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참으로 믿는 사람인가?"

천주교 주교회의 복음화위원장 이병호 주교가 2012년 10월 '전교의 달'을 앞두고 발표한 담화문에서 던진 질문이다. 이어서 그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인용해 세 가지 질문으로 우리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힌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필리 2,1) 나눕니까? 이 질문에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아직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믿음은 늘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이병호 주교 담화문 4항)

▲ '새로운 복음화'에 대해 발표하는 이병호 주교 (사진 출처 / 천주교 주교회의 미디어팀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와 애정, 동정을 나누느냐고? 알 듯 말 듯한 물음이고,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어제와 오늘의 나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이병호 주교는 간질병에 시달리던 소년을 예수께서 고쳐 주신 장면(마르 9,14-29)에 나오는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는 말이 우리 모두의 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를 고향 마을의 시골집처럼 여겨도 될까?

나는 코흘리개 시절에 가톨릭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20여 년 만에야 첫영성체를 했다. 불과 몇 년 전의 일로, 대학을 갓 졸업하고 이런저런 직업 활동을 시작하던 때 비로소 첫발을 내딛은 신앙생활이었다.

첫영성체를 전후한 때의 마음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성경과 교리서를 읽었고, '교회'가 해 보라고 권하는 것은 기도든 공부든 성지순례든 금식이든 모두 실천하고 지키려고 노력하던 때였다. '신성한 권위'가 요구하는 것을 그대로 지키는 데서 오는 만족감과 기쁨이 틀림없이 있었다. 또한, 그 고귀한 제병을 받아먹으며, 제단 위 십자가를 바라보고 기도하고 노래하며, 하느님 뜻대로,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게 해달라고 빌며 내 마음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지금도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하는 복음서 말씀을 읽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그런데, 허니문이 끝난 것인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흔한 말이 맞는 것인지, 여러 가지 이유로 성가대 활동도 그만두고 한동안 '성당'이라는 공간과 거리를 두고 지내다 보니, 몇 걸음 떨어져 바라본 교회에는 마음에 안 드는 구석도 참 많았다. 무엇보다도 그저 덮어두고 "기도하라"는 식의 언설은 '우민화 정책'으로 여겨졌고, 생명과 성에 관한 가르침은 또 얼마나 고루하게 보였는지, 때로는 화가 치밀 지경이었다.

더구나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면 교회가 말하는 권위 있는 자리와 용어 대부분을 온통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만 같아 답답했다. 그 무렵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반복되는 게 싫어서 '주님의 기도'도 꺼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성모 신심이 인기 있는 것은 '교회 안에 여성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누군가 '남자들만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집단에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인가' 하고 탄식하는 글을 쓴 것도 봤는데, 가슴 아프게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 "그 무렵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반복되는 게 싫어서 '주님의 기도'도 꺼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 보니 성모 신심이 인기 있는 것은 '교회 안에 여성의 자리가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사진은 의정부교구 후곡성당 앞의 성모상 ⓒ강한 기자
그럼에도 나는 아직 교회를 떠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조부모님과 어머니가 식사 전에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천주교 사제인 삼촌을 "신부님 삼촌"이라고 부르며 자란 나에게 가톨릭교회는 고향 같고, 익숙한 옷가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생각한다.

교회를, 이제는 다소 쇠락하고 시대에 뒤떨어져 촌스럽지만, 마음이 심란하고 지쳤을 때 돌아가 쉴 수 있는 고향 마을의 시골집처럼 여겨도 될까? 그런 의미를 지닌 교회로 계속 남아 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교회의 일로 인해, 나 자신도, 다른 그 누구도 영혼의 상처를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더욱, 종종 접하게 되는 교회 지도자의 권위주의적 행태나 성폭력 문제는 대단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나는 지난 봄부터 종전의 열의를 회복하려고 노력했고, 4월부터 본당 전례단의 일원이 되어 매주 한 번 정도 새벽 미사의 제1독서를 맡고 있다. 때때로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성경 말씀을 봉독하는 일이 곤혹스럽고, 전례 봉사를 맡은 날이면 오전 4시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시작해 점심 때 이후에는 체력이 떨어져 허덕이지만, 일주일에 한 시간 봉헌하는 새벽 미사는 무척 은혜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부족한 내가 감히 제단에 올라가 성경을 소리 내 읽는 게 죄가 될까봐 두려울 뿐이다.

'신앙의 해', 우리가 한걸음이라도 나아갈 수 있길..

'남자들만 성직자가 될 수 있는 집단에 무슨 희망이 있다는 말인가' 하는 탄식과 '종교인 개인들에게서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조직화 ·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는 단언에는 여전히 어느 정도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믿는 사람'이라는 '신자'로서, 교회를 통해 무언가 배우고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그 배움, 깨달음, 경험을 통해 내가 조금 더 괜찮은 인간이 되어, 조금이나마 더 깨끗하게 살고 세상에 도움도 되길 바란다.

오는 10월 11일이면 '신앙의 해'가 시작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그분에 대한 신앙의 아름다움'에 온 교회의 관심을 모으고자 선포한 것이라고 한다. 교회와 나 자신의 부족하고 죄 많은 모습을 돌아보고, 한걸음이라도 나아가 새로워지는 기회가 되길 기도한다.

강한 (안토니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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