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 한글학교>는 내가 사는 부천시 고강동 천주교회 부설로 지난 해 11월에 문을 열었다. 몇 달 동안 시범수업을 하면서 학생을 모집해 금년 3월에 정식으로 개교와 함께 입학식을 한 학교다. 가르치는 봉사자 선생님이 5분(40~50대 전업 또는 맞벌이 주부)이고 학생 총원은 현재 43명이다. 주로 환갑이 넘은 할머니들이다. 개중에는 40대 중년층도 더러 있고 남자도 2명 있다. 우리 동네에 글자 모르는 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분들이 학교가 있는지 몰라서, 혹은 남부끄러워서 못 오시지 싶다. 수업은 한 주일에 두 번, 한 번에 2시간씩 하는데 아예 ‘가나다’도 모르는 기초반부터 읽기는 하지만 쓰기가 서툰 중급반까지 수준에 맞게 나누어 진행한다. 학교 이름은 먼저 공부를 시작한 다음 두 달이 지나서야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오래도록 궁리한 끝에 겨우 지었다. 민들레꽃의 이미지가 우리 학교와 비슷하다는 데 공감했다 한다.

민들레 한글학교가 여름방학을 했다. 개교해서 첫 학기를 마친 것이다. 선생님 한분이 떡을 해 와서 나눠 먹고 가을학기를 기약했다. 나는 선생님들 수고하셨으니 1박2일쯤 어디 시원한 계곡에 가서 쉬며 지난 학기를 정리하자고 인심이나 쓰듯 제안했다가 무안스레 거절당했다. 그분들의 빡빡한 살림사정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탓이다. 부끄러웠다. 모두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싫은 내색 한번 안하고 열과 성의를 다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한나절 소풍으로 때우기로 했다.

남한산성 골짜기에서 점심을 먹으며 터지기 시작한 선생님들의 입은 돌아오는 봉고차 안에서도 그칠 줄 몰랐다. 경찰관들은 놀러 가도 도둑놈 강도 이야기만 하나? 선생님들의 이야깃거리는 온통 다 민들레학교 할머니들에 관한 것뿐이었다.

ㄱ 선생님 : 우리 반 아무개 어머님은(선생님들은 학생들을 이렇게 부른다) 글자를 꼭 소리 나는 대로 밖에는 못 쓰시는 거야. 충청도가 고향이라 그런지 미역국이라고 또박또박 불러도 꼭 멱국이라고 쓰시거든. (모두들 까르르르~)

ㄴ 선생님 : 우리 반 아무개 어머님은 아침 9시면 벌써 오셔서 혼자 청소 다 하시고 책상 정돈 다 해놓고 공부하시는 거야.

ㄷ 선생님 : 우리 반 어머님들은 방학하지 말고 계속해서 공부하재요. 얼마나 대단하신지 몰라. 근데 그분들보다 내가 더 죽겠는걸 뭐. (또 한번 까르르르~)

이럴 줄 알았으면 녹음이라도 해둘 걸. 많은 이야기 중에 백미는 단연 ㄹ 선생님의 이야기였다. “우리 지난번에 반별로 영화 구경을 갔었잖아요. ‘크로싱’이요. 근데 우리 반에 올해 예순 되신 아무개 어머님은 생전하고도 처음 극장에 가신 거래요. 그럴 수도 있나? 그분이 그러는데 극장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아, 여기가 바로 천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래요.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으니까 당신이 젊었을 때 아파서 한 사나흘 죽다 살아났는데 이번에 본 극장이 그때 본 천당과 너무 똑같다는 거야. 처음엔 이해가 안 갔지만 나중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울긋불긋 알록달록한 극장 로비가 천당처럼 아름답게 느껴진 거지. 정작 영화의 내용은 이해를 잘 못하셨나 봐요. 말씀이 없으신 걸 보니. 하지만 그분은 두 번째로 천당 구경을 하신 거예요.”

아, 그럴 수도 있구나. 이제 환갑 되신 분도 극장이란 델 생전 처음 가보실 수 있는 일이구나. 그분의 60평생이 어땠으리라는 것은 더 묻지 않아도 대강 그림이 그려졌다. 해서 올 가을에는 극장보다 더 천당에 가까운 수학여행을 갈 거다. 1박2일로. 혹시 핑계를 대며 안 가겠다고 꽁무니를 빼는 분이 있으면 억지로라도 모시고 가야겠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민들레 한글학교>에 학생이 없어 텅텅 빌 날은 언제일까?

호인수 200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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