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읽기]

 ⓒ 임의진

야훼여! 도와주소서.
믿음 깊은 자 한 사람도 없사옵니다.
믿을 만한 사람 하나 없사옵니다.
입만 열면 남 속이는 말이요,
입술을 재게 놀려 간사한 말을 하고
속 다르고 겉 다른 엉큼한 생각뿐입니다.
야훼여! 간사한 모든 입술 막아주시고
제 자랑하는 모든 혀를 끊어주소서.
저들은 말합니다.
"혀는 우리의 자랑,
제 혀로 말하는데 누가 막으랴?"
"없어서 짓밟히고, 가난해서 신음하니
나 당장 일어서리라.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을 베풀리라."
야훼의 말씀 이러하시니
야훼의 말씀이야 진실 된 말씀,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녹여 거른 순은입니다.
야훼여! 우리를 지켜주소서. 이 더러운 세상에서 우리를 끝까지 보살피소서.
주위에는 악인들이 우글거립니다. 더러운 자들이 판을 칩니다.


시방 시편 기자는 고독한 치타처럼 나무그늘아래 웅크리고 앉아 투덜거리고 있다. 하늘을 향한 믿음은 고사하고 인간 세상 믿을 만한 친구, 마음 알아주는 진실한 친구 한 명 찾기 귀한 세상이라며... 표준 새번역 성경은 이 믿을 수 없는 이들을 가리켜 비열한 자들이라 번역하고 있다. 아래께로 끌어내리려는 치졸한 배신과 음흉한 권모술수, 자신이 공동체에 어떤 상처를 주고 있는지도 간파하지 못하는 망령들의 횡포들. 질투심과 그릇된 에고에 사로잡혀 어제의 동지를 모함하고 팔아넘기는 것쯤 주저하지 않는 이들이 활개치고 다니는 세상이다. 불어난 물길처럼 이런 괴물들은 희망을 종적 없이 삼켜버리고, 소중한 연대를 허망하게 깨트려 버린다.

한편 내 울타리 밖의 승냥이만 문제가 아니렷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지금 하늘을 보아야 할 그 사람, 달과 태양을 바라보고 설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아닌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밖에서 문제를 찾을 길이 아니라 나와 만나고, 나를 온전히 인식하여 먼저 변화될 때 예상치 못한 구원과 해답의 출구가 눈앞에 펼쳐지게 되리라.

인도에선 ‘이슈따 데바따’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우리가 궁극을 이루기 위해 보조 도구로 숭배하는 신을 가리킴이다. 스승(구루)도 마찬가지 다르지 않다. 신앙 대상인 신과 길잡이인 스승은 다만 그 곳, 그 녘, 그 구원에 이르기 위한 방편일 뿐. 몰입하는 것은 좋으나 절대 매립되지는 말 것! 답을 밖에서 찾으려 헤매고 다니지 말고 내 안에서 쉽게 찾을 수 있길 기원한다. 주님은 그대가 쉽게 해답을 찾고, 이 세상을 안전하게 여행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지난 여름 폭우와 찬바람이란 상처를 가득 안고 피어난 가을 국화를 바라보라. 매운 향기가 코끝에 진동하지 않은가.

때로 사는 일이 괴롭더라도 마냥 우울하거나 낙망하여 슬피 울지 말 것. 그대 자신의 향기를 한번 맡아보시길. 나비와 벌, 친구들을 부를 만한 향기로운 향기를 가진 그대 아니런가. 주님이 함께할 때 그대는 누구보다 아름답고 눈부시다. 높은 산이 친구들을 찾아올 수 있도록 낮은 언덕이라는 허리를 굽혀 내려오듯이 우리 또한 겸손하고 순수해지자. 한발짝 양보하고 자신을 낮추며 비운다면, 그렇게 나를 자각하고 수련한다면 떡갈나무가 숲을 위해 도토리를 내어놓듯 주님도 우리를 위해 희망의 열매를 내어주실 것이다.

어김없이 북국으로 떠나는 기러기처럼 우리는 한결같이 방향 표시등을 주님께로 켜고 달리는 카레이서! 오도카니 자기를 바라보고 집중할 때 그곳은 더이상 봉쇄된 구역(라틴어 Claostrum)이 아니라 대자유의 해방구, 모든 곳이 수도원이고 모든 곳이 교회이며 모든 곳이 하느님 나라고 모든 곳이 주님의 품인 것을... 유일신(Monotheism)은 '나'라는 존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나의 자각이며 나의 본연이다. 나는 이 우주 만유만물의 주인공이요 사용자며 지키는 자 아담이다. 그 누구도 나 대신에 이 세상을 살아 줄 수 없다. 대신 여행해주는 사람이란 없는 것이다.

검은 구름들이 태양의 축제를 염원하며 흘러가듯, 내 안의 검은 구름을 떠나보내면서 내 안의 신, 내 안의 태양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일생일대 중차대한 과업이다. 노란색 풍선을 터질때까지 부풀리듯 욕망을 부풀리며 살지 말고, 이제부터는 자기를 찾아나서야 할 시간. 곧 주님을 찾아나서는 인생길이 되었으면 바란다.
가시 바늘을 온몸에 돋아내어 활보하는 고슴도치를 보라. 고슴도치는 방어하기 위함이지 결코 공격하기 위함으로 가시를 뒤집어쓰고 다니지 않는다. 큰 사람은 거스르거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이웃의 마음을 가시로 찌르지 않는다. 자기 아만과 고집으로 대사를 흔들지 않고, 주님이 안겨주신 사명을 거역하지 않고 받들어 순종한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지만 공을 다투지 않는다.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를 가득 채우는 물을 보라!” (옛 노인의 책 도덕경에 있는 말씀) 물처럼 흐르며, 스며들면서 다같이 한마음으로 구원의 희년에 가닿으리라.

주님은 구원하시는 분. 눅눅하고 끈적대는 물을 툭툭 털고 저 하늘로 새들이 비상하듯 우리는 주님의 구원을 입은 몸. 불만의 그늘로 울상인 사람도 주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따르면 감격스러운 여행자로 탈바꿈된다. 예수는 구원의 창조자(아르케에고스)시다. (히브리서 12, 2) 그는 한없이 낮아짐으로 수용하고 포용해가다고 불의 앞에 분노할 줄 아는 참사람이었다. 하느님께 하소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읽어 그 뜻을 이 땅에 펼친 혁명가였다. 그대도 행동하라. 그만 투덜거리고, 밤바람의 머릿결마냥 너풀거리면서 사방으로 투신하라! 남이 대신 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누워서 떡 먹으려고 하지 말아라. 

 
 

임의진 (시인)
남녘교회 담임 목사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위원이다. 펴낸 책으로 <참꽃 피는 마을>, <예수 동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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