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10]

태풍이 무섭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태풍 볼라벤이 다녀가던 날 밤, 이웃집 축사 지붕이 하필이면 우리집 쪽으로 날아와 슬레이트로 된 우리 지붕을 내려찍고 지붕 처마를 다다다닥 긁으면서 날아간 것이다. 그 때문에 부엌 천장은 아예 뻥 뚫려 하늘이 보이고, 마루와 큰방에도 비가 새어 들어오는 지경이 되었다. 지붕이 뚫린 곳을 임시로 커다란 천막 같은 것으로 덮어두긴 했지만, 그래도 비가 내리치고 온 집안이 곰팡이로 뒤덮이게 된지라 당분간 우리 가족은 마을 회관에서 지내게 되었다. 내가, 그리고 우리 가족이, 말로만 듣던 이재민이 될 줄이야.

사고가 일어난 뒤로 첫날과 이튿날까지는 이런 상황이 꽤나 심각하게 느껴졌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나에게 닥쳤는가 싶고, 뒷수습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집은 집대로 엉망진창이지, 아끼던 항아리도 여러 개 깨지고, 사랑방 지붕까지 물이 새질 않나, 밭에 있는 작물들도 대개가 쓰러지고 부러졌으니까. 게다가 눈길 닿는 데마다 슬레이트나 시멘트 조각에다, 여기저기서 날아온 쓰레기 투성이였다. 우리집뿐 아니라 마을 전체가 엎어진 쓰레기통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 바람이 쓸고 간 뒤, 지붕은 이렇게 되었다. ⓒ정청라

▲ 축사 지붕은 우리집 창고와 앞집 마당 사이에 끼어 길을 꽉 막고 있다. ⓒ정청라

▲ 태풍 뒤에 또 태풍이라니! 거센 바람이 천막을 걷어가 버려 신랑이 빗속에서 천막을 다시 씌우고 있다. ⓒ정청라

이런 와중에 다울이는 온종일 배가 고프다며 밥을 찾았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바로 “엄마, 배고파” 하니, ‘배고파’ 소리만 나면 신경이 곤두섰다. 처음에는 도대체 왜 그러나 싶어서 아이를 다그치고 화를 내기도 했는데, 곰곰 생각해 보니 다울이 마음이 이해가 됐다. 자다가 날벼락이라고 한밤중에 난리를 겪고 차 안에서 피신하며 벌벌 떨었으니 다울이도 많이 놀랐겠지. 놀란 마음이 허기를 부르는구나 싶으니까 다울이가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 와중에 다울이 먹을 간식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부침개를 부치고, 국수를 삶고, 과자를 굽고……. 남들이 보면 이 난리를 겪은 판에 한가하게 뭔 짓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난리를 잊고 다른 일을 하는 게 내 마음에 평안을 주었다. 입맛이 없었는데 다울이를 먹이며 함께 먹다 보니 잃었던 입맛도 다시 돌아왔다.

마음이 잔잔해진 가운데 사태를 바라보니, 이번 일은 수고로운 일이 될지는 몰라도 불행한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찬찬히 따져 보면 오히려 불행 중 다행한 일들로 가득하다. 만약 축사 지붕이 부엌 천장이 아니라 우리가 자고 있던 안방 천장을 내려찍었다면, 태풍 볼라벤이 비까지 억수로 쏟아부었더라면, 갈 데 없는 우리를 거두어 줄 마을 회관이 없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원래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낼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돈이 생기면 지붕을 바꿀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라 이번 사고가 미루었던 큰일을 실행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사고가 난 뒤로 우리집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 이장님과 면사무소 직원들이 몇 번씩 사진을 찍으러 다녀갔고, 마을 사람들도 한두 번씩 들러 피해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 가운데 아흔한 살 된 우리 마을 최고연장자 할머니는 불구경보다 재미나신지 배를 잡고 깔깔 웃기도 했고, 5학년 남자아이는 빗물이 고여 물바다가 된 마루에서 스케이트 타는 시늉을 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뿐인가. 태풍이 간지 얼마나 됐다고 또 태풍이 온다는 소식에 집단속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우리에게 “밭에 다녀올라는데, 나 없는 사이 비가 오면 고추 좀 들여놔줘” 하며 비설거지를 부탁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이런 황당한 반응 앞에서 ‘합천 살 때 이웃들이라면 뭐 도울 일은 없는지 내 일처럼 거들어 줬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있었지만,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얼마나 재밌는 일인가.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내 감정에만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웃어넘길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부서진 지붕이야 고치면 되고, 수확이 적으면 조금 덜 먹고 살면 되니까. 아마 당장 몇 달만 지나도 ‘그땐 그랬지’ 하고 껄껄 웃으며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그런가? 다른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의 일상은 잘 굴러가고 있다. 신랑은 좀 더 부지런히 사랑방 공사를 하고, 나는 밥 짓고 빨래하며 살림을 돌본다. 이웃 할머니가 전화 고장 신고 좀 해 달라고 하면 얼른 가서 신고를 해 드리고, 집에 물이 센다고 시멘트 좀 발라 달라고 하면 달려가서 일을 돕는다. 심지어 엊그제는 이웃 어르신이 독사에 물려 신랑이 응급차가 오는 데까지 어르신을 실어다 드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신랑이 하는 말, “제발 우리 집 걱정할 틈 좀 있으면 좋겠네.”

부서진 지붕 따위는 큰 걱정이 아니라는 듯이 삶은 계속 흘러간다. 사나웠던 태풍으로 냇물은 더 맑아지고, 배추나 무 같은 여린 싹도 씩씩하게 살아남아, 여린 연둣빛을 빛내고 있다. 그 여린 싹들의 생명력이 내게 힘내서 다시 일어나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니 힘을 내야지. 이번 일을 겪으며 마음속 깊이 다짐했던 대로 또다시 새롭게 살아야겠다.

▲ 태풍 오기 전날 심은 무가 여린 싹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정청라

▲ 수수 뿌리를 보라. 이 뿌리로 땅을 꽉 부여잡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정청라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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