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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편지, 아들의 편지

모처럼 낯익은 필체의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발신인은 벌써 오래 전에 환갑을 넘긴, 나와는 30여년 지기 ㅎ아무개님이다. 봉투 안에는 “아들한테 야단맞고 기뻐서(?), 다시 호신부님으로부터도 꾸중들을 것을 알면서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편지’를 부칩니다.”라고 쓴 쪽지와 함께 아들 ㅇ아무개(30대, ㅈ대학교수)의 이메일 복사지가 들어 있었다.

접니다, 어머니.

사안이 어찌 되었건 너무 갑자기 어머니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대든 것을 용서해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만 아들이 이 정도로 나온다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조선일보를 경계하는 이유는 정작 그 신문사가 보호하고자 하는 그룹이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서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많은 서민들이 자신을 상류층과 동일시하려는 욕구를 이용하려는 게 확연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번 미국 쇠고기 수입개방 건도 그렇습니다. 노무현정부 때는 미국산 쇠고기가 극히 위험하다고 정부를 질타하더니 정권이 바뀌니까 선동이고 반미라고 몰아붙이잖아요.

저는 미국 시스템이 좋아서 유학을 갔고 미국의 많은 부분을 좋아하지만, 미국이 실패한 부분만 골라서 받아들이는 이 정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유학시절에 이미 미국소가 육식동물이 되어버린 것은 미국 시민단체들이 자주 까발리는 내용이라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협상단이 갑자기 무장해제하고 나가서 광우병 위험인자까지 수입하겠다니 흥분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요. 일본은 30개월도 위험하다면서 20개월 미만으로 틀어막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나서서 이렇게 풀어버리니까 일본관리가 한국 보고 병신짓했다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러니 이 정부가 어느 나라 정부인지 모르겠고, 이런 저런 사실들을 얼버무리고 반미라고 들이대는 조선일보는 도대체 어느 나라 신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민화를 하려고 달려드는데 왜 우리 부모님이 거기 말려드시는지 화가 나서 그랬습니다.

미국에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가 학교 급식소에 배포되었던 사실이 밝혀져서 미국 자체적으로 청문회하고 리콜한 사실이 있는 것 아세요? 우리에게는 광우병 위험요소가 밀집된 내장까지 들어오게 되었고 이걸 바로 싸구려 식당, 햄버거 가게, 군대, 회사, 학교 급식소에서 먹게 될 게 뻔한데 어떻게 넋을 놓고 있겠습니까?

아버지야 FTA해야 나라가 발전할 거라고 하시겠지만, 그래서 이번 협정이 필요한 희생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이미 멕시코는 미국하고 FTA한 후에 망해버렸고 얄밉도록 똘똘한 일본도 미국하고는 FTA를 포기했습니다. 저는 노무현이 FTA 밀어붙이는 걸 보고 완전히 그에게서 등을 돌린 사람입니다. 조선일보의 논리대로라면 저도 반미세력의 선동에 휩쓸리는 무지한인가요? 저는 사회주의보다 자본주의가 좋고 부자로 살고 싶지만 합리적이고 깨끗한 부자로 살고 싶습니다. 타락한 부자들의 집합체인 현 정부는 미국자본주의의 장점은 다 놓치고 단점만 들여오고 있습니다. 이건 친미가 아니라 미련한 국가적 자살행위입니다.

이런 이유로 배후세력, 괴담 운운하는 조선일보(요즘엔 동아일보가 더 심해졌어요)를 보면 또 우리 부모님 혼란시키는 것 같아서 속상해 죽겠습니다. 다른 신문이 싫으시면 신문을 아예 보지 않는 한이 있더라도 조선일보는 이제쯤 포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머니. 그것이 안 된다면 문화섹션 정도만 챙겨 보시지요. 부자라도 건강한 부자를 옹호하면 다행인데 걔들은 노골적으로 타락한 부자들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야 입으로만 나불대지 실천은 전혀 못하는데 어머니는 정말 남을 돕는 인생을 사셨잖아요. 하느님도 어머니를 정말 사랑하시는 게 눈에 보이는데.....

글이 길어지다 보니 제가 괜한 짓을 하는 것 같네요. 그냥 아들이 한번 못된 짓한다고 봐주세요. 앞으로는 더 이상 같은 말씀은 드리지 않을게요. 이만 접겠습니다.

00 올림

나는 즉시 컴퓨터를 켜놓고 답장을 썼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00는 참 멋진 아들이네요. 아들을 그렇게 키우신 부모님이야 더 말해 뭣하겠습니까?”

호인수 200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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