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작은 도시에 역사가 깊은 성당이 있다. 해마다 이 성당에서는 정월 보름경에 척사대회(윷놀이)를 크게 한다. 본당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어느 정도 받아 대건회에서 행사를 주관한다. 대건회는 성인 남성들의 모임이어서 본당의 여러 행사를 주관한다.

대건회 회장은 척사대회를 앞두고 본당 신자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금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회장이 적극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거절할 수가 없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돼지도 잡고, 많은 상품도 준비하고, 기념 수건도 나누어주고, 식사 등을 준비하는 데 사용한다.

대건회 회장은 열심한 신앙인은 아니지만, 이런 행사에서 돈을 잘 걷어 오고 거창하게 행사을 이끌기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 받아 수년 동안 일해 오고 있다. 일반 사회의 시각에서 보면 일하는 방법이나 과정 등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돈 잘 끌어들이고 거창하게 행사를 이끌면 잘한다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신앙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일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일을 하는 마음가짐이나 과정도 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며 무리하게 돈을 많이 걷어야 하는지……. 물질적으로 좀 부족해도 사람들을 기쁘게 할 여러 대안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복음정신이다. 이 행사를 하면서 소외된 사람들은 없었는지, 혹시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 일부만의 잔치는 아니었는지 등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구석에서는 작게나마 불평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행사 때 꽹과리를 치고 술 마시고 소리를 질러서 이웃에 사는 사람이 불평을 했다고 한다. 성당에서 책임을 맡은 사람들이 놀이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가난하고 낯선 사람들은 함께하기 어렵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행사가 끝난 후 여러 수고한 사람들이 늦게까지 식사를 하며 술을 마셨다. 식사 중에 두서없이 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만 평가라고 할 만한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재정적 투자로 큰 행사를 하면 당연히 평가를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 같은데 잘 되지 않고 있다. 특히 신앙인들의 공동체는 '되돌아보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평가가 신앙적인 행위인데 거의 하지 않는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준비를 민주적으로 함께 하지 않으면 평가하지 않게 된다. 신부나 운영하는 사람이 의논 없이 독단적으로 행사를 진행했다면 평가가 부담스러워 기피하고 싶을 것이다.

▲ 복음은 거창한 사업 속에 있는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마음 안에 있다.  ⓒ박현동 블라시오

제도와 조직 강한 종교들에 희망이 있을까

교회에서 흔히 하고 있는 작은 행사 이야기를 예로 들었지만, 교회에서 하는 일에서 복음적인 가치관이나 하느님 정신으로 일하는 것을 보기 어렵다. 때로는 일반 상식 수준보다 일을 잘못하는 경우가 많아 비난을 받는다. 복음정신에 따라 일하는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어디서 하는 것을 보고 배울 곳도 없다. 주위 단체에서 복음정신으로 일하는 것을 보고 배우지 않으면 스스로 깨달아서 실천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시고 그렇게 일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지역적인 것도 아니고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정신인 사랑, 진리, 정의, 평화 등이 사람들 안에, 공동체 안에 이루어지게 노력하는 하나의 운동(movement)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는 권력의 부패와 죄악에 대항하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고 실천하라고 당부하셨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공동체에서, 즉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에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명이 있다. 어떤 신학자들은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자 기본이고, 우선적인 과제라고 역설한다

박노자 교수는 종교에 대해 이런 말을 하였다. "종교인 개인들에게서는 희망을 볼 수 있지만 조직,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기대할 것이 없다." 종교인들 중에는 참으로 신앙인답게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제도와 조직이 강한 종교들은 세상을 위해 일하고 노력하기보다는 종교 조직을 위해 큰 건물들을 짓고 조직을 관리 유지하는 일에 몰두하는 듯 보이는 것이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마태 7,21)

황상근 신부 (인천교구 원로사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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