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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집' 원장수녀님의 눈물

내 방 온도는 연일 32도를 웃돈다. 올 여름 더위는 유난히 더 심하다. 이 찜통방을 핑계로 훌쩍 사제관을 떠나 용인에 있는 ‘행복한 집’에 가서 며칠 머물다 왔다. ‘행복한 집’은 인보성체 수녀회에서 운영하는 전문 요양원인데 거기 살고 계시는 분들은 치매나 중풍에 걸린 무의탁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2년 전에 위암 수술을 하고 석달 가량 신세를 진 다음부터 오면가면 한번씩 들러서 미사도 드리고 밥도 얻어먹는 곳이다. 위치가 산 밑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집을 얼마나 잘 지었는지 아름다운 실내는 여름엔 선풍기 없이도 시원하고 겨울엔 종일 환하고 따뜻하다. 우리 찜통 사제관이 지옥이라면 거기는 천당이다.

말지나 수녀님. ‘행복한 집’의 원장이다. 그분이 워낙 눈물이 많은 건 거기 살면서 불과 며칠 만에 알아버린 비밀(?)이다. 오죽하면 나는 그분을 모델로 삼아 시를 써서 읽어드리기도 했다. 용비어천가가 아니다. 너무 작아서 크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분에게 바치는 노래다. 좀 부끄럽지만 여기 그대로 옮겨 본다.

세상에 눈물 많다 많다 그렇게 많은 사람 보셨습니까?
경기도 용인시 삼계리 무의탁 노인 전문요양원
행복한 집 원장
귀먹은 할머니 불쌍하다고 울고
할머니가 춤을 너무 예쁘게 잘 춘다고 울고
시집간 딸 엄마 면회 와서 붙들고 운다고 울고
자식 없는 할머니는 일년 열두 달 찾는 이도 없다며 울고
맛난 복숭아 사다드리니 너무 잘 잡숫는다며 울고
추석빔 입혀드리고 부잣집 노인 같다며 울고
한밤중에 119 불러 병원 응급실에 가며 울고
돌아가실지도 모르겠다며 울고
할머니들 운다고 슬퍼서 울고 웃는다고 기뻐서 울고
이야기하다가 울고 듣다가 울고
크지 않은 눈에 늘 그렁그렁 눈물을 매달고 삽니다.
내 한 팔로도 거뜬히 들어올릴 것 같은 몸집
어느 구석에서 눈물은 끊임없이 솟아날까요?
그래도 실은 울기보다 웃기를 더 잘하는
연못 바닥 진흙에 얼룩진 작은 맨발이 예쁜
말지나 수녀님

-‘말지나 수녀님’ 전문

한마디로 지극정성이다. ‘행복한 집’의 노인 어르신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수녀님은 매사에 그렇다. 노인들이 음식을 먹다가 흘리고 쏟는 일은 다반사인데 그때마다 수녀님은 아랫사람을 불러대기 전에 먼저 털어주고 닦아주고 예뻐 죽겠다는 듯 쓰다듬는다. 할머니가 치마 밑으로 오줌을 질질 흘리며 헤매고 다녀도 얼굴 한번 안 찡그리고 엎드려서 방바닥을 닦고 아기 달래듯 목욕탕으로 모시고 가서 새 옷을 갈아입힌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두 눈 가득 눈물이 글썽인다.

내가 언제 우리 본당 교우들을 위해서 저토록 정성을 다했던 적이 있었던가? 없다. 난 어림도 없다. 그렇다면 저런 지극정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혹시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남았나? 거기까지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남에게 잘 보이려는 겉치레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 겉치레는 결코 자연스럽지 못하고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럼 무엇일까?

측은지심. 그렇다! 오갈 데 없고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천덕꾸러기 노인들에 대한 수녀님의 지극정성과 하염없는 눈물의 원천은 대자대비하신 예수님과 부처님을 닮은 측은지심이다. 그런데 세상은 정반대다. 측은지심은 찾아볼 수 없고 무한경쟁, 이른바 정글의 법칙만 만연한 세상이다. 거기 눈물샘의 자리는 없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교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말지나 수녀님은 말복이라고 개를 잡아 점심을 준비하면서 “오늘이 금요일인데...”하며 살짝 웃는다. 어르신들 물놀이하기 좋은 자리도 찾아야 한단다. ‘행복한 집’에 한번 가 보라. 거기서 “섬기러 왔다”(마태 20,28)는 분을 만날 수 있으니.

호인수 2008.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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