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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촛불은 다 어디로 갔나?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고


오늘은 또 무슨 기사가 실렸을까? 이명박정부가 들어선 다음부터는 아침마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신문을 펼쳐든다. TV를 잘 안 보는 내게 신문보기란 꼭 예전 논산훈련소 시절에 수류탄 안전핀을 뺄 때처럼이나 두렵고 떨리는 일과가 되었다. 대운하 건설이나 각종 공영사업들의 민영화 정책에 가슴이 쿵! 했는데 미국에서 미친 소를 수입한단다. 촛불의 등장과 함께 80년 광주를 방불케 하는 경찰폭력이 난무하고 불순분자 색출작전이 시작됐다. 정권의 언론 장악 음모가 구체화되고 소름끼치던 백골단이 다시 부활했다. 어느 날 갑자기 멀쩡한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 초병의 총에 사살되어도, 급기야는 독도에 일장기가 꽂히게 생겼는데도 속수무책이다. 이런 판국에 밖에 나간 외교관들의 추태는 도를 넘는다. 나는 그래도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고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는데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면서 실낱같은 한 가닥 희망마저 사라져버릴 지경이 되었다.

문득 지난 대선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내 주변 사람들 중에는 이명박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데 그가 압도적으로 당선된 걸 보면 나의 대인관계가 얼마나 편향된 것인지 짐작이 간다고 어느 글엔가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교육감 선거를 보면서 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백만이나 되는 촛불들이 전국의 밤을 밝히며 이명박 퇴진을 외쳤을 때 반 촛불세력은 그저 몇 안 되는 ‘강부자’ ‘고소영’이 다인 줄 알았다. 조,중,동도 꼬리를 내리는듯했다.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던 대통령이 명박산성을 쌓을 때는 이 정권이 갈 데까지 다 갔구나 싶기도 했다. 밥 먹듯 계속하는 대통령의 거짓말에 촛불들은 분노했다. 그래서다. 나는 그 촛불민심이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그대로 반영될 줄 알았다. <이명박=반 전교조=공정택>:<반 이명박=전교조=주경복>의 한 판 승부는 해보나마나한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촛불과 이명박의 대리전인 이 싸움판에서 촛불은 그만큼 위대했으니까. 아, 나는 얼마나 어리석고 순진했나!

   
이번 교육감 선거에선 서울의 24개구 가운데 강남구와 서초구가 나란히 16.5%로 가장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어 종로구(16.1%), 노원구(14.9%), 송파구(14.6%) 등의 순이었다. 반면 중랑구(11.6%)와 강북구(11.9%), 은평구(12.0%) 등은 낮은 투표율을 보였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우려를 넘어 투표율이 15.4% 밖에 안됐다. 주영복 후보가 반이 훨씬 넘는 17개 선거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2만여 표 차이로 패배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이런 경우가 있나? 물대포를 맞으며 촛불을 들던 사람이 이명박의 대리인 공정택을 찍지는 않았을 터, 그 많던 촛불들은 7월 30일 날 다 어디로 갔나?

자식 없는 우리 본당 수녀님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서울 본원으로 투표하러 갔는데... 대통령 이명박은 안 되고 교육감 공정택은 괜찮은가? 왜 ‘강부자’들이 열 일 제치고 투표소를 찾은데 반해 촛불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까? 아이들 교육문제는 시급한 일이 아닌가? 촛불들만 특별히 바빴나? 헌법 제1조를 노래하던 촛불들은 다 투표권 없는 미성년자였나? <이명박=반 전교조=공정택>이 잘못된 등식인가? 서울시민들의 반 전교조 정서가 그토록 심각한 정도였나? 왜 그런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대선 때와 마찬가지로 주경복은 공정택에 맞설만한 대안적 인물이 못된다는 판단 때문에? 아무리 궁리궁리해도 답이 안 나온다.

공정택의 당선이 확정되자 청와대에서 모처럼 웃음소리가 들렸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그것 봐라. 촛불은 순전히 허상이다. 일부 언론들이 이번 선거의 결과가 오로지 강남의 몰표 덕이라고 억지를 부려도 나를 반대하는 사람보다 지지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분명히 입증되지 않았느냐? 입으로만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다 오합지졸들이다. 이젠 주저할 것 없다. 쇠고기든 대운하든 언론장악이든 무엇이든 밀어붙이면 된다. 축배를 들자!” 누군가 인터넷신문 교육감선거 기사에 댓글을 달았듯이 우리는 아직도 고생을 덜 했나? 우리는 정말 아직 멀었나?

호인수 2008.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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