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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명축일 날에

어제 아침부터 조짐이 약간 이상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개도 안 물어간다는 오뉴월 감기에 걸려 팽팽 코 푼 휴지가 휴지통에 그득하다. 내 꼴이 영 말씀이 아니다. 오늘이 베네딕도 아빠스, 내 주보성인 축일인데. 실은 지난달부터 사목회 총무가 내 눈치를 살살 봐가며 조심스레 내 의사를 타진해왔다. 내가 그렇게 말 한마디도 눈치 보며 건네야 하는 껄끄러운 인간인가?

“신부님 영명축일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할까요?”

드디어 이 본당에서도 나는 예외 없이 몇몇 분들과 또 한 차례 작은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구나. 이럴 때 희미하게 굴지 말고 딱 부러지게 내 의지와 소신을 밝혀야 한다.

“뭘 어떡해요? 저는 본당신부 본명첨례(本名瞻禮-예전엔 다 이렇게 불렀다)라고 교우들에게 돈 걷고 국수잔치하고 호들갑을 떠는 게 싫습니다. 전에 다른 본당에서도 아무것도 안했습니다. 없는 일로 하고 그냥 조용히 지내지요. 본당신부 축일이나 챙기는 게 사목회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괜한 얘기가 아니었다. 나는 남들 다 하는 은경축 잔치도 마다했으니까. 결벽증이라는 말도 들었다.

원장수녀님은 오늘 식전댓바람부터 내 단잠을 깨워 저녁시간을 내라고 졸라대더니 아예 수녀 네 분이 함께 사제관으로 쳐들어와 생일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축하노래를 부른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됐다. 종일 휴대전화에 축하한다는 문자가 쇄도했다. 대부분이 수녀님들이다. 귀신 같이 기억하고 있구나. 어떤 분은 친절하게도 본당신자들의 축하 많이 받으시며 복된 하루를 보내시라고 남의 몫까지 보태서 곱빼기로 축사를 한다. 전화가 뻔질나게 온다. 평소에 소식 한번 없던 사람들도 더러 있다. 신학교 동기인 작은 예수회 박성구 신부 이름이 찍힌 축전은 어찌된 일인지 두 장씩이나 배달됐다. 아, 하는 것 없고 영양가 없이 분주하기만 한 하루여!

사목회 총무가 사제관 벨을 누른 것은 저녁 7시가 조금 넘어서다. 아무래도 그냥 지나기가 섭섭해서 수녀님들과 함께 몇몇이 모였으니 저녁 먹으러 가자는 것. 내 딴에는 영명축일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신신당부했건만 오랫동안 여러 신부들의 영명축일을 꼬박꼬박 챙겨온 이들에게 내 말은 ‘그저 해본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은 좀 좋은 곳으로 가잔다. 차를 나눠 타고 간 부평 계양구청 옆 생선조림 집에는 이미 상이 화려하게 차려져 있었다. 내 인상이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함께 간 사람들이 슬금슬금 내 얼굴을 살피는 것이 금방 느껴졌다. 어쩐다? 정해진 자리에 앉으면 사제축일을 빙자한 과잉충성(?)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될 게 뻔하고 단호하게 돌아서면 자존심에 상처받은 이분들과는 영영 남이 될지도 모른다. 절대절명의 순간. 나는 전자를 택했다. 잘했다! 하지만 술잔이 돌기 전에 나는 내 진심은 이게 아니라고 굳이 초를 치고야 말았으니 이 못 말리는 소갈딱지 하고는 쯧쯧.

내가 생각해도 내가 참 많이 달라졌구나 싶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전에는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다. 그럴 때마다 너의 그런 점이 맘에 든다는 칭찬도 받았지만 갈등도 적지 않았다. 나이 먹은 때문일까? 이젠 젊은 패기 다 날아가고 좋은 게 좋은 것, 누이 좋고 매부 좋게 얼렁뚱땅만 남았나 보다. 이게 바람직한 변화인가, 고약한 변화인가? 영명축일 건은 기실 별 게 아닐 수 있다. 매사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고집과 타협의 조화가 쉽지 않다. 이런 가정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겠지만 만약 예수님이 30대에 돌아가시지 않고 환갑이 되셨다면 어떠셨을까? 변하긴 변하셨을까?

호인수 200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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