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시-수추]

 ⓒ 한상봉 기자

눈빛 만으로

-수추

눈빛만으로 알 수 있었죠
그 착한 눈매가 서글퍼
그를 미워할 수도 없는

그에게 달겨들 수도 없는
그래서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지만
겉사람뿐 아니라 내 속사람까지
모두 읽고 계시는 그 눈빛만으로
나를 온전히 정복하신 당신

당신은 내 두려움을 아시고
내 약함을 드러내시면서도
보잘것 없는 내 안에서
환히 빛나는
당신의 모습을 또한 찾아주시는 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습관이 있습니다. 흰눈이 마구 내리는, 그래서 하늘이 손사래치며 달려드는 날이면, 집에서 인천 답동성당까지 걸어 갔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어둑컴컴한 가운데 감실이 빛나고 있습니다. 고요히 그 앞에 앉아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 마냥 앉아 있곤 했습니다. 그러면...이내 눈이 밝아져 성당의 속살이 죄 보이는 듯 했지요. 오십 줄에 들어서면서, 늘어난 흰 머리칼 만큼 죄많은 인생이, 그렇게 주름진 일상이 마음을 어둡게 만들지만, 그래도 내 심장 깊고 그윽한 곳에 자리하고 있을 '그분'을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잠시 내쉬곤 합니다. 그래도 제 영혼을 안아주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내 약함 드러내시면서도 환히 빛나는 그분, 오늘은 그분 생각을 마저 하고 있습니다. 

수추 壽醜 (당분간 필명을 쓰려 합니다. 수추는 황석영의 소설 <가객>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입니다. 다시 없을 천상의 음률을 얻었지만 바닥에 내려앉을 때까지 세상에 위로가 되지 못했던 가객이지요. 그가 붙잡았던 그 모든 것을 여의었을 때, 그는 참으로 참다운 사람이 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