계동 지역의 경우, 자연상태 2밀리시버트에 4.7밀리시버트, 그리고 식품과 직업군에 따라 개별적으로 영향을 받는 방사선까지 함께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적인 방사능 피폭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은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의 건강 문제다. 현재 핵발전소 주변 주민들을 대상으로 역학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김익중 교수는 "핵발전소 주변 지역 남성들의 위암과 간암 발생율이 각각 30%와 40% 더 높다. 여성의 경우 유방암 50%, 갑상선암 150%에 달한다. 이는 대한직업환경의학회에서 공식 발표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검증단을 꾸리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자료 요청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며 "발전소 지역 주민들은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당하고 있으며, 정부는 이에 대해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익중 교수는 "핵산업의 이해관계를 떠나 의학적이고 생명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방사능 기준치는 '불검출'"이라고 말했다.

"핵발전소와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등이 있는 지역은 훨씬 상황이 심각하다. 이미 암 발생에 대한 유의미한 상관 관계가 밝혀졌다. 대안은 핵발전소 폐기, 핵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 뿐이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