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의 아우라를 풍기는 평화운동가이자 싱어송라이터
대추리, 용산, 두리반, 강정을 잇는 대안 실험 "내가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2006년 9월 어느 날 영등포 로터리에서 조약골과 마주쳤다. 그는 '평화유랑단 꽃마차'(문정현 신부가 이끄는 '평화바람'의 봉고차 전면에 그림이 그려져 있어 이렇게 불렀다) 지붕에 올라 보라색 꽃무늬 몸뻬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조약골은 비틀즈의 존 레논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아우라를 풍겼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평화를 이야기하는 노래 가사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억압에 꼿꼿이 맞서는 강단도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아 보였다.

▲ 홍대 두리반을 지키기 위해 열린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조약골 ⓒ조약골(촬영: 박김형준)

당시 조약골은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주민들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던 평택 대추리에 살고 있었다. 그 후 조약골은 용산 남일당, 홍대 두리반, 그리고 지금의 제주 강정마을로 옮겨가며 가장 치열한 현장에 달려가 기꺼이 그곳의 주민이 되었다. 그곳이 시골 마을이든, 아스팔트 위에 지은 천막이든, 철거를 앞두고 전기와 수도가 모두 끊긴 건물이든, 조약골은 철조망과 펜스,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살았다. 마치 누군가 그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처럼.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해요. 여기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구나, 여기 있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겠구나, 내가 이곳에서 뭔가 큰 의미를 찾게 될 거다,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아요."

작년 7월 두리반 철거 싸움을 승리로 끝내자마자 찾아간 제주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도 그랬다. 조약골은 구럼비에 발을 디딘 순간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퍼즐이 맞추어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제까지 봤던 구럼비와 강정마을의 사진과 영상, 글의 조각들이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 강한 힘으로 조약골을 붙잡았다. 마침 마을에서 만난 문정현 신부는 그를 보자마자 "나 여기로 주소 옮겼다" 하고 인사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조약골은 "내가 여기에 와서 살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조약골의 현장은 대안을 찾아가는 실험 공간
다른 세상이 가능함을 직접 보여주고 싶다

현장은 조약골에게 사람들과 연대하는 공간인 동시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대안을 찾아가는 실험 공간이기도 하다. 기존의 질서가 아닌 다른 질서와 다른 가치 체계로 운영되는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은 조약골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운동의 방식이다.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요."

그런 방식의 운동이 가능하겠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은 곳이 대추리였다. 그는 "무슨 이유로 몇 안 되는 농민들이 이런 무지막지한 탄압을 겪고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하나"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 사람들은 대추리를 '생명평화마을'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조약골은 대추리를 '진짜' 생명평화마을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상상력을 실현해 보고 싶었다. 대추리에서의 새로운 실험을 앞두고 그는 이곳에서 자신의 삶을 전부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겠다고 기대했다. 때문에 대추리는 그에게 새로운 고향과도 같았다.

조약골은 "서울에서 평택까지 자전거를 타고 들락날락하다가" 2006년 경찰과 군대의 철조망으로 마을이 완전히 봉쇄되자 주민등록지를 대추리로 옮기고 합법적으로 대추리 주민이 되었다.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버리고 간 빈집을 점거해 칠을 새로 하고 창문을 달아 '대추리 불판집'이라고 이름도 붙였다. 집회를 다니고 여러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이들과 급조해 만든 밴드이자 행동팀 '철조망을 불판으로'에서 따온 이름이다. 조약골은 주민들과 강제철거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동시에 자신의 대안을 실행에 옮겼다. 빈집 마당에 텃밭을 가꾸고 생태화장실을 만들어 이용하면서 대추리 이야기를 담은 음반을 만들었다.

조약골 ⓒ한수진 기자

"하루하루 대안적 삶을 살면서, 아름다움과 소박함에 기반한 예술이야말로, 일상생활에서 폭력을 몰아낼 수 있는 가장 신나는 행동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빈집을 꾸미고, 미술 작품처럼 사방을 칠해 놓으니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살게 되고, 마을이 차츰 생명력을 얻었다. 그 마을이 평화예술마을이 되어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죽음의 냄새가 피어오르는 곳에 생명의 싹이 자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대안이자, 오래된 혁명이니까." (<운동권 셀레브리티>, 조약골)

텃밭 만들기는 이후 용산과 두리반에서도 이어졌다. 또 용산에서는 '행동하는 라디오' 인터넷 방송을 시작해 현장의 소식을 외부로 전하는 언론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두리반에서는 한전이 전기를 끊자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해 태양 에너지로 어두운 3층 건물을 밝혔다.

