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 신부님.

깜짝 놀랐지? 내가 뜬금없이 편지를 다 보내니 말이야. 할 얘기가 있으면 조용히 만나 소주 한잔하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편지를 쓰는 까닭이 궁금하지? 실은 내가 최근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에 대한 신부님의 생각은 어떤지, 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야. 나도 판단이 잘 안 서거든.

ㅂ 신부님은 ‘평화드림주식회사’라고 들어본 적 있어? 서울교구가 설립했다는 회사 이름이야. 나도 이야기 듣고 천주교가 회사를 차렸다는 말이 금방 납득이 안 가서 얼른 인터넷을 뒤졌지.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이사장, 정진석 추기경)이 전액 출자하여 2004년 9월에 설립했더구먼. 벌써 몇 년 됐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거지. 설립 배경은 다음과 같았어.

“(주)평화드림은 학교법인 산하기관 가톨릭대학교 8개 병원 및 대학교, 초 중 고등학교, 그리고 서울대교구, 본당, 수도회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외부로 유출되고 있는 수익을 학교법인과 교회 내부로 환원하고자 하며 외부기관(기업, 병원)에 대해 적극적인 영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해, 이를 기반으로 교육과 의료사업을 지원한다.”

사장은 김한석 신부님이고 (신부님은 그분을 잘 알아?) 이 회사가 취급하는 종목은 의료, 여행, 출판, 가구, 건축, 장례대행, 레저사업 등 많고 다양하기도 하더군.

여기서 나는 의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 교회가 엄청난 규모의 회사를 만들어서 돈벌이에 나섰다? 우선적으로 의아스러운 점은 이 회사가 과연 합법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복음적이냐 아니냐는 것이었어. 내가 실정법에 문외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교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체가 아니라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라는 상식적인 믿음 때문이지. 하기야 이 사업을 구상하신 분들이 얼마나 다방면으로 세밀하게 검토하고 또 했겠어? 더군다나 최종 결정을 내리신 분은 한국천주교회 조직의 제일 어른인 추기경이신데 어련하시겠냐구. 하지만 나는 암만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


“서울교구가 장사까지 해서 자금을 충당해야 할 만큼 돈이 많이 드는 하느님 사업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교육과 의료사업 지원’이라니 그렇다면 그 중요한 일에 지금까지는 전혀 손도 못 댔다는 말인가? 돈이 없으니 이 살벌한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밤낮 꼴찌를 면치 못하더라는 뒤늦은(?) 자각에서? 정글의 생존전략을 교우들의 헌금에만 의존하는 것은 주인한테서 받은 달란트를 적극 활용하지 않는 게으른 종의 불충이라 생각해서? 설마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한도 끝도 없는 욕망의 표출은 아니겠지?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죽음을 부른다던데......” 의문은 꼬리를 이었어.

옛날에 예수님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는데 지금 우리 교회는 오히려 갖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해 좌판을 벌이고 장사를 하고 있어. 이건 어느 수도원에서 가구를 만들어 팔고 농사지어 생계를 꾸리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거지. 게다가 ‘(주)평화드림’이 “교회의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킴으로써 외부로 유출되는 수익을 환원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교회기관이나 본당들을 상대로 해서 근근이 먹고 살던 영세업자들을 실직자로 만드는 행위는 동네 재래시장과 구멍가게들을 잡아먹는 대기업들의 횡포와 다를 게 뭐냐구. 요즘 우리 교구도 서울교구 비슷한 회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던데 아니길 바래. 그래선데, 혹시 누가 알아? 잘 모르는 나라도 이렇게 대강 변죽을 울리면 관련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이거 안 되겠다 싶어 선뜻 나서서 제대로 된 토론의 장을 마련할지.

* 호인수 신부님의 <살며 생각하며> 칼럼이 이번 글로 마무리됩니다. 지난 일년 여 동안 사목 일상 속에서 세상과 교회를 바라보며 성찰적 글쓰기를 해주신 신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드립니다. -편집자

호인수 200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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