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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어머니.. 우리 모두가 빚진 이 모정[김원의 리얼몽상]

   
 
아들은 선하고 기특했다. 의젓하고 속이 깊었다. 가난하고 불행한 어미가 남편보다 하느님보다 더 의지했던 그 장한 아들은, 어느 날 온몸에 활활 불이 붙은 채로 어미 눈앞에서 산화했다. 아들의 분신 요구는 세상을 뒤흔들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전신화상으로 목에서 피가 끓어올라 호흡조차 가쁜 임종의 순간에도 아들은, 비극에 질려 울지조차 못하고 덜덜 떠는 어미를 다그쳐 끝내 모진 약속을 받아냈다. “엄마, 나 대신 싸워준다고 대답 좀 하세요!” 어머니가 머뭇거리자 아들은 두 번이나 재촉했다. “내 몸이 가루가 되더라도 니가 부탁한 거는 꼭 지킬게.” 답을 듣고서야 아들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자신의 못 다 이룬 뜻을 펼쳐줄 ‘동지’로 어머니를 택한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를 세상으로 불러내기 위해서 어머니를 믿고 자신을 불길 속으로 던졌다. 전태일은 그렇게 이소선을 세상에 보내고 떠났다.

이토록 불행하고 이토록 영예로웠던 어머니가 이소선 이전에 또 있었을까. 1970년 11월 13일 이후 우리 역사의 어느 한 축은, 이소선의 눈물과 탄식으로 짜여졌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의지할 큰아들조차 죽었는데, 세상 모든 시국사범들의 ‘배후’가 되어 홀로 감옥살이를 도맡아 하곤 했던 여인. 몸이 다치고 부서지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죽어 아들 만날 면목이 없을까 두려워 한 시도 편히 쉴 수 없었던 여인.

태준식 감독의 영화 <어머니>는 담담하게 시작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아니 안다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청년’의 그 대단한 어머니는 참 몸집도 자그마하고 미소가 고운 할머니였다. 손님이 오면 담소도 나누고 화투도 친다. 그래도 늘 사람 걱정 나라 걱정이다. 카메라를 든 감독의 아이 유치원비도 걱정해주고 자기 때문에 남들이 귀찮아졌다고 영화 작업도 미안해하신다. “사는 게 힘들다. 힘들어. 돈 아니면 꼼짝을 못하는 세상 아니가.”

연극을 만들겠다고 찾아온 부산 극단 ‘연극놀이터 쉼’의 백대현-홍승이 부부와도 많은 얘기를 나누신다. 연출가와 배우로 사는 이들에 대해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 만난 것도 복”이라며 실은 작품 얘기보다 둘이 사이좋게 살라는 덕담이 앞서신다. 딸기를 드시며 할머니 두 분이 나누는 4대강 논평은 그야말로 촌철살인이다. “그딴 지랄” “노다지 거짓말이야. 입만 열면 거짓말.”

시간표를 적어놓고 드라마도 보시지만, 온몸이 쇠약해져 병원도 자주 가신다. 작은 아들 태삼이 정성껏 차린 밥상도 조금 밖에 못 잡술만큼 이도 속도 약해졌지만 그래서 과일이라도 꼬박꼬박 드시고, 가끔은 아들이 꾸며주는 대로 단장하고 집회나 행사에도 여전히 참석하는 등 “재밌게” 바삐 사셨다. 환한 미소와 조곤조곤 재치 있는 말씀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지만 그러나 관객은 알고 있다. 이미 2011년 여름에 쓰러져 9월3일 세상을 떠나셨음을. 사실 영화 초반에도 병상에 계신 모습이 나온다. 그 모두를 알고 있어서인가. 어느 순간부터 영화의 화자인 이소선 어머니는 담담한데, 관객은 훌쩍훌쩍 울 수밖에 없게 된다.

   
▲ 영화 <어머니>의 한 장면

고맙습니다, 어머니

고마워서, 저런 분의 헌신으로 내가 이만큼이나마 누리고 살았음이 새삼 고마워서, 그저 그 이름 기억해 드리는 것 밖에는 달리 할 게 없어서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내가 감히, 그 청년 전태일보다 늦게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면죄부를 삼고 있는 내가, 그에 대해 그리고 그의 어머니에 대해 지껄여도 되는 것일까.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영화 <어머니>를 보고 나서 조금 용기가 났다. 여느 할머니의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는 평화로운 장면들 속에서 왠지 모를 위안도 얻게 된다. 그래도 이소선 여사의 소소한 일상에는 행복이 깃들어 있었다는 위안. 아들이 꿈꾼 세상이 아직 이루어지진 못했어도 아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믿었기에 어머니는 참 열심히 살았다.

‘연극놀이터 쉼’이 대만 연출가 왕모림과 함께 만든 연극 <엄마, 안녕>는 영화 <어머니>의 또 다른 속내다. “전태일이 얼마나 똑똑했는지”에 연신 감탄하면서 그의 마지막 고뇌의 깊이를 헤아리는 왕모림의 연출과, 절제된 표현으로 이 모자의 생이별과 (꿈속의)재회를 그려낸 백대현-홍승이의 연기, 그리고 41년도 더 전의 일이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전태일의 결단을 현재형으로 지켜보는 관객으로서의 전율이 동시에 느껴진다. 어쩌면 다큐멘터리의 한계와 40여년의 세월을 훌쩍 넘어 생생한 전태일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태준식 감독은 전태일과 젊은 이소선을 연극을 통해 슬쩍 보여줌으로써 ‘열사’가 아닌 한 인간으로 들여다보게 했다.

   
▲ 2010년 전태일 열사 40주기를 기념해 무대에 올렸던 연극 '엄마, 안녕'. 대만의 연출가 왕모링 감독이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직접 만나 구상한 작품이다.

이소선 여사는 연극 <엄마, 안녕>도 영화 <어머니>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작품을 만든 이들은 그분의 사랑과 정성에 미처 보답을 못했다고 완성작도 보여드리지도 못했다고 슬퍼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알게 된다. 이소선 여사가 사랑한 것은 언제나 지금 이 순간 앞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작품이든 기록이든 그건 다른 이들의 몫이고, 어머니가 하신 건 다만 눈앞의 사람들을 최선을 다해 품어주는 것이었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봤던 영화의 리뷰를 이제야 쓴다.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전태일재단을 사전 동의 없이 방문했다가 거절당한 일이 있었다. 이소선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뭐라 말씀하셨을까. 1주기를 맞는 심정이 착잡하다. 어머니는 아들을 만나 기뻐하실 줄 알면서도, 놓아드리지 못하고 자꾸 떠올려 본다. 여전히 앞이 안 보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이래저래 울분이 많아서일까.

김원 (로사, 문화평론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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