대안생리대 운동에서 생활밀착형 대안을 찾아내다

조약골의 활동은 대안생리대 운동단체 '피자매연대'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장에서 만든 일회용 생리대를 돈을 주고 구입해 사용하지 말고 천으로 직접 만들어 사용하자는 운동을 벌이는 곳이다. 대안을 찾아가는 조약골의 여정이 여기서 출발했다.

"시작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었어요. 사람들을 소비자로 만들어 수동적으로 따라가게 만드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에 대안생리대를 알게 되었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죠.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몰랐는데, 이런 대안이 가능하다는 게 저에게는 놀라운 발견이었어요. 또 제가 남성이다 보니 이 활동 자체가 가부장제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 그러면서 사회 체제가 나에게 강요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는 대안생리대 운동을 하면서 대안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삶의 소박한 부분과 밀착되어 있음을 배웠다. 결국 문제는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떤 방식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였다. 조약골의 대안 실험이 현장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 깊숙이 뿌리내린 것은 이런 깨달음 때문일 거다. 그는 채식과 자동차 대신 자전거 이용하기부터 비혼(非婚)으로 살기, 저축이나 보험 들지 않기까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혹은 책에서 이야기하는 대안들이 실제로 실현 가능한 것인지 또 그것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직접 경험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대안이라고 해도 해 보지 않으면 그것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알 수 없어요. 결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지, 보험이나 저축 없이 살 수 있을지도 마찬가지죠. 내가 그렇게 살아보지 않으면 영원히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번 가보자 하고 하나씩 시작해 본 거예요."

어떤 사람들은 조약골에게 "재는 안하는 게 많더라"며 수도자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오해하기도 한단다. 그러나 조약골은 하고 싶은데 억지로 참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천천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오면서 이에 익숙해지고 편해진 것뿐이다. 그는 "사실 별거 없다"고 멋쩍게 웃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거대한 문제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내가 바꾸려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나를 비롯해 똑같은 사람이에요. 내가 그렇게 바뀔 수 있느냐, 그렇다, 그럼 세상도 바뀔 수 있는 거죠. 그런 구체적인 지점에서 대안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 제주 강정마을에서 조약골과 동료 활동가 2명이 만든 밴드 '신짜꽃밴'의 첫 음반이 지난 8월 발매됐다. ⓒ한수진 기자

대안도 좋지만, 남들이 다 하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은 없을까? 조약골은 단호하게 "없다"고 답했다. 이유는 "내가 사는 방식이 마음에 드니까." 그는 세상을 바꾸는 일이 가장 하고 싶고, 그 일에 전념하기 위해 '운동에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괜찮은 조건'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기도 했다. 조약골은 오히려 얻는 것이 훨씬 많다고 자랑했다.

원하는 삶을 위해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 얻게 돼

현장은 거대한 관계망 안으로 들어가 함께 협동해야만 유지되는 공간이다. 조약골은 "그 안에서 서로 지지하고 힘을 모으는 가운데 느껴지는 충만감과 보상에 대한 만족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가 현장을 쉽게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물 사람이라는 것을 주민들이 알고 나면 그를 가족처럼 알뜰히 챙겨준다고 했다. 그는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가족과 그로 인한 보살핌을 얻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희망의 기운을 다른 곳으로 널리 퍼뜨리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가 참여했던 모든 활동들이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철거에 맞선 두리반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 됐던 경험과 강정 앞바다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 보호 운동을 시작한 후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 쇼가 중단된 일은 특히나 놀라운 변화로 그에게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확신을 주었다. 그렇게 세상이 변하고 있음을 조약골은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고 있다.

"우리가 주장했던 것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봐 왔고, 지금도 그런 과정에 있다고 생각해요. 성과를 쌓아 가고 대안을 만들어 가면 그것이 우리와 같은 풀뿌리들 사이에서 더 깊이 자리잡을 수 있다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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