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 대교구장 겸 진보적인 성서학자... 유력했던 교황 후보
“가톨릭교회는 200년 이상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질타하던 교회의 스승

“그는 훌륭한 스승이자 뛰어난 성서학자였습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의 전(前) 교구장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Carlo Maria Martini)추기경에 대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평가다. 영원한 교황후보였던 마르티니 추기경이 지난 주 금요일 (8월 31일) 85세로 선종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오랫동안 파킨슨병으로 투병해 왔고, 지난 30일부터 병세가 급속히 악화되었다고 한다. 교황청에 따르면 지난 6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밀라노 대교구를 방문했을 당시 마르티니 추기경과 개인적으로 접견했으며, 당시에도 그의 건강은 몹시 좋지 않았다고 한다.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후임을 뽑는 교황선거 (콘클라베)에서 유력한 교황 후보로 거론되었던 그는 이미 파킨슨병을 앓고 있었다.

▲ 마르티니 추기경 (사진출처/ Il Cardinale Carlo Maria Martini intervistato da don Massimo Mapelli - Ottobre 2009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2002년을 끝으로 22년간의 밀라노 대교구 교구장직에서 은퇴한 마르티니 추기경은 다작의 베스트셀러를 출간한 작가이자 저명한 성서신학자였다. 또한 보수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는 가톨릭교회에서 흔치 않은 진보성향의 추기경이었다. 그는 몇 가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성직자의 독신문제와 결혼의 가능성’ ‘여성 부제(副祭)’ ‘교회의 허락 없이 재혼(再婚)한 여성의 영성체’ ‘에이즈(AIDS) 예방을 위한 콘돔사용’ ‘교회 개혁’등 교회 내 민감한 사안에 대해 신학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서슴없이 개진해온 인물이었다.

그는 작고하기 직전까지도 ‘시대의 징표’에 둔감한 가톨릭교회의 실정을 비판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지난 1일 보도된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와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 가톨릭교회의 문화는 너무 늙었습니다. 또한 교회는 너무 거대하고 공허하며 성직자들은 관료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는 너무 형식적이고 사제들의 복장은 너무 거창합니다. 그리고 사제들은 너무 거만합니다”라고 밝혔다. 이에 더하여 그는 “교회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인정해야 합니다. 교황과 주교들부터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한 예로 아동 성추행 문제는 우리들이 이러한 변화를 모색하도록 촉구합니다”라고 언급했다.

그가 선종하기 보름 전에 이루어진 이 인터뷰에서 마르티니 추기경은 평생 동안 자신이 지녀온 소신을 가감 없이 밝혔다. ‘교회의 허락 없이 재혼한 여성 신자’에 대해 그는 “한 여성이 남편에게 버림을 받고, 자신과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새로운 배우자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가 교리를 이유로 이런 가정을 차별한다면 그것은 교회가 당사자인 그 여성뿐만 아니라 그 아이들까지 버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톨릭교회는 이런 식으로 미래의 세대를 잃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 예루살렘 밤의 대화, 마르티니 추기경, 분도출판사
마르티니 추기경은 자신의 마지막 저서 <예루살렘 밤의 대화>(Nighttime Conversations in Jerusalem)에서도 평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예수께서 2000년 전처럼 젊은이들을 사도를 만드신다면, 지금의 가톨릭교회를 당시 바리사이처럼 대하실 것인가?”라는 한 젊은이의 질문에 “아마 그러실 겁니다. 그분은 교회 고위 당국자들과 싸우실 것이고, 이것이 그들의 사명임을 상기시키실 겁니다. 교회가 자아도취에서 벗어나 그들의 울타리 너머를 보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 책에서 ‘인공적인 피임은 도덕적으로 잘못’이라는 입장을 피력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 (Humanae Vitae, 1968년)에 대해 “이 회칙이 많은 가톨릭 신자들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평생을 학자로 살았던 마르티니 추기경은 22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교구인 밀라노 대교구에서 은퇴한 뒤에 ‘예루살렘 성서대학’에서 7년 동안 연구에 매진했다. 그가 연구했던 주제는 바로 ‘중동에서 평화를 위한 가톨릭과 유대교의 대화’였다. 2004년 12월 자신의 모교인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그는 “가톨릭 신자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행했던 유대교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가톨릭 신자들 역시 자신들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밖에도 마르티니 추기경은 교회의 주요 문제에 대해 교회의 원로로서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2007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전례를 허용하는 것에 대해 ‘라틴어를 사랑하고 또한 라틴어로 강론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 이유’라는 주제의 칼럼을 한 언론에 기고했다. 이 칼럼에서 그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자비로운 교황 성하”라 칭하면서 “교황께서 공의회 이전 전례인 ‘1962년 미사 양식’을 널리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신자들이 하느님을 ‘옛 양식’과 ‘새 양식’ 모두로 찬양할 수 있도록 윤허했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그리고 그가 주교로서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모국어로 거행하는 전례 기도가 믿음의 일치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역설했다.

마르티니 추기경은 다음의 말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끝마쳤다.

“교회는 200년 이상 시대에 뒤처지고 있습니다. 왜 우리 자신을 깨어 일으키지 않습니까? 두렵습니까?”

이 인터뷰 후 음식물을 삼키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다. 아마 이 메시지는 마르티니 추기경이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교회를 향한 마지막 당부였는지도 모른다.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

1927년 2월 15일 이탈리아 토리노 출생
1944년 9월 25일 예수회 입회
1952년 7월 13일 사제서품
1958년 기초신학 박사학위 취득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1962년 성서학 박사학위 취득 (교황청 성서대학)
1969-78년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 학장
1979년 12월 29일 대주교 선임
1980년 1월 6일 이탈리아 밀라노 대교구 교구장 착좌
1983년 2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추기경 선임
1986년-1993년 유럽 가톨릭 주교회의 의장
2002년 밀라노 대교구장 퇴임, 은퇴
2012년 8월 31일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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