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 앤 송 + 사람-3= 홍순관]

ⓒ 문양효숙 기자
그의 노래는 새벽 기운과 닮았다. 그가 낮고도 부드러운 음성으로 흘러가듯 노래할 때 잠자던 마음 어느 한 구석이 살짝 건드려져 기지개를 피기도 하고, 피아노 하나에 기대어 소박하고 가볍게 부르는 노래에는 맑은 바람이 실려 오기도 한다.

바람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의 팬까페에서 쓰는 필명도 ‘어떤 바람’이다.

일본 구필화가 이면서 시인인 호시노 도미히로의 시 제목이다. 우연히 시를 보고 너무 좋아서 94년 음반 타이틀 곡으로 만들었다. 내가 홍순관이 아니면 ‘어떤 바람’이면 좋겠다 싶을 정도다. 바람은 머물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도 않으니 말이다. ”

이렇게 가볍게 살고 싶어 하는 그가 세상에 앨범을 내놓은 것은 스물아홉 살이던 1989년이었다. 첫 앨범 <새의 날개>에는 ‘천국의 춤’, ‘새벽성찬’ 같은 곡들은 실려 있다. 20대가 만든 곡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깊이가 있다. 그는 ‘아버지 덕분’이라고 했다. 1909년생이셨던 아버지께서는 그가 4-5살 되던 해부터 밥상에 앉으면 “내가 누웠다 돌아 누우면 우주도 돌아 눕는다”, “나팔꽃씨 하나를 못 만든단다,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다. 지금 외울 정도로. 그래서 인간의 유한함과 무한함, 하나인 우주 이런 것들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공부를 해서가 아니라 몸에 배었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원래 직선적이고 가감 없는 성격인데 애늙은이 같은 구석이 많이 생겼다.”

그는 미대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11살 때부터 형과 함께 다닌 화실은 재미있었고 대학을 졸업하기 까지 그에게는 인생의 전부였다. 유학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민이 몰려왔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그는 교회가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다녔던 80년대는 민주화 운동과 민중미술이 한창이었던 때라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에 말을 걸고자 했는데 자신의 조각에 담긴 의미를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교회를 향해 알아듣는 이야기로 말을 건네고 싶었다. 형이 이미 유학을 간 상태라 혼자 계신 어머니도 마음에 걸렸다. 광안리 바닷가에서 석 달을 울고 ‘미술을 놨다’. 그리고 잡은 것이 음악이었다. 86년부터 국악하는 이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 노래를 만들었다. 20대 중반에는 신학책을 ‘미친 듯이’ 읽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읽혀졌다.

               <나처럼 사는 건>

                                    홍순관 작사, 한경수 작곡

   들의 꽃이 산의 나무가 가르쳐줬어요.
   그 흔한 꽃이 산의 나무가 가르쳐줬어요.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강아지풀도 흔들리고 있어요 바람에 음~
   저 긴 강이 넓은 바다가 가르쳐 줬어요
   세월의 강이 침묵의 바다가 가르쳐 줬어요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다고
   강아지풀도 흔들리고 있어요 바람에 음~


그의 노래에는 항상 자연이 곁에 있다. 노래의 영감을 주로 자연에서 얻는다 했다.

“진부하지만 자연 같은 스승, 자연 같은 친구가 없다. 제일 좋아하는 게 해질 녘, 낙엽 질 때, 바람 불 때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가만히 보는 걸 좋아한다. 책을 많이 읽어서도 아니고 정보를 많이 얻어서도 아니고 그냥 자연을 오래 바라보고 한가롭게 있으면서 얻게 되는 일종의 영감이 내 장점이고 자산이다. 좋아하니까 오랫동안 멍하니 보게 되고 오랫동안 하니까 명상이 됐다. 우리는 자연이 어떻다는 것을 다 알지만 오래 바라보지 않으면 시를 쓸 수는 없다. 한가로움이 인생의 화두다.”

그는 자신의 책 <춤추는 평화>(2012, 탐)에서 평소에 좋아하는 수필가 윤오영 선생의 글 한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위대한 사람은 시간을 창조해 나가고 범상한 사람은 시간에 실려 간다. 그러나 한가로운 사람이란 시간과 마주 서 있어 본 사람이다”

그간의 노래들이 그의 이런 시적(詩的) 감수성에 기반한 ‘듣는 노래’였다면 ‘조율’(한돌 작사/곡), ‘힘내라 맑은 물’(류형선 작사/곡)등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다양하게 담은 가장 최근의 앨범 ‘춤추는 평화’(2008)는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채워져 있다. 홍 씨는 “현장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그에게는 ‘오래된 현장’들이 여러 개 있다.

2005년에 미국 애틀란타에서 시작한 평화박물관 건립을 위한 모금공연 ‘춤추는 평화’는 100회를 훌쩍 넘기고 있고, 2008년에 시작한 지구 살리기 7년 프로젝트 ‘착한 노래 만들기’와 2009년에 시작한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연 ‘엄마나라 이야기’도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프로젝트의 전체 연출도 그의 몫이다. 그는 가수일 뿐 아니라 연출가, 기획자이기도 하다.

