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까지 모든 원전 폐쇄 결정,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으로 '가능한 미래' 향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지 채 석 달이 되기 전인 2011년 5월 22일, 독일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내 원전 17기를 2022년까지 완전히 폐쇄하기로 하는 탈핵 선언을 했다. 이러한 독일 정부의 발빠른 대응의 밑바탕에는 수십 년간 계속된 환경단체와 독일 국민들의 탈핵 요구가 자리잡고 있다.

독일은 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 참사 당시에도 방사능 낙진을 경험했다. 당시 독일 정부는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모든 농작물을 갈아엎고 진열대의 모든 유제품을 폐기했다. 체르노빌과 독일의 거리는 후쿠시마와 한국의 거리인 약 300km다. 이 경험 이후 독일 시민들은 지속적으로 반핵 의지를 표명하였고, '녹색당'의 존재는 시민들의 저항을 구체화시키는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지역과 단체들을 중심으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실험이 계속되었으며 진보 정권의 정책들은 이를 뒷받침했다.

독일 녹색당의 역사와 시민들의 탈핵 시위

1980년 창당된 독일 녹색당은 1998년 사회민주당(이하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탈핵 정권'을 탄생시키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중단과 기존 핵발전소의 폐쇄를 결정하는 한편, 2000년 말까지 '10만 지붕 프로그램' 아래 8000개의 태양광 지붕을 설치하기도 했다. 재생가능에너지법도 만들어 용량 제한 없이 재생가능에너지 시설에서 생산된 전력을 일정한 가격으로 의무적으로 매입하기도 했는데, 이는 독일이 재생가능에너지 선도국으로 자리잡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탈핵 정권'은 2005년 총선에서 승리한 보수파 기독교민주연합(이하 기민련)이 연정 파트너로 사민당을 선택하면서 깨졌다. 4년 후인 2009년 선거에서 다수당이 된 기민련은 사민당 대신 자민당을 연정 파트너로 선택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보수 연립정부는 곧바로 핵발전소 정책을 수정한다. 노후 핵발전소 17기의 수명을 2021년까지, 나머지 핵발전소는 2036년까지 연장하기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이 결정에 시민들의 대대적 저항이 시작됐다. 2010년 4월 크뤼멜 핵발전소와 브룬스뷔텔 핵발전소 사이에서 시민 12만 명이 120km에 달하는 인간 띠를 만들었고, 10월 법안이 통과되자 수만 명이 거리에 나와 반핵 시위를 벌였다.

▲ 지난 2월, 독일 브레멘 지역에서 핵발전소 마을로 이주한 후 백혈병으로 아이를 잃은 부모가 탈핵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맹주형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나자 전국 450여 개의 도시에서 10만이 넘는 시민들이 핵폐기 시위에 참여했고, 이는 2011년 3월 말과 5월 초에 있었던 주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기민련의 참패와 최초의 녹색당 출신 주지사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에 위기를 느낀 메르켈 정부는 3월 각계 인사가 참여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를 구성해 8주간 토론을 거듭한 끝에 5월 20일,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겠다고 공표하기에 이른다.

이런 독일의 탈핵 선언은 유럽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스위스는 2034년까지 모든 원자로를 폐쇄하기로 결정했고, 이탈리아는 2011년 6월 국민투표 결과 94%가 핵에 반대해 2014년으로 예정된 핵발전소 4기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다.

독일의 재생가능 에너지, 마을 만들기 프로젝트

독일 정부의 탈핵 선언은 단지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을 넘어서 에너지 기후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포함하고 있다. 현재 독일 정부는 전체 전력 공급 중 재생에너지의 비율을 2020년까지 35%, 2050년에는 80%까지 높이는 한편, 2050년까지 에너지 수요 자체를 50%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 중이다.

▲ 독일 곳곳에서 에너지 전환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태양광 집열판(왼쪽), 태양공 집열판이 설치된 빌레펠트시의 주택(오른쪽 맨 위), 초소형열병합발전소(오른쪽 중간), 평야 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력발전기(오른쪽 맨 아래) ⓒ맹주형

독일 정부의 이런 에너지 정책은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어 베를린시와 베를린 에너지청은 '주거 현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오래된 주택의 단열을 위해 창호를 교체하고 지붕에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는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7년부터 시작된 '100% 재생가능에너지마을' 프로젝트는 2011년 2월까지 74개 시, 군이 함께하고 있으며, 정부의 재정지원, 기술 적용에 관한 조언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파출소 같은 관공서 건물과 버스정류장을 포함해 일조량이 많은 곳은 어디나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하고 지역에 초소형열병합발전소를 만들어 10가구에서 20가구 정도의 주택에 천연가스로 난방을 공급하기도 한다. 이런 방식을 통해 보통 전기를 생산할 때 나오는 열의 70%가 버려지는 것에 비해 공급에너지원을 100% 활용해 효율을 높이고 있다.

올해 2월 탈핵 교수단이 주관하는 독일 탈핵순례단에 참여했던 맹주형 교육기획실장(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은 "독일은 한국보다 일조량이 현저히 적지만 판넬, 축전 등 태양열 기술 자체가 매우 발달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조량이 많은 곳에 태양광 판넬을 설치하고, 도심을 벗어나면 평야 지대, 바닷가, 고속도로 인근에서 풍력발전기는 아주 쉽게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독일 정부는 자료를 통해 2010년 한 해에만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 약 266억 유로가 투자됐고, 관련 산업에 총 36만 개의 일자리가 생겼다고 밝혔다. 현재 독일의 태양광발전소는 전세계 보급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독일의 남는 전기는 핵확산 국가인 프랑스로 수출되기도 한다. 전력 사용량이 늘어나는 겨울에는 원자력 발전소 3기 분량을 수출한다. 프랑스는 원전 59기를 가동 중이며 전세계 4위의 핵발전 국가다.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과다 공급이 수요를 낳고, 수요가 더 큰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한국의 경우, 전체 전력 소비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 전기요금의 60%선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의 에너지소비증가율은 세계 8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편, 이명박 정부가 2008년 발표한 '제3차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 기본계획'에 따르면 최종 에너지 대비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020년까지 5.9%, 2030년까지 11% 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2010년 공표된 '제5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하면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27.8%, 전력의 59%를 핵발전에서 얻을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독일 정부와는 반대로 매년 1.1%의 에너지 소비 증가가 전제다.

맹주형 교육기획실장은 "결국 환경과 여건이 아닌, 재생에너지 중심의 정책 결정, 거기에 대한 인프라 구성, 시민들의 전기에 대한 의식 변화가 핵심"이라며 "'무조건 아끼고 부족한 것은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간다'는 것이 독일과 유럽식 에너지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방한한 독일 최대 환경단체 분트(BUND, 독일환경자연보전연맹)의 후베르트 바이거 의장은 '핵 없는 미래를 위한 시나리오'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에너지 절약, 에너지 효율화, 재생 에너지 확대. 이 세 가지 전략으로 탈핵과 에너지 전환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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