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은퇴하셔서 농사짓고 사시는 정호경 신부님은 내게 사목현장을 떠나면 전각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강추’하셨다. 그 이유는 실내 작업이기 때문에 계절이나 날씨에 구애되지 않고,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나 넓은 공간이 요구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도 돈이 별로 안 든다는 것이다. 이웃에 노인 영감이 사는데 긴긴 겨울밤에 잠은 안 오고 뭐라도 하려고 일어나면 곁에 누운 마누라가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성화를 대서 그나마 불도 못 켠다니 우리는 잔소리하는 마누라가 없어 얼마나 좋으냐며 정 신부님은 히히 웃으셨다. 그거 괜찮겠다. 해볼만한 일이다. 아, 그런데 정 신부님을 모델로 삼기에는 결정적으로 자신 없는 구석이 있다. 농사다. 말이 좋아 농사지 그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하다못해 텃밭 가꾸기도 우습게 볼 일이 아닌데 본격적인 농사꾼의 삶이라니. 풀이 꺾인다. 이거야말로 몸 쌩쌩할 때 철저한 연습이 필요한 건데. 해낼 수 있을까?

나는 요즘 매주 수요일마다 정동 ‘품사랑’에 가서 정양모 신부님의 공개좌담식 강의를 듣는다. 여간 재밌고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낮에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이런 찬스를 놓치고 사는 게 안타까울 정도다. 그분은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신학과 예술, 예수님과 부처님 사이, 심지어는 천주교 사제라는 당신의 신분까지 훌쩍 뛰어넘어 나비처럼 훨훨 날아다니신다. 결례의 말씀일지 모르겠지만 아주 높은 경지에 도달한 도사 같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없이 공부하고 찾고 생각하며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동안 내가 얻은 지혜를 나누고, 그것이 놀이가 되고...... 멋지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없을까? 그러나 이런 바람이 내겐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것을 다행히도 나는 안다. 벌써 오래 전부터 눈이 침침하고 머리가 아파서 한 자리에서 책 열 쪽을 제대로 못 보는 형편이니.

동생 문규현 신부의 목숨을 건 오체투지 현장을 눈물 콧물 흘리며 밤낮없이 따라다니는 백발의 문정현 신부님은 스스로 당신을 ‘길 위의 신부’라고 하신다. 머리 뉠 곳조차 없다 하신 예수님을 꼭 닮았다. 은퇴 자리에서 마치 부모를 여읜 자식처럼 서러움에 흐느끼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껴안아 주며 홀연히 길을 떠나는 사제의 모습을 나는 다른 선배들에게서는 이제껏 보지 못했다. 어떻게 지난 긴 세월 동안 순진한 사람들 앞세워서 제 몫이나 챙긴 인간이라느니 저건 신부가 아닌 빨갱이 괴수라느니 별별 소리를 다 들어가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의연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까? 그분의 내공은 어떻게 쌓인 것일까? 나는 평택 대추리는 한 번도 간 적이 없고 서울 시청앞 촛불집회는 겨우 서너 번 뒷전에서 구경만 했을 뿐이다. 그분의 얼굴 위에 내 사진을 덧씌워 본다.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평소에 온 몸으로 익혀두었어야 했다.

은퇴란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은 이제 그만 접고, 하고 싶은 일, 만나고 싶은 사람만 가까이 할 수 있다는 데 매력이 있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해서 사제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울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회조직의 일원으로서 제도와 규율에 얽매어 자유롭지 못한 면도 없지 않다. 새삼 내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남들처럼 골프를 칠까? 그건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때마다 짝을 찾는 일도 구차하다. 등산은 혼자서 가능하고 돈도 안 들고 안성맞춤이다. 근처에 산이 있는 곳에 살면 좋겠다. 낚시도 좋아하니 물과 산이 함께 있는 곳이면 더 좋겠다. 그리고 긴 글을 쓸 생각이다. 살아온 내 삶을 가능한 한 자세히 기록하는 거다. 하지만 책을 낼 생각은 없다. 그래도 사람이 못 견디게 그리우면 내 손으로 요리를 해놓고 사랑하는 동무들을 부를 것이다.

나이 70에 인턴부터 하라면 그건 너무 가혹하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면 나이 든 선배들은 은퇴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왜일까? 이해가 잘 안 간다. 아직 내가 너무 젊어서 그런가?

호인수 2008.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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