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11]

지구온난화다 뭐다 하는 얘기를 들은 지는 오래 되었지만, 올해 몇 차례 태풍을 겪으면서 그 심각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균형을 잃어버린 지구 생태계를 회복하기 위해 자연은 또 어떤 몸부림으로 인간에게 말을 걸까. 또한 태풍 피해가 도시보다는 시골에 집중되는 것을 보면서, 농부로 살아갈 앞으로의 나날이 막막하고 두렵게 여겨지기도 한다.

앞서 올린 글에 밝혔지만 태풍 볼라벤 때 우리 집은 지붕의 삼분의 일 정도가 부서졌다. 개인적으로는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엄청난 재난이었지만, 사실 다른 엄청난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 줄로 안다. 내가 아는 언니만 해도 며칠 전에 불어 닥친 태풍 ‘산바’로 새로 지은 창고와 논밭이 흔적도 없이 쓸려 내려갔다고 한다. ‘산바’가 상륙하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전화 통화로 우리 집 지붕을 걱정해 주었는데, 불과 하루 뒤에 우리보다 더한 어려움을 겪게 되다니! 산 중턱에 신혼집을 짓고 논밭을 개간하느라 많이 애써왔다는 걸 알기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크다. 에휴, 하느님은 우릴 얼마나 더 단련시키시려는지….

그래도 말이다, 이런 어려움이 있기에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되고, 내 삶의 주인이 결코 내가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속에 사는지도 새삼 느끼고 감사할 수 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이다.

▲ 마을 사람들이 걷어준 성금 봉투. 살다 살다, 이런 걸 받아보게 될 줄이야. ⓒ정청라

이번 어려움을 겪으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다울이가 시도 때도 배고파 한다는 얘기에 멀리서 구호간식을 보내준 친구들, 한걸음에 달려와 격려를 해준 친구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성금까지 모아서 전해 주셨다. 할머니들께 쌈지돈 만 원이 얼마나 큰돈인 줄 알기에 그 돈을 받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사 온 지 1년도 안 되어 이렇게 폐를 끼치는구나 싶어 죄송하기도 하고 말이다. 아무튼 이게 다 빚이니까 살면서 두고두고 갚으려고 한다.

가장 고마운 일은 하느님께서 우리 집에 둘째를 보내 주신 일이다. 사실 오랫동안 둘째를 기다려왔는데 통 소식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계획은 시골에서는 애가 재산이니 넷은 나아야지 하고 있었는데, 그게 마음대로 되어야지 말이다. 다울이에게 친구가 필요하다 느껴질수록 안타까운 마음은 더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그 무서운 태풍을 헤치고 자리를 잡을 줄이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재미있고 놀라운 일이다. 하느님께서 새 생명을 맞이하는 기쁨을 더 크게 하시려고 일부러 치밀한 각본을 짜신 것만 같다.

우리는 고심 끝에 둘째의 태명을 ‘둥지’로 정했다. 둥지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는 가운데 둥지가 우리에게 왔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둥지’가 태어나면 지금 이 순간의 어려움과 고달픔은 굉장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전해질 듯하다.

“그러니까 둥지 네가 찾아왔음을 알기 바로 몇 주 전에, 무지무지 무서운 바람이 불었어. 그 바람으로 이웃집에서 커다란 지붕이 날아왔는데, 그게 하필이면 우리 집 지붕 위로 떨어진 거야. ‘콰광!’ 소리와 함께 천장이 환히 뚫리고 거기로 비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이러다가 집이 무너지겠구나 싶어서 우리 식구들은 집에서 뛰쳐나와 날이 밝도록 차 안에서 아침을 기다렸단다. 둥지 너도 함께 하고 있었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둥지는 자신이 엄청난 이야기 속에서 멋지게 짜잔 등장했음을 알고 눈을 동그랗게 뜨지 않을까? 헤헤.

▲ 사랑방 공사가 얼추 끝났다. 일주일 내로 전격 입주 예정이니, 한 달 가까운 마을회관 살이도 이제 끝이다. ⓒ정청라

다울이는 벌써부터 둥지의 등장 자체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동생 때릴 거라는 둥, 동생 꼬집을 거라는 둥, 둥지에게 말 한 번 걸어달라고 하면 “싫어!”하면서 아주 냉정하다. 그래도 관심은 많아서 엄마 뱃속에서 아기가 나오는 그림책을 유심히 들여다보고는 한다. 지금은 이래도 머지않아 곧 알게 되겠지. 둥지는 그 누구보다 다울이를 위한 선물이라는 것을.

아무튼 둥지 덕분에 어려웠던 시기를 무사히 건너가고 있다. 이번 주 안에는 지붕 수리도 어느 정도 끝날 듯하고, 사랑방 공사도 마무리가 될 듯하다. 어느새 모든 일이 지나간 일이 되어가고 있다.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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