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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연습 (1)

 
최근 1~2년 사이에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사제도 정년이 있습니까?” “신부님은 언제 은퇴하세요?” “은퇴하시면 무얼 하실 겁니까?” “사실 곳은 정해져 있나요?” “연금이나 생활비는 나옵니까?” 은퇴 얘기다. 혼자 사니까 더 그런가? 사제들의 노후에 대하여 궁금한 점들이 많다. 내가 아직 은퇴를 운운할 나이는 아닌데... 그럴 때마다 약간의 허무감이랄까 섭섭함이랄까 뭐 그런 것들이 얼핏얼핏 스친다. 하긴 내 또래 친구들 가운데 학교 선생이나 (며칠 전에 고등학교 교장이던 친구가 처음으로 정년퇴직했다)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월급쟁이로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거의 없다. ‘백수’가 많다. 그러고 보면 은퇴가 남의 얘기거나 아주 먼 훗날의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2006년 12월 3일에 교구장 명의로 공포한 인천교구 규정집은 사제 은퇴시기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정해두었다.

(1) 만 70세가 된 사제
(2) 만 65세 이상 만 70세 미만에 해당되는 사제가 은퇴를 희망하고 교구장이 이를 승인할 때
(3) 기타 사유로 더 이상의 사목활동이 어려운 사제로서 교구장이 승인할 때

가끔 은퇴하신 선배 사제들을 본다. 어떤 분은 나름대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시는가 하면 외롭고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란 인상을 감추지 못하는 분도 더러 있다. 그런 분들은 전에는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신자들이나 후배 사제들이 자주는커녕 1년 가야 코빼기 한번 내밀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으시다. 참 딱하다. 언제까지 남들이 찾아와 나를 위로하고 벗해주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만 계실 셈인가. 요즘 젊은 것들은 다들 제 코가 석자라 저 먹고 살기에 바쁜 걸.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으니 나이 든다고 새삼 혼자 사는 게 두려워서는 안 될 일이다. 예전에 신학교에서 우리를 가르치셨던 고 최민순 신부님은 이젠 나이가 들어 전처럼 찾는 이 없어도 천주 성삼께서 늘 함께 하시니 조금도 외롭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생각이 난다. 하지만 그런 철저한 신앙은 누구에게나 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정도의 경지에 다다른 분은 천에 하나, 만에 하나나 될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어림도 없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우리가 독신생활은 하지만 깊은 산중 암자의 수도승처럼 그렇게 혼자 사는 건 아니잖은가? 아내나 자식 등 피붙이 가족이 없을 뿐이지 밤낮으로 많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산다. 외로움에 몸부림칠 겨를이 없다.

그런데 나이 들어 은퇴하면 그때는 사정이 다르다. 시간은 새털 같이 많은데 할 일은 없고, 술벗 말벗도 없고... 청승맞게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하는 옛 유행가나 웅얼거리며 궁상떨고 지내기 십상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노후에 혼자서도 즐겁고 씩씩하게 사는 비결은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반드시 사전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한 살이라도 덜 먹어 심신이 비교적 쌩쌩할 때 충분히 해두어야 한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고, 미래를 하느님께 맡기지 못하는 약한 믿음 때문이라고 나무랄 일이 아니다. 은퇴사제들을 보면 은퇴 후의 세월이 은퇴 전보다 긴 것 같으니까.

어쨌거나 은퇴는 교구장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온 몸의 기운이 쇠잔하여 더 이상 내 몸을 내 의지대로 가누지 못할 때까지 안간힘으로 버틸 생각은 없다. 사전에 연습한 것을 실전에 써먹어볼 시간쯤은 넉넉히 남겨두고 하고 싶다. 그때 나는 비로소 혼자 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겠지.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는 다음 기회에 쓰기로 하자.)

호인수 2008.9.17.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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