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뜬금없이 편지를 드리는 것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드릴 말씀은 신부님의 본당에 교적을 두고 있을 한 신자에 관한 문의입니다. 그런데 실은 제가 그분이 속한 교구와 본당을 모르니 그것이 신부님의 함자를 못 쓰고 막연히 ‘000의 본당신부님께’ 라고 쓴 까닭입니다. 올해 54세 된 어청수 프란치스꼬라는 분입니다. 그분은 이 나라 경찰조직의 총수요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측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소망교회 소속 장로라는 것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만 그분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아는 분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이야 모르실 리 없겠지요. 그분은 요즘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보여준 지극한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본의 아니게(?) 온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싶은 것은 그분의 과거 행적이라든가 신상에 관한 정보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인터넷상에 웬만큼 드러나 있으니까요. 다만 신부님은 본당 사목자로서 그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가 궁금할 뿐입니다. 몇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어 프란치스꼬가 그 본당 신자는 틀림없습니까? 세례문서를 확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신부님이 보시기에 그분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인지 아니면 교적만 있고 얼굴은 한번도 비치지 않는 분인지를 여쭙는 것입니다. 냉담자나 행불자로 분류되어 있거나 혹 개종자로 처리된 분은 아닙니까? 지난 6월 24일부터 나흘 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주최한 전국경찰복음화금식대성회 홍보 포스터에 조용기 목사와 나란히 주연으로 등장한 그분의 얼굴을 보았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 포스터는 누가 보아도 그분이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핵심 인물이지 천주교신자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신자가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선교행사에 주역을 맡는다는 것은 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폭력은 어떤 명목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죄악입니다. 경찰의 총수라는 지위를 이용하여 부하에게 폭력을 명령하고 조장하는 행태는 명백히 고해성사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잘못한 게 없으니 회개할 게 없고, 회개할 게 없으니 무릎 꿇고 사죄할 일 없다고 우기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런 사람을 “그래, 네가 옳다, 네가 잘 한다”고 등 두드리며 부추기는 교회 장로님은 또 어떻고요? 이런 분들도 참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전제조건이 회개이고(마르 1,15) 믿음의 표지(sign)가 곧 세례성사인데 회개할 것이 없다는 사람이 받은 프란치스꼬란 세례명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설마 신부님은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 외에 세례명을 한 개씩 더 가진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복음화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주제를 좀 벗어난 말씀입니다만 국회의원 당선자 중에, 새로운 국무위원이나 군 장성 중에 천주교신자 비율이 높다는 교회신문들의 은근한 자랑은 매우 민망합니다.

끝으로 하나만 더 여쭙겠습니다. 혹시 신부님은 사목자로서 신부님의 관할본당신자인 어 프란치스꼬를 불러 그분의 잘못을 깨우쳐주고 조용히 타일러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아, 오해하지 마십시오. 주제넘게 신부님을 추궁하려는 게 아닙니다. 너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시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부르기도 어렵지만 부른다고 오겠습니까? 제가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대중 속에 섞여서 촛불을 드는 게 고작이지요. 그래섭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이왕에 예수처럼 살기로 작정한 사목자라면 마땅히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 해야(마태 5,37)겠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못 하잖아요? 이 두려움과 비겁함을 신부님은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제 자신 너무 슬프고 속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얼마전 사제단이 단식농성천막을 스스로 걷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내내 강녕하십시오.

호인수 2008.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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