▲ 홍순관의 노랫길 25주년 기념 공연 '어떤 바람' 2010년 5월ⓒ 홍순관


현재 평화박물관은 건립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진 후 ‘평화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평화교육과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 활동을 벌이며 실험예술공간 SPACE 99도 운영 중이다. 그는 “10년을 목표로 했는데 지금 뭔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긴 모금 공연을 쉬지 않고 지치지 않고 갈 수 있는 동력이 궁금했다. 그는 ‘그냥’ 하기 때문이라 했다.

“쉽게 가는 게 좋다 ‘쉬운 것이 옳은 것이다’라는 장자의 말처럼. 밥 먹듯, 바람 불 듯 그냥 하는 거다. 투사나 열사처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하는 일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하지만 ‘쉬운가?’ 하면 쉽지 않다. ‘쉽지 않은가?’ 하면 쉽다.”

아주 가끔 힘들 때가 있기도 한데 그럴 땐 결국 신앙으로 돌아온다고. “예수는 33살이라는 청년의 나이에 죽음을 선택했지 않나. ‘그런 것에 비하면 이 정도야 세발의 피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럼 어려운 마음이 툴툴 털어진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홍 씨는 또 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나이 많은 그의 아버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산행을 하고 냉수마찰을 한 후 먹을 갈아 서예를 하셨다. 어린 그는 그런 아버지가 경건해 보여서 그 옆에서 서예를 배우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와 보낸 어린 날 덕분에 무심한 듯 사심 없이 한가지 일을 ‘그냥’ 해나가는 것을 몸에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 홍 씨는 어린 날의 그와 50이 넘은 자신 사이의 연속성을, 자신과 타인과의 연결을 잊지 않고 그 의미들을 성찰하고 있었다.

그는 장기 프로젝트 무대 뿐 아니라 부르는 곳은 어디든 간다. 대한민국에서 홍 씨만큼 다양한 무대에 서본 이는 드물다. 세종문화회환, 아르코 예술극장, 미국 링컨 센터, 유니온 신학대학 같은 큰 무대 뿐 아니라 대추리, 청계천 바닥, 시골교회, 용산참사현장 까지 안간 곳이 없다. 예수께서 ‘이 마을 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셨기 때문’이라 했다. “누구에게는 들려주고 누구에게는 들려주지 않고, 그렇게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라도 들려줄 수 있는 노래라야 한다”
 

▲2005년 링컨센터 공연 ⓒ 홍순관

이렇게 넓은 스펙트럼의 무대에 서본 경험은 그에게도 큰 자산이 됐다. 일종의 ‘바닥 정신’을 가지고 무대를 마다하지 않는 그에게 가수들이 잘 설 수 없는 아르코 예술극장에서의 ‘엄마나라 이야기 공연’이나 링컨센터에서의 ‘춤추는 평화’공연은 ‘은혜’로 다가왔다. 그는 이런 무대가 “알아주는 이 없이 걸어왔던 27년 그의 음악 인생에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삶과 신앙이 묻어 나는 우리 노래'라는 자기만의 길을 걸으며 ‘간혹 외롭고 쓸쓸해서’ 울기도 했다고. 바람처럼 살고 싶은 그에게도 결코 가벼워질 수 없는, 견디어야 하는 이방인의 외로운 시간이 있었을 터,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한 연민과 애정이 홍 씨에게 묻어났다.

그는 ‘착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착한 노래란 가사가 착한 것이 아니라, 노래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숨으로 부르는 노래’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누구든 자기 이야기를, 자기만의 삶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홍 씨는 ‘쌀 한 톨의 무게’를 가장 좋아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이 부를 수 없는, 홍순관의 숨으로 부르는 ‘홍순관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쌀 한 톨의 무게는 ‘내 노래’다. 내 몸에 베어 있는 생각, 나의 시적 언어를 담아냈고 어떻게 전달할까, 어떻게 들릴까를 고민하지 않고 한 호흡으로 써 내려갔다.”

노래하는 이들은 노래로 세상에 말을 건다. 따라서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세상을 외면하며 살 기 어렵다. 가수 홍순관 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착한 노래를 널리 부르고 세상에 말을 걸고 싶기도 하지만 예수처럼 이 마을 저 마을 두루 다니다가 사라지고 싶은, 바람처럼 흔적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갈망도 있다. 그는 아직 이 ‘사이’에 있다. 이 둘은 합쳐지지 않은 간극으로 남아있다.

‘바람처럼 살고 싶다’는 마음마저 버리면 그 때 정말 바람이 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리듬과 깊이로 숨 쉬고 노래하는 홍순관 씨가 바람처럼 세상에 말을 건넨다. “나처럼 사는 건 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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